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용자 찾으러 갔더니… 중노위 “조정대상 아니다”
‘진짜’ 사용자 찾으러 갔더니… 중노위 “조정대상 아니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6.03 15:09
  • 수정 2020.06.03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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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퇴행적 결정, 부끄럽고 참담하다”… 규탄 기자회견 열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민주노총 12개 비정규사업장 공동 조정신청 중노위 결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민주노총 12개 비정규사업장 공동 조정신청 중노위 결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본 노동쟁의 조정신청 사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노동쟁의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간접고용노동자와 원청 사용자가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 결정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명환)이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민주노총 12개 비정규사업장 공동 조정신청 중노위 결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이런 퇴행적인 결정을 내린 중앙노동위원회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12개 간접고용 사업장 포스코, 현대제철,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한국지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위아,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한국마사회, 지역난방공사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원청에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전환 ▲위험의 외주화 금지 및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아 교섭을 요구했다.

각 사업장 원청 사용자에게 답변이 오지 않거나 교섭 의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민주노총은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해 달라”며 지난달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공동으로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 “조정대상 아니야” 결정에
민주노총 “심각한 직무유기” 비판

조정신청 결과, 지난 1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사건 사용자들(원청 사용자)은 하도급 회사 소속의 노동조합원(간접고용노동자)과는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 사용자들이 본 조정사건의 당사자에 해당한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본 노동쟁의 조정신청 사건은 노조법상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노동쟁의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신청인인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에게는 “노동관계법령 등에 따른 다른 적절한 절차를 통해 해결방법을 강구할 것”을, 피신청인인 각 사업장 사용자에게는 “하도급 근로자·자회사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업장 상황에 맞게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원청 사용자성 판단을 회피한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3일 기자회견에서 “이미 대법원은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 그 부분에 한해서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중노위가 대법원 판례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사실상 원청 사용자 책임 부여에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원청 사용자가 간접고용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다는)노동조합 주장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여 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중노위의 판단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번 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 소속 현대자동차와 한국지엠 사내하청노동자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국지엠의 경우, 오는 5일 불법파견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 사업장인 한국마사회, 지역난방공사의 경우, 조정회의와 자료를 통해 임금수준, 임금체계 등 원청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입증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법원 판결 과정에서 쌓인 입증 자료가 차고 넘치고 노조가 이번 조정회의에 제출한 자료만 100페이지가 넘는다”며 “그런데도 노조의 입증 부족을 거론하는 것은 중노위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중노위 결정서에 있는 “사내하도급사·자회사가 소속 근로자의 임금 지급의 주체이고, 노동조합이 근로계약 당사자인 일부 사내하도급 회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등 사용자와 노동조합 조합원들 간에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의 성립 여부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부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이번 조정신청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사내하도급·자회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했기 때문에 원청 사용자와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의 성립 여부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중노위의 판정이다. 그러나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실질적인 사용자가 원청임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내하도급·자회사 사용자와 교섭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바지사장이랑 교섭하는 이유는 원청이 실질적인 책임자인데 교섭에도 나오지 않고 정부도 가만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교섭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교섭해 봐야 ‘우린 권한 없다, 원청이 해결해야 한다’는 대답만 듣고 끝”이라며 “그나마 쟁의권이라도 얻어 파업이라도 하면 원청 사용자가 한 번이라도 들여다볼까 해서 바지사장과 교섭하는 것이 간접고용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중노위 결정서는 기존의 법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우리는 이 정도로 입장을 밝혔으니 만족하시오’일 뿐”이라며 “중노위가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기관이라면 이렇게 법리로 치장된 결정문을 작성할 게 아니라 간접고용노동자들을 위해 중노위가 무엇을 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