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진화’
광장의 ‘진화’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8.10.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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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아고라
대한민국 ‘소통’의 현실을 비추다

아고라(Agora)는 원래 ‘시장에 나오다’, ‘사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고라조(Agorazo)’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세워졌던 광장으로 시민 생활의 중심지였다.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었던 아고라는 민회(民會)를 열어 국방이나 정치 문제를 토론하고 집회나 재판을 열기도 했다.

이 광장은 개방된 소통의 장소로 시민들의 여론이 형성되고 또 의사소통을 하는 중심지가 됐다. 그리고 2008년의 아고라는 인터넷 상에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래서 다양한 의견들이 더욱 가감 없이 펼쳐질 수 있는 공간으로 대한민국 ‘이슈’의 중심에 섰다.


신흥 여론, ‘아고라’의 탄생

한동안 누리꾼 ‘활동’의 주무대였던 블로그, 티스토리, 미니홈피 등의 1인 미디어에서는 ‘방문자 수’와 ‘댓글’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여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아고라는 자체적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추천’과 ‘반대’, 댓글로 순식간에 ‘이슈’에 대한 여론이 확대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누리꾼 개인에서 하나의 여론을 가진 ‘집단’으로 오프라인에 모습을 드러내며 ‘넷심’을 주도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자유게시판은 2004년 12월 생성된 이래 현재 약 2000만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하루 평균 3000여 개의 게시물이 생성되고 있다.

직접 글을 쓰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한 누리꾼은 “요즘 인터넷을 보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인터넷 게시판에 ‘여론’이 형성되고, 그 여론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정권 탄핵 서명운동을 진행했던 한 고등학생 ‘안단테’가 경찰의 소환을 받았고 게시판 내에서는 촛불집회에 주도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게재됐다.

조중동 불매운동과 비정규직 문제, 종부세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 반경은 넓고 또 깊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기사화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반론’이 제기되고, 곧이어 ‘증거자료’가 올라왔다. 그리고 ‘개념글’로 인정받은 누리꾼의 글은 메인에 올라와 댓글과 또 다른 의견 제시로 덧붙여지고 수정되며 설득력을 갖는다. 여기에 여론과 촛불 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 방식은 오히려 ‘촉매제’가 됐다. ‘닭장 투어’, ‘명박 산성’ 등의 신조어가 탄생했고 ‘쥐잡기 운동’ 등 합성과 패러디가 양산됐다.

촛불 집회에 연행됐던 한 누리꾼이 경찰로부터 받은 “당신도 아고라 소속이냐”는 질문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세상 사람’에 대한 일화로 많은 누리꾼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끊임없이 ‘조중동의 말바꾸기’에 대한 증거 자료가 올라왔고 무수한 사건들이 보태지고 더해져 ‘인터넷’세대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이로 인해 정부 정책이나 정치에 무관심했던 10대까지 이를 통해 동참하면서 여론은 더욱 크게 확산됐다.

갈등과 문제 제기 확산

촛불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아고라’는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아고라’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계층의 일반인들을 급속도로 결집시켰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변화에 감격했고 더 큰 동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새로운 ‘이슈’를 재생산해 나갔다. 그러나 한편 짧은 시간에 이뤄진 두 달 간의 촛불 여론과 이목의 집중은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비판을 낳고 있다.

지금 아고라에서는 ‘아고리언’의 변질에 대한 논의와 반박들이 한창이다.
가장 크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치고 촛불을 주도하며 여론을 형성한 주요 누리꾼들이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알바’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고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누리꾼을 ‘촛불 좀비들’이라 일컫는 사람들 역시 ‘빨갱이’나 ‘좌파’라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인신공격에 열중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늘어만 가는 메카시즘적인 선동과 비난 그리고 저질의 의미 없는 글들의 모습에서 예전 자발적인 참여로 아름답게 만들어 가던 지성의 전당인 아고라의 모습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듯하다”며 “지금 이 아고라의 모습이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대한민국의 체험판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의 성지’라 불리던 아고라 게시판은 촛불의 찬성과 반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 ‘베스트 보내기’로 도배되고 있다.

‘불과 나무들’이라는 ID의 누리꾼은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의식의 본질을 찾아야할지 뇌리에 마구 뒤엉킨 생각이 복잡하기만 하다”며 “국민은 국민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국밥이 되어 각자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소통이 불가능한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리꾼 ‘장난꾸러기’는 “지금 수많은 문제들이 아고라를 통해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분산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현 정권과 정부가 너무 문제를 많이 만들어서 지금 아고라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깊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이슈가 바뀌어버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는 이 이슈에 집중이 됐지만 지금은 그만한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화와 이해의 폭 넓혀야

