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국내 항공부품사 위기, 정부 응답해야
[이동희의 노크노크] 국내 항공부품사 위기, 정부 응답해야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6.20 19:39
  • 수정 2020.06.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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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ro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roplus.co.kr

“길은 곧 삶이라 했던가.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고 가고 물건을 사고판다. 그러니 길은 곧 경제요 산업이다. 수천수만 년 동안 누군가의 삶으로, 삶으로 이어온 사천은 이제 하늘길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곧 항공산업이다. 이 항공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첨단항공우주산업도시’라는 꾸밈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천시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남 사천시에서 지난 2016년 발간한 《사천항공 63년사―사천 항공 역사가 곧 대한민국 항공 역사다》에서 가져온 문단이다. 연사 특성상 한껏 치켜세우는 미사여구는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연사까지 만들어 사천시 항공산업의 역사와 위상을 알릴 정도니, 사천시에서 항공산업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항공제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사천시에 위치한 항공부품사들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혔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보잉, 스피릿, 에어버스 등 글로벌 항공기 제조업체는 비행기를 만드는 걸 멈췄고, 이들 원청에 부품을 납품하는 항공부품사는 그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관련 기사:“미래가 안 보인다” 경남 사천 항공부품사 ‘정부 지원 절실’)

경상남도와 사천상공회의소,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등이 함께 발족한 ‘항공제조업 생존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사천항공산업단지 내 노동조합이 만든 ‘사천항공산단노동자연대(가칭)’는 항공부품제조업종도 정부의 특별고용지원업종과 7대 기간산업에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7대 기간산업에는 항공운송업은 들어가 있지만, 항공제조업은 빠져있다.

사천시 사남공단에 위치한 항공부품사 아스트(ASTK), 아스트 노동조합 대표인 최진영 금속노조 경남지부 아스트지회 지회장은 전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결정을 아직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근황을 전했다.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천시에서 경남도로, 경남도에서 중앙정부로 차례로 올라갔지만 마땅한 대책이 내려오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전날 최진영 지회장에게 전화한 이유는 국내 항공부품사의 위기를 두고 좀처럼 업데이트 되는 정부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전날은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자동차산업 등 7대 기간산업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총 5조 원 규모의 운영자금 대출 계획을 밝힌 날이기도 했다.

최진영 지회장은 “자동차산업 역시 당연히 힘들겠지만, 자동차는 그래도 내수 시장이 있는 반면 항공부품은 내수 시장이 없다”며 “정부에서 이런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지원을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아스트 노동자들은 지난 5월 1일부터 필수 인력을 제외한 인원이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한 휴직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사천항공산업단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휴직에 들어간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있는 소수 사업장일 뿐, 이미 중소·영세 항공부품사를 중심으로 권고사직,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부 국가에서는 이동 제한조치 및 국경폐쇄조치를 해제 또는 해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항공기 제조업체가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조업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항공부품사가 회복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항공부품사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같은 정상적인 조업을 위해서는 항공기 제조업체와 비교해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어려움이 ‘최소’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최진영 지회장은 “허공에 떠드는 것처럼 우리들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오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그르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옛 상인들이 큰 장이 서는 진주를 찾아가다 길을 잘못 들어 삼천포로 갔다는 설과, 부산에서 출발하는 열차에 진주행과 삼천포행 승객을 모두 태운 다음 계양역에서 객차를 분리하는데 이 때 객차를 잘못 타서 삼천포로 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설이다. 삼천포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예로부터 삼천포가 길이 나뉘는 중요한 지점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삼천포는 사천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하늘길을 통해, 항공산업을 통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천으로 통하는’ 시대를 만들고 싶어한다. 사천은, 그리고 그곳의 항공산업과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기로에 섰다. 국내 항공부품사 위기에 대한 정부의 빠른 결정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