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요?
[정다솜의 다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6.17 18:41
  • 수정 2020.06.18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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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장면1
지난해 7월 3일, 총파업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날이었다.

당시 학교비정규직 담당이었지만, 청계천 쪽에서 다른 현장을 열심히 취재하고 있던 기자는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연두·분홍 조끼를 입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미 발언은 시작됐고 무대 앞까지 갈 수 없었다. 세종대왕 동상 근처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노트북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주요 발언이 끝나고 숨을 돌리니 주변에는 경남 김해에서 같이 버스를 타고, 출근길이 아닌 파업길에 오른 급식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정신없는 기자에게 얼음물, 깔개, 부채 등을 옆에서 챙겨주던 17년차 급식조리사 박명숙(54·가명) 씨는 정규직 조리사와 비정규직 조리사 간 차별 대우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토로했다.

"비정규직은 어디 가도 위축이 돼요. 정말 세상이 그렇게 봐요. 저도 비정규직이 될 줄은 몰랐어요. 일하다 보니 비정규직 문제는 해소가 안 돼요. 그래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거예요."

그리고 20대 중반의 두 자녀를 둔 그는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천국이에요. 우리 애들 진로도 막막해요"라며 "다음 세대라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올라오는 애들은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죠"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훅 들어온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진심에 '다음 세대'인 기자는 말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50대 비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기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90년대생인 기자 주변의 또래에게 불안정은 일상이다. 그저 세상의 디폴드값인 비정규직을 피하기 위해 스펙 경쟁에 힘을 다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2~3년씩 취업준비를 한다.

그러니까 다음 세대들은 이미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지 않는데, 앞세대가 너희들을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니. 고맙지만 어쩌면 일방적인 진심 앞에 잠시 말문이 막혀버린 기억이 선명하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비정규직 철폐하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장면2
이후 만난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중년 여성인 이들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청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외쳤다.

지난해 10월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 현장에서 하루를 보낸 뒤,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조합원 김상미(52) 씨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아들도 엄마가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데도 무심하길래 집회 한번 와보라고 했다"면서 "그래도 별 관심 없길래 편지도 써서 보내라고 했더니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줄 몰랐어요. 저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이러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자녀도 엄마의 투쟁 현장을 보고 비정규직이 되지 않기 위해 '열공'을 다짐하는 '웃픈' 사연이었다.
 
#장면3
"저는 청년들한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정규직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요. 진짜. 비정규직 오래 할수록 청년들이 패기가 다 죽고 꿈이 없어져요."

지난 4월 노인노동 르포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63) 씨도 기자와 통화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퇴직 이후 일했던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고층빌딩 인력의 80%가 청년 비정규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정진 씨는 같이 일하던 컴퓨터 전공 청년에게 이런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돈 있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말을 했더니 청년은 '에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조정진 씨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며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고다자' 인력인 청년노동도 노인노동과 별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인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고다자'가 되지 않겠다며, 로스쿨을 가겠다는 선택을 말릴 수 없었다. 불안정노동을 피하려는 아들로 인해 정년 이후 계획이 틀어져, 불안정노동 현장에 뛰어든 조정진 씨는 "퇴직할 때가 되니 어느새 자녀의 시대는 비정규직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며 "노인노동자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사정으로 퇴직 후에도 질 낮은 노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불안정한 노동시장 아래서 청년 불안정노동이 결국 노인 불안정노동을 촉발하는 상황이었다.

앞선 세대에게 말할 수 없던 거리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기자도 졸업 후 밥벌이가 늦어지면서 부모님의 노후계획을 여러 번 틀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쉬운 연결이 오래도 걸렸다. 

최근 플랫폼노동 등 새로운 고용형태가 확대되는 등 청년과 노인의 노동시장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오는 7월에도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인다. 올해엔 정신없던 지난해와 다르게 바람이 하나 생겼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의 물결 속에서 기자를 비롯한 청년들도 '연결'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