촛불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아고라’는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아고라’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계층의 일반인들을 급속도로 결집시켰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변화에 감격했고 더 큰 동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새로운 ‘이슈’를 재생산해 나갔다. 그러나 한편 짧은 시간에 이뤄진 두 달 간의 촛불 여론과 이목의 집중은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비판을 낳고 있다.지금 아고라에서는 ‘아고리언’의 변질에 대한 논의와 반박들이 한창이다. 가장 크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치고 촛불을 주도하며 여론을 형성한 주요 누리꾼들이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알바’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고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누리꾼을 ‘촛불 좀비들’이라 일컫는 사람들 역시 ‘빨갱이’나 ‘좌파’라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인신공격에 열중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늘어만 가는 메카시즘적인 선동과 비난 그리고 저질의 의미 없는 글들의 모습에서 예전 자발적인 참여로 아름답게 만들어 가던 지성의 전당인 아고라의 모습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듯하다”며 “지금 이 아고라의 모습이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대한민국의 체험판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의 성지’라 불리던 아고라 게시판은 촛불의 찬성과 반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 ‘베스트 보내기’로 도배되고 있다. ‘불과 나무들’이라는 ID의 누리꾼은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의식의 본질을 찾아야할지 뇌리에 마구 뒤엉킨 생각이 복잡하기만 하다”며 “국민은 국민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국밥이 되어 각자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소통이 불가능한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리꾼 ‘장난꾸러기’는 “지금 수많은 문제들이 아고라를 통해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분산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현 정권과 정부가 너무 문제를 많이 만들어서 지금 아고라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깊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이슈가 바뀌어버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는 이 이슈에 집중이 됐지만 지금은 그만한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리꾼 ‘희망찬세상’은 “다수의 국민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그 의견을 해소시키기 위한 곳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아고라는 굉장히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임에 틀림없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국민 여론의 시발점이라든지, 국민 여론의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봐도 아고라는 편향적인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과 국회의원, 정책 당국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 중심의 논의가 의견을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이 아닌 ‘정의’와 ‘불의’의 찬반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이런 문제점을 딛고 ‘아고라’라는 여론의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제시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누리꾼 ‘은규파파’는 최근 아고라의 방향에 대해 “아고라를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려하지 말자”며 “아고라를 촛불 대 반 촛불의 대결 양상으로 보는 시각은 풍부해야 할 지식과 개념의 유입을 차단시키는 최대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내재된 배타성을 없애고 누구라도, 어떤 생각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 많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받았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누리꾼은 이에 대해 “사고가 편향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누리꾼 ‘MysticBlue’는 “우리들의 노력으로 정의와 원칙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진다면 현재의 주인 보다 더 꽉 막히고 무능한 사람이 청기와집의 새 주인이 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정도의 ‘삽질’은 시스템적으로 저절로 방지가 될 것”이라며 다시 깊이 있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갈 것을 호소했다. ‘

목탁’이라는 누리꾼은 아고라에 대해 “늙은 386인 내가 아고라의 접속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며 “방송에서 하도 아고라, 아고라 해서 한번 문을 두드린 후 이제는 폐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러나 문자와 행위는 분명 차이가 있다”며 “가끔 내가 아고라라는 공간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광장’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지난 7월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라는 책이 출간됐다. 임시로 구성된 ‘아고라 폐인’ 모임은 그간 ‘아고라’에서 일어났던 130만 명의 인터넷 서명운동과 경찰청 홈페이지 자수 소동, 그리고 오프라인 활동, 아고라에 게재됐던 게시물 등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는 아고라를 “어디로 나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논란’과 ‘주장’에 가려 있지만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심층적인 분석과 의견은 계속해서 꾸준히 개진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비정규직과 장기투쟁사업장, 종합부동산세 등 사회 전반의 이슈에 대한 분석,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매스컴에 보도되기 전 미국발 금융 위기와 리먼 브라더스, 중소기업들의 키코 문제 등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조목조목 짚어내며 우려를 표했던 누리꾼 ‘미네르바’의 글이 새삼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미네르바’는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아고라 내에서 활동을 멈춘 상태다. 그러나 아쉬움을 가진 많은 누리꾼들은 그간 게재됐던 미네르바의 글을 모아 공유하는 등 아직까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5일 <파업을 앞두고 시민들의 의견을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운수노조가 게시한 글에 18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논쟁 중’인 기사에 올라왔다.

‘환상을횡단하기’라는 누리꾼은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이 글을 보고 “예전엔 파업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면서 말 그대로 욕 잔치여서 식겁했었다”며 “비정규직 파업이라 할지라도 인터넷 여론은 싸늘하게 얼어붙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참 운수노조만큼 욕먹는 노조도 없었는데, 지금은 파업을 지지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분명 촛불의 위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촛불에 의해서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가장 큰 정치적 쟁점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맑은해’라는 닉네임의 누리꾼은 “생각 외로 많은 대학생들이 촛불과 아고라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여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젊은 사람들 중 ‘집회’나 ‘시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음에도 어떤 불평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합리화 내지 변명의 대상을 딱히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무조건적인 비판을 받으니 더욱 반발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취업도 어렵고 모든 것이 불명확한 현재의 시기에 ‘청소년’이 촛불로 조명 받고, 거기에 30~40대들이 동조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고유가와 금융위기, 종부세와 재산세 등 개개인이 고민해야 할 사회적 의제들은 늘어나고 있으며 반면 스스로 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줄어들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떠나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울분을 터뜨리고 불안한 미래,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비판에 비판을 거듭하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와 소통의 부재는 ‘광장’ 안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공유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경험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뜨거웠다”라는 기억만이 아니라 수많은 착오와 또 과정들을 거쳐 ‘소통’의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