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괴롭히는' 대전MBC, "채용 성차별 반성, 정규직 전환은 거부"
아나운서 '괴롭히는' 대전MBC, "채용 성차별 반성, 정규직 전환은 거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6.18 18:01
  • 수정 2020.06.19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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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MBC 아나운서...여성 25%만 정규직, 남성은 82.9%
“포기하지 않고 ‘채용 성차별’ 공론화한 유지은 아나운서에 감사”
유지은 아나운서가 18일 대전MBC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 장재완 오마이뉴스 기자
유지은 아나운서가 18일 대전MBC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 장재완 오마이뉴스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전MBC에 아나운서 중 여성만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온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결하라며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시민단체 연대는 대전MBC에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2019년 6월 18일,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와 김 아무개 아나운서는 ‘채용 성차별’ 관행을 지적하며 대전MBC를 상대로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접수했다. 1년 만인 17일, 인권위는 대전MBC에 여성을 차별하는 채용 관행이 있다고 판단, 두 아나운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증인 진술, 고용 통계, 지역 MBC 고용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인권위는 대전MBC에 ▲장기간 지속한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 업무를 수행한 두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 ▲인권위 진정을 이유로 두 아나운서가 당한 불이익에 대해 각 500만 원 위로금을 지급할 것 ▲대전MBC의 대주주인 (주)문화방송에서 본사 포함해 지역 계열사 방송국의 채용 현황 실태조사를 하고, 성차별 시정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권고했다.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는 18일 서울 MBC 본사와 대전MBC 앞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MBC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떳떳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권고 이후, 대전MBC는 채용 성차별이 있다는 인권위 지적을 받아들인다면서도 정규직 전환 권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전MBC, 20년간 모든 여성 아나운서가 비정규직

인권위는 "1990년대 이후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며, 계약직 아나운서와 프리랜서 아나운서 등 비정규직에는 예외 없이 여성이 채용된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된 성차별적 채용 관행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지난 20여 년간 대전MBC는 한 번도 여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인권위 조사 결과, 대구MBC가 1997년부터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다. 20명의 비정규직 아나운서(계약직 15명, 프리랜서 5명)는 모두 여성이었다. 오직 남성만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채용 성차별’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인권위는 "임금, 연차휴가, 복리후생 등에서 두 아나운서를 불리하게 대우한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이며, "여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남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형태를 달리하여 모집ㆍ공고하는 등 이미 모집 단계에서부터 성별에 따라 고용형태를 달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전MBC는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인권위 지적을 받아들인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간 대전MBC는 공교롭게도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 성차별의 의도가 없었고, 실제 모집요강 등의 절차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거나 특정한 성별로 제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규직'처럼 일 시키고, '프리랜서'딱지 붙인다 

인권위는 두 아나운서의 업무 내용 및 수행 방식이 "형태만 프리랜서일 뿐, 사실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판단 근거로는 두 아나운서가 일을 하면서 ▲편성제작국에서 업무 지시를 받은 점 ▲프로그램 개수 및 방송 분량 등에서 정규직 아나운서와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점 ▲정규직 아나운서와 업무가 상호 대체 가능하였다는 점 등을 들었다.

여성 아나운서 중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은 원인으로는 방송계의 왜곡된 인식을 꼬집었다. 인권위는 "여성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를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다시 프리랜서로 고용형태를 전환한 것은 여성은 나이가 들면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며 "여성 아나운서들을 원하는 기간 동안 사용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의 책임을 회피하고 손쉽게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성차별적 채용 및 고용 환경을 유지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대전MBC에 두 아나운서의 정규직 전환을 권고했지만, 대전MBC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기업이 남녀고용평등법에 채용상 차별 금지조항을 위반해도 최고 벌금 500만 원을 받을 뿐”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한 정책과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용 성차별, '대전'이 아닌 'MBC'의 문제

이번 인권위 조사를 통해서 ‘채용 성차별’이 문화방송 전체의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문화방송 16개 계열사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별 성비 현황을 보면, 남성 중 정규직 비율은 82.9%(34명)에 달했으나, 여성은 25%(9명)에 불과했다. 여성 아나운서의 61.1%가 계약직과 프리랜서였다.

문화방송 16개 계열사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별 성비 현황 ⓒ 국가인권위원회
문화방송 16개 계열사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별 성비 현황 ⓒ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는 “방송계 전반에 성차별적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문화방송에 본사를 포함해 16개 지역 계열사 채용 현황에 대해 실태를 조사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의하는 등 성차별 시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엽합 공동대표는 문화방송이 책임지고 유지은 아나운서로 촉발된 ‘채용 성차별’ 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김언경 공동대표는 “현재 MBC는 공영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여러 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말 국민 품으로 돌아가겠다면, 젊은 MBC가 되겠다면, 상식과 도덕이 있는 MBC를 말하려면 이번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대전MBC가 인권위의 권고에 ‘뻗치기’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을 그냥 방치하는 게, 과연 상식적인 회사의 행태인가”라고 말했다.

이어서 “계열사인 지역MBC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문화방송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분명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 이미 인권위 권고가 나오기 이전에 공영방송인 MBC가 먼저 입장을 표명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MBC본부와 대전지부 등은 인권위가 이번에 내놓은 50장 권고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숙독해 달라. 그 내용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공영방송 MBC를 살려 나갈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기 바란다”며 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일감 줄이기, 분장실 사용 제한
보복으로 대응하는 대전MBC


인권위 진정 접수 이후, 두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하차 통보, 분장실 사용 제한, 자리정리 통보, 홈페이지 인물 소개 삭제 등을 겪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현재 한 개 라디오프로그램 진행만을 맡으며 월 50~60만 원 임금을 받고 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9시 뉴스 앵커를 포함해서 고정적으로 3~5개 프로그램을 맡는 대전MBC 대표 아나운서였다. 또 다른 진정인 김 아무개 아나운서는 2019년 9월 임금하락에 따른 생활고로 퇴사했다. 김 아나운서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한 후, 퇴사 직전까지 주급으로 5만 원을 받으며 버텨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건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며 "지금 이 대립이 건강한 대결인지,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괴롭힘인지 대전MBC에 묻고 싶다"고 심정을 밝혔다.

인권위는 대전MBC가 인권위 진정 제기 이후 두 아나운서의 방송출연 개수와 시간, 보수를 일방적으로 축소한 것은 인권위 진정을 이유로 한 불이익한 처우라고 보고, 각각 위로금 5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사건 대리인인 김승현 노무사는 현재 대전MBC가 "굉장히 악의적인 대응을 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대전MBC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지은 아나운서를 절대 '해고'시키지 않고 있다. 대전MBC가 해고 문제로 인한 법적 다툼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며 "서울 MBC 본사도 일방적으로 프리랜서 직원 해고를 감행했다가 법정에서 패소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대전MBC는 인권위의 정규직 전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7일 언론에 "다툼의 소지가 존재한다"며 장기적인 법적 공방을 시사한 바 있다. 개인과 기업 간 소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티기 상황이다. 장시간 다툼에 지친 개인이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거나,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경우가 많다. 김승현 노무사는 대전MBC가 유지은 아나운서에게 "극도의 생활고만 겪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국가인권위의 대전MBC 여성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인정 환영한다! 공영방송 MBC는 국가인권위 권고안 조속히 이행하라!'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국가인권위의 대전MBC 여성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인정 환영한다! 공영방송 MBC는 국가인권위 권고안 조속히 이행하라!'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