광주항쟁으로 해직된 기자만 1천 명 "전두환 나와라!"
광주항쟁으로 해직된 기자만 1천 명 "전두환 나와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5.25 15:29
  • 수정 2020.05.25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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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저항하다 해직당한 언론인에 대한 보상법 필요”

5.18 광주민주항쟁. 전두환의 나팔수가 된 언론 뒤에는 신군부 세력의 언론탄압에 저항하며 해직당한 언론인이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해직 언론인을 반정부, 국시부정이라고 낙인 찍어 영구취업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25일 전두환 씨 자택 앞에서 열린 ‘80년 광주항쟁 진실보도 탄압‧강제해직 40년, 전두환 규탄 및 사죄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25일 전두환 씨 자택 앞에서 열린 ‘80년 광주항쟁 진실보도 탄압‧강제해직 40년, 전두환 규탄 및 사죄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당시 해직당한 언론인과 언론단체가 2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씨 집 앞에 모였다. 이들은 "5.18 언론인학살 진상을 규명"과 "언론탄압 강제해직 한 맺힌 40년 보상하라"고 외쳤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언론탄압 과정과 1,000여 명이 넘는 기자의 해직, 언론 통폐합 과정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21대 국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1980년 언론인 투쟁의 역사적 사실을 포함시켜 해직언론인에 대한 배상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전두환 살인마는 법정에서 법과 정의, 그리고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외쳤다. 공승우 공동대표는 “전두환 살인마의 폭거에 언론인들도 생사의 위협을 느꼈으나 검열 거부와 제작 거부를 멈출 수 없었다”며 “언론인들의 저항이 거세자 전두환은 기자들을 불법 해직시키고 언론사 통폐합을 자행했다. 그리고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유린하고, 언론을 나팔수로 전락시켰다”고 전두환 씨를 비판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유숙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도 자리했다. 유숙열 공동대표는 80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했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합동통신 3년 차 기자였던 그는 80년 7월 해직당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탄압에 저항하여 지명수배당한 김태홍 당시 기자협회 회장을 2주간 친구 화실에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항쟁 진실보도 탄압‧강제해직 40년, 전두환 규탄 및 사죄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단체는 전두환 씨 자택에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는 항의서한을 두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과 공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자택 앞에서 수차례 전두환 씨를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과 공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자택 앞에서 수차례 전두환 씨를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자택 앞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과 공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전두환 씨 자택 앞 신홍범 조선투위 전 위원장,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 공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