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전국민고용보험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전국민고용보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6.13 00:00
  • 수정 2020.06.12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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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기반’에서 ‘소득 기반’으로 부과체계 변경 필요
‘코로나19 + 4차 산업혁명’ 노동위기, 전면적 대응해야

[리포트_전국민고용보험이 온다 ③]

코로나19로 새삼 실감하는 것들이 많다. 소소하게 즐겼던 일상의 중요성부터 국가의 역할까지 다양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새로운 형태의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 예측하는 가운데 실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역할, 고용보험의 역할이 눈에 띄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고용보험이 반쪽짜리라는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9년 전체 취업자의 절반 수준인 49.4%만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절반은 고용보험의 바깥에 존재하는데, 이들은 초단시간노동자·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자영업자 등이다. 게다가 이들은 코로나19 경제 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상당수가 대면 노동자이고, 상당수가 국민들의 소비가 줄어들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서비스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국민고용보험이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

노사정 대표자는 지난 5월 20일 오후 2시 20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 한국노총

단계적 추진 vs 전면적 추진

의제는 던져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전국민고용보험 제도 추진의 접근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단계적 추진과 전면적 추진으로 접근법이 나뉜다.

‘단계적 추진이냐 전면적 추진이냐’는 많은 쟁점을 한꺼번에 포함한 표현이다. 일차적으로는 현재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를 하나 하나 없앨지, 아니면 한 번에 없앨지 추진 방법의 차이다. 단계적 추진의 예는 현재 정부의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추진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5월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예술인을 고용보험 적용대상에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제외됐다. 향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하기로 했다. 정부와 여당은 21대 국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가입 대상 포함 논의를 우선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고용보험 제도의 외곽에 존재하는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을 한 번에 가입 대상 범위에 포함하자는 것이 전면적 추진이다.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될 하반기와 내년에 예상되는 고용위기, 2차·3차 코로나19 대유행 예상 속에서 지속될 고용 불안 때문에 전면적 추진이 등장했다. 지속되는 위기 속에서 누구는 포함시키질 안 시킬지 논의만 하다 시간만 가면 고용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들의 고용보험 포함 논의가 진행된 지 10년도 넘은 역사가 있으니 단계적 추진은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말자는 뜻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국민고용보험 전면 추진을 위해,
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로 개편?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한 번에 해소하기 위해 ‘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로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현재 ‘임금’ 기반 고용보험제도는 전통적인 임금노동자와 사용자 관계 중심의 체계이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임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벌지는 않지만 ‘소득’이라는 이름의 돈은 벌고 있기 때문에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용보험에 적용할 수 있다. 소득 파악은 전통적인 고용관계의 임금노동자이든 새로운 노동형태의 노동자이든 국세청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는 국세청으로부터 소득 경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2018년 소득세 신고 인원을 살펴보면 신고 인원이 총 3,013만 명”이라며 “15~75세 인구의 72% 수준이고, 취업자의 대부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사용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에 대해서는 이윤과 매출을 기준으로 하자는 것이 소득 중심 고용보험제도 개편의 내용이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택배연대노조가 여의도 공원에서 드라이브인 집회를 하는 모습. 조합원이 ‘특고노동자 차별철폐’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 실현,
전체 취업자 들어오면 재정은 어떻게?

① 고용보험기금은 건강한가?

소득 기반 고용보험 제도로 개편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비법일까. 비법일수도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고용보험 확대 적용은 사회복지의 확대이다. 사회복지 확대는 재정 문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닌다. 고용보험기금의 경우 지난해 2조 1,000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일괄 적용하기에는 국가의 재정 부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주장의 근거도 명확하다. 고용보험의 특성상 때로는 적자, 때로는 흑자이기 때문에 당장의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송명숙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기금 자체가 실업이 늘면 실업 급여를 줘야하기 때문에 적자가, 경기가 안정세에 들어와 실업률이 떨어지면 기금이 충당돼 흑자가 돼는 구조로 설계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민기 동향분석실장은 “현재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모두 가입한다는 조건, 실업급여 지급률 60%, 수급 자격을 엄격히 제한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며 “예상 수입은 1.24조 원이고 예상 지출은 1.5~2.7조 원으로 추가적으로 필요한 재정규모는 약 0.3~1.5조 원”이라고 분석했다. 추가 필요 재정에 관해서는 “사회보험료 지원처럼 일반재정에서 충당 가능하고, 모성보험사업이 1.4조 원 규모인데 실업급여 계정에서 분리하여 일반회계로 편입시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홍민기 동향분석실장은 재정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흔한 편견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많은 언론과 시민들이 한 번에 대규모로 고용보험 안에 들어오게 되면 재정 건정성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입한 만큼 수입은 당연히 늘어 재정도 당연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② 보험료율 인상 가능할까?

고용보험제도의 특성과 새로운 가입자로 늘어날 수입과 기존 재정 활용 등으로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만은 없다. 현재 실업급여의 사회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지급률(소득대체율)을 올리고, 장기적인 기금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높여 지금보다 더 걷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고용보험법상 보험료율은 노-사 각각 월평균 급여의 0.8%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보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 노동계는 노-사 각각 0.2%씩 추가 인상을 사회적 논의 의제로 제안했다.

