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초에 1통’ 비현실적 배송, 집배원 또 죽는다
‘2초에 1통’ 비현실적 배송, 집배원 또 죽는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6.18 07:40
  • 수정 2020.06.18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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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노조, “우정사업본부 인력 증원 약속 안 지키고 인력 내 재배치”
“코로나19 장기화로 더 늘어난 업무, 폭염에 마스크까지 더 이상은 힘들다“
17일 오전 11시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집배노조가 '일반적 집배인력 재배치 철회하고 집배업무강도 즉각 폐기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7일 오전 11시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집배노조가 '일반적 집배인력 재배치 철회하고 집배업무강도 즉각 폐기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우체국은 집배노동자들에게 죽음의 일터였다.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 연이은 집배노동자 죽음으로 지난해 전국의 집배원들이 총파업까지 결의했었다. 우정사업본부에 집배 인력 충원을 약속받고 총파업은 철회했다.

그렇다면 인력은 충원됐을까? 제대로 충원되지 않고 기존 인력 내에서 재배치를 하고 있다는 게 현장 집배노동자들의 설명이다.

17일 오전 11시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이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일방적 집배인력 재배치 철회 및 정규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집배노조는 “늘어나고 있는 택배물량과 우편물 종류의 다양화에 최근 코로나19 관련 업무 증가까지 더해져 노동강도가 더 강해졌는데, 우정사업본부는 인력 증원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닌 집배원 재배치로 노동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자가격리자에 대한 법무부 등기배송 업무, 지역 보건소 마스크 등기배송 등 업무량이 실제 증가했으며, 장기화로 인해 여름에도 집배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일상화 됐다.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은 “현장에서는 인력 재배치에, 임용된 인원까지 신규 배치를 보류하며 결원조차 채우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폭염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정한 인력이 충원되지 않고 중노동에 내몰려 집배노동자는 죽는다”고 규탄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신규 인력 배치가 아닌 기존 인력을 재배치해서 정년 퇴직 혹은 장기 병가로 인한 결원을 채우는 데는 집배부하량 산출 시스템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집배업무 효율화 명목으로 도입된 시스템인데, 쉽게 말해 모든 집배업무를 초단위로 나눠 계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통상 배달 2.1초, 등기 28초, 도착안내서 발행 35.4초 등의 초단위 시간 기준이 정해져 있다.

산출 시스템의 문제점은 배달하는 공간의 특수성과 예외 상황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파트, 빌라, 개인주택 등 주거형태에 따라 배달 방식은 달라진다. 수령인이 매번 집에 있거나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나오지도 않고, 수령 시간이 몇 초 이내에 끝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산출한 부하량으로, 예를 들어 A우체국이 지금 부하량이 기준치보다 낮으니 B우체국으로 인력을 전보시키는 것이다.

2018년 감사원에서도 집배부하량 산출 시스템 개발 및 운영이 부적정하다고 우정사업본부에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다. 실제 업무량과 비교해 이 시스템에 부하량이 과다하게 산출됐고 휴식 시간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러한 집배부하량 산출 시스템을 폐지하고 정규인력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규 인력 충원을 위해 이후 75개 지부 지부장들이 세종시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투쟁할 것이고, 조합원들과 상경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집배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앞두고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인력 988명 증원을 약속해 총파업을 철회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 측면에서도 우정사업본부가 집배노조의 지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코로나19 이후 사회공공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집배노동도 우편공공성 측면에서 사회공공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 활동의 증가해 물류 유통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 전망돼 우정사업의 증가세도 예측된다.

결국 집배노동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그 수요에 따른 적정한 인력 규모가 갖춰져야 집배노동자들도 제대로 된 사회공공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우정사업본부가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