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최은혜의 온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7.03 11:24
  • 수정 2020.07.03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지난주 월요일 오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기사 링크였다. 그렇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완료 기사였다. 친구는 그 기사를 보내면서 욕을 했다. 그런 친구에게 별다른 답장을 하지 못했다.

다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주변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가 허탈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를 취재해왔었음을 알렸다. 잔뜩 화가 난 친구를 살살 달랬다. 또 친구가 오해하고 있는 내용을 재차 설명했다.

6월 21일 밤 9시 경 인천국제공항공사 홍보실에서 보내온 메일 한 통이 대한민국을 2주째 뒤집어놓고 있다. 정규직 전환 완료 발표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판단은 오류였다. 오히려 사회적인 논란이 야기됐고 가짜뉴스까지 양산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당사자와 취업준비생에게는 상처만 남았다.

비난의 화살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노동자들에게 혹은 전환 완료가 발표되는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자들에게 쏟아졌다. 정규직 노동자와 전환 대상 노동자도 서로에게 칼날 같은 발언을 쏟아낸다. 3년 동안 3번에 걸쳐 어렵게 합의를 이뤄낸 인천국제공항 모든 노동단체도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이번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과 이후 논란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정부다. 사실 이번 논란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대통령 의지로 2017년 5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정부의 후속조치는 그해 7월에 나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전부다.

각 기관이 ‘알아서’ 정규직 전환을 이어가야 했다.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정규직 전환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공만 던져주고 뒷짐 진 채 방관한 정부가 만든 셈이다.

일각에서는 3년이나 끌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문제가 이렇게 후속대책도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데에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라고 불리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민주노총이 서명할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딜'이라는 의문도 제기한다.

최근, 정규직 전환을 완료한 공공기관 노동조합 담당자의 얘기를 들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정책이지만, 기획재정부가 제시하는 인건비 예산으로는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실질적인 처우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노동조합 담당자들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와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있지만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기형적 노동구조. 그 구조의 핵심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왜곡된 구조 속에서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지만, 우리가 칼끝을 겨눠야 할 대상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부와 왜곡된 구조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