그러나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데는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에게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30개 경제단체로 이뤄진 경제단체협의회는 27일 조선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위기 극복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국가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경제단체 건의’를 도출했다. 경제단체협의회는 “현재도 최저임금과 사회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이 누적되며 기업들의 고용보험 부담이 매우 높은 상황인 만큼,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지키기에 추가 소요되는 재원은 일반 재정에서 충당돼야 한다”고 밝히며 고용보험료율 인상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펼쳤다. 김동욱 경총 사회정책본부장은 “지금 코로나19 위기로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금여가 많이 나가는 상황이 기업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닌데, 특수한 상황인 만큼 일반 재정을 투여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위기가 진정된 이후 경제가 회복됐을 때 보험료율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개인별로 봤을 때, 고용보험료율 인상은 비용 부담이다. 특히 대기업-공공기관 중심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고용보험을 통한 실업급여 수급 가능성은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노동자들이 반대가 심한 실정은 아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공공기관노동조합은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며 “조합원들도 실업급여 수급 가능성은 낮지만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연대 차원의 정규직 노동자의 역할을 이야기한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에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의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노동계 내·외부의 고민도 반영된 입장이다.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보험료율 인상할 유인 요건은 없는 것일까. 현재 경제단체협의회의 입장을 놓고 봤을 때는 ‘없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로 개편 내용에는 사용자 부담을 이윤과 매출 기반으로 바꾸자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간접적인 유인 요건이 될 수는 있다. 현재는 고용 인원수대로 고용보험료를 사용자가 부담해야 했다. 이윤과 매출 기반으로 사용자 부담 체계를 바꾸면 이윤은 작지만 노동집약적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게 된다. 다른 유인 요건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코로나19 장기화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구매력 유지를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관건이다.

소득 기반 전국민고용보험,
노-사 입장 차 줄일 수 있을까?

소득 기반 전국민고용보험제도를 추진한다면 현재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한 번에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노-사 이견이 있는 한 소득 기반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추진은 어려워 보인다. 보험료율 인상에서부터 노-사 입장 차가 뚜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정부의 입장도 단계적인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추진이어서 소득 기반 전국민고용보험제도 논의가 탄력 받을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사실상 단계적인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추진도 가능할지 미지수다. 21대 국회 논의로 특수고용노동자까지 고용보험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자는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강한 만큼이나 사용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수고용노동자(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운전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등 9개 직종)가 고용보험제도 안에 들어오면 ‘매칭’된 사용자는 기존에 부담하지 않던 고용보험료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특수고용노동자의 사용자가 찾아진다면 다른 사회보험료(국민연금 등)도 부담해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반발이 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21대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예술인을 고용보험제도에 포함하는 특례를 통과시킬 때,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제도 논의는 21대 국회로 넘기자는 발언을 직접으로 환노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했다. 책임 회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환노위 국회의원들이 다시 21대 국회로 입성하기도 했다. 국회의 연속성과 의원의 책임성 측면에서 ‘넘긴다’는 말은 ‘약속’과도 같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로 전환은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측면으로 실현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21일 오후 2시 정의당이 주최한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현재 가치와 방향성 수준의 의제로 던져진 전국민고용보험제도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모델(소득 기반 고용보험제도 모델)을 여론에 제시해 뚜렷한 논점을 만들어서 (노사정이) 쟁점을 가지고 토론을 하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전국민고용보험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부과 체계 변경, 징수 체계 변경, 소득 파악 방법 등)을 연구해 강하게 제시하고 있어 구체적인 모델은 준비된 상황이다. 결국 소득 기반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안을 노사정 혹은 국회가 받는 전제가 필요하다.

현재 직종을 넓히는 방식의 단계적 고용보험 확대는 향후 예상되는 코로나19 실업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고, 긴급 재정을 투여하는 식으로 실업에 대응하기에는 국가의 재정 문제도 발생한다. 또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다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충격이 전달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제도 개편 논의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코로나19발 경제위기가 예측되는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이 메이데이 집회에서 ‘모든 해고 금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전국민고용보험 = 실업급여 지급?
실업급여 넘어 일하는 사람의 복지로

고용보험은 사회안전망이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전반적인 사회복지를 맡는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복지의 보편성을 높인다. 사회복지의 보편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최근 들어 많이 나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보편적 사회복지는 이제 꾸준한 목소리가 됐고, 미증유의 사태인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본격화는 사회복지 논의를 앞당겨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지난 1월부터 4월 사이 한국 사회 고용동향 흐름을 분석했다. 그 결과는 뚜렷한 노동의 위기로 나타났다. 김유선 이사장은 연구에서 “코로나 위기에 따른 일자리 상실은 여성, 고령자, 임시일용직, 개인서비스업과 사회서비스업, 단순노무직과 서비스직 등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다”며 “앞으로 제도적 개혁이 일자리 문제와 함께 진행되지 않을 경우 한국 사회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유선 이사장이 지적한 취약계층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상당수가 놓여 있다. 결국 전국민고용보험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것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과 맞닿아 있다. 나아가 고용보험제도를 통해 단순히 실업급여 수급만이 아니라, 평생교육 및 교육훈련과 상병수당 및 질병수당 실현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첫 걸음은 소득 기반으로 고용보험제도를 개편해 모든 일하는 사람이 고용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