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그 사람의 존재를 몰라도 되니, 살아있기만 했으면 좋겠다
[박완순의 얼글] 그 사람의 존재를 몰라도 되니, 살아있기만 했으면 좋겠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6.12 13:20
  • 수정 2020.07.07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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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얼굴 모르는 이의 장례식에 간 적 있다. 영정을 보고나서야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았다. 이름도 몰라서 빈소 입구에서야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그 사람의 황망한 죽음이 아니었다면 평생 나와 관계하지 않을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냉동기 수리업체에서 일을 하던 서울시립대생 황승원 씨가 2011년 7월 여름, 업체가 하도급 받은 이마트 냉동기를 수리하다 질식사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이 만든 참상이었다. 동시에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사고이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아주 나쁜 상상을 했다. 일터가 안전했다면, 엄청난 등록금의 압박은 있더라도 생명은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적어도 일터가 안전했다면 삶을 살아내려고 했던 발버둥의 방향이 죽음으로 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목격한 사건들 때문이다.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내서 소박한 현실에 가끔이라도 행복과 안정을 느끼려는 인간이 일터에서 죽었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건설노동자 김태규, 한익스프레스 화채참사로 죽은 38명의 건설노동자, 조선우드 김재순,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고온에 쓰러져 죽은 노동자. 구의역 김군 이전에도, 방금 말한 이름들의 사이 사이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려고 걸었던 길이 죽음을 향한 지름길이었다.

그들의 노동이 잔인한 건가. 그들이 행한 노동은 죄가 없다. 구의역 김군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로 PSD정비라는 노동을 했다. 구의역 김군 죽음 이후로 몇 해 지나 서울교통공사의 외주화된 업무를 내부화했다. 과정에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구의역 김군의 동료들은 정규직 노동자로 PSD정비라는 노동을 한다. 김군의 동료들이 행하는 노동은 바뀌지 않았는데, 지하철 일터에서 죽음도 사고도 확연히 줄었다.

지난달 27일 ‘구의역 김군의 동료는 정규직이 됐는데, 왜 발전소 김용균의 동료는 여전히 비정규직인가?’ 토론회에서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외주하청업체의 신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와 ‘위험 업무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였다”고 증언했다. 정규직이 되고 2인 1조 작업 시행, 열차 운행 중 선로 작업 중단 등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규직’이 이젠 안정적인 직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직장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은 힘든 과정이다. 지난달 27일 토론회 제목에서도 직관적으로 드러나듯이 ‘왜 발전소 김용균의 동료는 여전히 비정규직인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날 토론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책 수행자들의 의지를 지적했다. 특히나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이 일한 공간은 공기업, 공공기관 사업장이기 때문에 지방정부 혹은 정부의 개입력이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서울이라는 지방정부는 정규직화 정책을 끝까지 수행해 관할 지방공기업의 정규직화를 했다. 중앙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故김용균특조위 22개 권고안에 대한 이행계획을 발표했지만 발전비정규직을 자회사로 고용한다는 안이었다. 발전사 밑에 별도의 공공기관(자회사)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토론회에서 신대원 한국발전기술지부 지부장은 “정부가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름만 바뀐 큰 하청업체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행계획이 나왔을 당시 “직접고용이라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직접고용은 안 된다는 모습을 당정이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 여론도 있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하는 이야기지만, 의지의 문제라는 말은 참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과 동의어다. 정치인, 관료를 포함한 정책 수행자는 너무나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인간의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파괴가 이윤의 원천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굳건한 동맹이 정책 수행자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28년 만에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반쪽짜리라고 불리는 것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못 넘는 이유도 그 영향력 때문이다.

그런데 산재사망의 방식으로 어떤 얼굴도, 어떤 이름도 알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그 사람의 존재를 영원히 알지 못한 채 그 사람이 살아 있기를 원한다. 누군가 존재했었음을 아는 것은 슬프고 불편하고 화가 나서 좋지 않은 감정에 나를 빠뜨리는 일이다.

의지의 문제라는 말은 참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파괴가 이윤의 원천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그래서 듣고 싶다. 심지어 인간의 죽음 앞에서 의지를 갖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구체적이고 납득할 만한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죽음 앞에서 의지를 갖는 게 그렇게도 어렵냐고 물어보는데, 쉬운 일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정책 수행자들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이겠다.

지난달 27일 ‘구의역 김군의 동료는 정규직이 됐는데, 왜 발전소 김용균의 동료는 여전히 비정규직인가?’ 토론회
지난 5월 27일 열린 ‘구의역 김군의 동료는 정규직이 됐는데, 왜 발전소 김용균의 동료는 여전히 비정규직인가?’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