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버텨 정규직 됐는데, 매장이 없어진다고요?"
"17년 버텨 정규직 됐는데, 매장이 없어진다고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6.04 13:10
  • 수정 2020.06.0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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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노조, 홈플러스 안산점·둔산점·대구점 밀실매각 MBK 규탄
홈플러스 "인위적 구조조정 없을 것"
장미영 홈플러스지부 둔산지회장이  '홈플러스 밀실매각 규탄 MBK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장미영 홈플러스지부 둔산지회장이 '홈플러스 밀실매각 규탄 MBK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2003년 3월, 당시 34살 장미영 씨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아들딸은 각각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었고 남편 외벌이로는 생활이 팍팍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대전 사는 '아줌마'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식당 아니면 마트였다. 

마침 집 근처에 홈플러스 대전둔산점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결혼 전 서울 OO전산에서 8년 동안 일한 경력을 적어 둔산점에 '사무직'으로 입사 서류를 냈다. 1차 서류부터 떨어졌다. 

다시 시급제 아르바이트인 TW(Time Worker)로 지원했다. 일자리를 구한 장미영 씨는 6월 12일인 매장 오픈을 한 달 앞두고 계산대 업무를 교육받았다. 이후 그는 무기계약직을 거쳐 지난해 홈플러스 노사 합의로 17년 만에 정규직이 됐다. 

"그냥 집에서 혼자 울었죠" 장미영 씨는 캐셔로 일해온 18년을 "버텼다"고 표현했다. "너는 계산대에서 계산이나 하면서 평생 살아!" 수시로 마주하는 손님들의 모욕도 참아냈다. 부당한 일에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이지만 아줌마가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달 초, 언론을 통해 홈플러스가 둔산점을 비롯해 안산점, 대구점까지 폐점을 전제로 세 매장을 팔고 주상복합건물을 세울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노조에서는 홈플러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 MBK가 배당금을 과도하게 털어가 경영실적이 나빠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복잡한 이야기도 한다. 

장미영 씨는 생각해봤다. 134명이 일하는 둔산점이 폐점되면 가까운 동대전점으로 발령되는 건가? 거긴 한 달 전에 인원이 넘쳐서 다른 점포로 15명을 보냈다고 들었다. 대전에 있는 다른 가오점, 문화점, 유성점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회사가 어려우면 점포를 옮길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사람이 더 필요 없는 주변 매장으로 가게 되면 눈치 보고, 또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못 견디겠으면 나가라는 뜻인가? 

정규직인데다가 18년 동안 일했지만 월 실수령액 170만 원 정도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서 발령받는 어디든 교통비, 주거비 등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계산하는 아줌마, 정규직 만들어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화나고 억울하다. 장미영 씨는 지난 3일 연차를 내고 언론을 통해서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어 서울로 왔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위원장 주재현)와 홈플러스일반노조(위원장 이종성)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MBK파트너스 앞에서 '홈플러스 밀실매각 규탄 MBK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위원장 주재현)와 홈플러스일반노조(위원장 이종성)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MBK파트너스 앞에서 '홈플러스 밀실매각 규탄 MBK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장미영 씨가 소속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위원장 주재현)와 홈플러스일반노조(위원장 이종성)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MBK파트너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진에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치고 대량실업 양산하는 밀실 매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홈플러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노조에 따르면 홈플러스 안산점, 둔산점, 대구점 3개 매장은 매각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다. NH투자증권이 안산점을, 딜로이트 안진이 둔산점과 대구점 매각 주관사를 맡았다. 

특히 노조는 이번 매각이 통상적으로 해오던 매각 후 바로 재임대하는 '세일즈 앤 리스백(Sales&Leaseback) 방식이 아니라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는 등 폐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해당 매장 직원 수천 명의 '대량실업'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에 홈플러스는 '고용안정'을 약속했지만 노조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경영진이 주변 점포로 분산해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있으나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안산점 직원만 200여 명인데 이 인원을 추가로 수용할 주변점포는 없다. 안산점보다 작은 안산선부점과 고잔점은 수용여력이 없다. 10km 밖에 있는 시화점, 평촌점, 서수원점, 동수원점, 북수원점 등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경영진이 3개 점포 매각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공동행동을 예고했다. 김기완 마트노조 위원장은 "홈플러스 조합원 6,000명과 마트노조 조합원 1만 명, 서비스연맹 조합원 1만 명이 함께 싸울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종로구 집회 개최가 금지됐지만, 우리가 아닌 MBK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홈플러스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기 국면을 타계하기 위해 다양한 경영 전략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정규직 인력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며 재작년에 폐점한 동김해점, 부천중동점 폐점 시에도 구조조정이 없었듯 이번에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