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몸 쓰는 일을 하고 싶다
[손광모의 노동일기] 몸 쓰는 일을 하고 싶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6.10 20:29
  • 수정 2020.06.10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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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디든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기자도, 사무실에서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는 화이트칼라 사무직도 정의하자면 노동자다. 하지만 왠지 노동자라는 말과 어울리지는 않는다. 노동자이지만 어딘가 ‘노동자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노동자스러움, 다르게 말해서 ‘노동자풍’ 논란이 있었다. 2010년 11월 18일 경찰청은 공식 트위터에 여대생 납치강도 및 성폭행 용의자의 수배전단을 배포했다. 경찰청은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노동자풍의 마른 체형’이라고 표현했다.

‘노동자풍이 도대체 뭐냐!’ 민주노총은 당시 경찰청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노동자풍’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설명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러한 표현이 노동자를 하찮은 존재, 남루한 이미지, 사회적 낙오자, 잠재적 범죄자 등 매우 부정적으로 규정 폄하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비판이었다.

경찰청은 이에 “‘노동자 풍’이라는 수배전단의 표현이 노동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국민여러분께 우려를 끼쳐드린 점은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히며,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조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당시 경찰청이 낸 문제의 그 수배전단지. '노동자 풍의 마른 체형'의 용의자를 수배하고 있다.

분명 ‘노동자풍’은 노동자를 폄하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청이 악의를 가지고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을 수배전단에 썼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내재된 ‘노동자 혐오’가 발현됐다고 생각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풍의 마른 체형’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노동자의 원형적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새삼스레 10년 전 논란이 생각난 이유는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의 소식을 찬찬히 다시 훑어보면서다. 최근 유난히 많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음을 당했다. 끼여서, 떨어져서, 더운 날 일하다가 심장마비로 혹은 불에 타서 노동자들은 죽었다. 그렇게 일터에서 죽은 노동자들의 노동은 우리가 ‘노동자풍’이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바로 그 ‘노동’이었다.

소위 ‘몸 쓰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곧 궂은 일, 더러운 일, 위험한 일과 동일하다. 안전하지 못한 일터의 존재가 민주노총이 지적했듯 “노동자를 하찮은 존재, 남루한 이미지, 사회적 낙오자, 잠재적 범죄자”라고 우리들을 생각하게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몸 쓰는 일을 하고 싶다. 매일같이 문장을 짜내는 기자의 일은 나의 적성과 도통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진로를 단단히 잘못 잡은 듯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요구지만, 몸 쓰는 일을 ‘안전하게’ 하고 싶다. 몸 쓰는 일이 궂은 일, 더러운 일, 위험한 일이 아닌 세상에서 격하게 몸을 쓰며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