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가자’ 단위노조에 힘이 되는 의료노련
‘기본으로 돌아가자’ 단위노조에 힘이 되는 의료노련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3 00:00
  • 수정 2020.07.1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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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먼저 잘 다진 후 정책과 정치적 역할을 병행” 조직 내실 다지기 방점

[인터뷰] 신승일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신승일 위원장은 본인을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넘나드는 그의 인상 아래에는 단단한 ‘강단’이 있었다. 다른 누구의 기준이나 잣대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의 기준에 따라 신승일 위원장은 노동운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신승일 위원장은 지난 6월 9일 제10대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21년 의료노련 역사상 첫 경선으로 치러졌기에 더욱 값진 결과였다. 신승일 위원장은 인하대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을 4선째 경험하고 의료노련 사무처장도 1년간 역임한 바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선거 기간 중 ‘TRUE(Trust, Realism, Useful, Expansion) 의료노련’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신승일 위원장은 “단위노조들이 힘을 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당선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의료노련을 이끌어 갈 신승일 위원장의 복안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6월 24일 오후 3시 30분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실에서 진행했다.

신승일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신승일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신승일 위원장은 누구?

Q. 위원장 이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1996년 인하대병원에 병원행정직으로 입사했다. 입사 당시 인하대병원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인하대병원이 1996년 5월 27일에 설립됐으니 정확하게 10년 7개월 후인 2006년 12월 26일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입사 당시에는 노동조합이 뭔지도 잘 몰랐고 노동조합 위원장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설립될 때 주변에서 노조 간부로 일하면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직종이 행정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스로 조직에 순응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말까지 했던 걸 보니 이래저래 그런 모습을 많이 보였나 보다.(웃음) 그렇게 주변의 권유로 사무국장직을 맡게 됐다. 그때 노동운동에 뛰어들어서 현재에 이르렀다.

Q. 주변의 권유가 가장 컸던 건가?

그렇다. 권유를 받아서 하게 된 건 맞지만, 결국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노동운동에 대단한 큰 뜻이 있거나, 처음부터 조합원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건 맞는 것 같다. 이후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행정직’이라는 선입견을 넘어라

Q. 현장을 경험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셨을 것 같다. 병원사업장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도 이걸 알기까지 시간이 다소 흘렀던 것 같다. 헌법에서 보장돼 있는 노동기본권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의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리와 의무를 잘 모르다보니 정작 본인이 어떤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의무의 문제임에도 권리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못 찾기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밖에서 병원 노동자를 볼 때 화이트 가운을 입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로 병원사업장만큼 노동 강도가 높은 곳이 없다. 병원 노동자들은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노동을 같이하고 있다.

Q. 이러한 문제를 인하대병원에서는 어떻게 풀었나?

병원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다. 한 직종에다가 포커스를 맞춰서 중점적으로 교섭을 하는 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선순위가 있긴 하다. 간호직종이다. 물론 간호직종 말고도 다른 의료직종도 힘든 건 모두 같다. 그러나 간호직종은 교대 근무라는 특성이 있고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있다.

처음 노동조합을 시작할 때는 간호직종의 노동조건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근무시간, 휴식시간 조정 등이다. 그러던 중에 간호사의 노동문제는 결국 인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병원은 노동집약적 사업장이다. 총지출에서 인건비가 50~60%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인력 충원의 여력이 얼마 없기도 하다. 현재 인하대병원에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일부 병동이 아닌 전 병동에 걸쳐 시행하고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 당시 어마어마하게 인력 충원이 필요했다. 정부에서 수가를 보전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범사업에서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원사업장에서 간호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배경인 것이다.

Q. 위원장은 노동조합 인사로서는 특이하게도 병원 행정직 출신이다. 이러한 이력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처음에 굉장히 오해를 많이 받았다. 행정 출신이라고 하면 조합원들은 색안경을 쓰고 봤다. 지금도 여전히 흠집 내는 사람은 흠집 낸다. 그런데 지금은 잘 안 통한다. 조합원들이 직종과 상관없이 ‘노동조합 하시는 분’이라고 안다.(웃음)

사실 노동조합은 경영적인 측면에 어두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우 교섭이나 협상에서 굉장히 불리하다. 어느 정도 경영을 알고 카운터 파트너로서 협상력이 있는 게 굉장히 큰 이점이다. 쟁의행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협상에서 유리한 부분을 취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병원도 계속적으로 유지 존속이 돼야 큰 파이를 만들어서 노동조합이 나눠가질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신뢰하면 병원도 협상할 때 속이지 않는다. 그래서 행정출신이라는 선입견만 없어진다면, 협상력을 발휘해서 노동자에게 상당히 좋은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조합원으로부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인정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위노조에 힘이 되는 의료노련

Q. 현재 의료노련은 어떤 상황에 위치해 있다고 진단하는가. 단위노조에 힘을 싣겠다는 공약을 내건 이유는?

의료노련의 조합원 수가 늘어난 건 4~5년 전부터다. 전 위원장이었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워낙 열심히 뛰어다닌 점이 있다. 그런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다. 몸집이 불어나기 이전의 의료노련에는 조직이 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 순천향대학교병원, 인하대학교병원, 건국대학교병원과 한도병원 외에 조직이 없었다. 그러니까 5~6개였던 조직이 현재 23개로 늘어났다. 그에 맞게 지금은 그때와 조직의 운영방식의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사실 의료노련 산하에 있는 대형, 다수노조는 상급단체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생적으로 할 수 있는 색깔과 여력이 있다. 그런데 현재 신생노조와 소수노조는 절대적으로 상급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소수노조와 신생노조는 상급단체에서 관심을 안 가지면 잠깐 나왔다가 소멸할 수 있다. 그 경우 의료노련은 근본적으로 조직규모가 커질 수 없다.

의료노련은 그동안 정치·정책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 부분은 이수진 의원이 정계로 진출하면서 잘 마무리됐다. 제가 할 부분은 기본적인 상급단체 역할인 단위노조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쪽으로 의료노련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Q. 이제 조직화 사업에 주력할 예정인데, 그 과정에서 복수노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복수노조 제도의 취지 자체는 좋았으나 현장에서는 격한 노노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급단체가 한국노총으로 같은 복수노조 사업장은 총연맹에서 조율을 힘들어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나뉜 복수노조 사업장은 서로 선명성 경쟁을 격심하게 한다.

이를 구분해 달리 접근할 것이다. 사실 같은 그릇이더라도 한 번 깨지고 나면 다시 붙이기가 참 어렵다. 한국노총 안에서 서로 화합을 도모한다든지 큰 틀에서는 서로 한발 양보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양대 노총으로 나뉜 복수노조 사업장에서는 지금하고는 대응이 다를 것이다. 공격적으로 나간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방어조차도 제대로 못했다면, 앞으로 제대로 방어할 것이다.

Q. 단위노조 강화라는 공약에 복수노조 대응을 염두에 둔 내용이 있나?

단위노조 강화 공약에서 교육 선전에 방점을 뒀다. 그동안 의료노련 산하 단위노조가 교육·선전 부분이 약해서 민주노총의 공세에 밀렸던 게 사실이다. 이 부분을 강화해서 적어도 우리 조합원들이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 현혹당하거나 인지왜곡은 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을 공격할 이유는 사실 없다고 본다. 그런데 민주노총 조직은 분간 없이 한국노총 사업장에 있는 단위노조를 ‘어용화’시킨다. 제가 볼 때 이러한 행위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어용노조가 정말로 있다면 구성원들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지 않겠나.

물론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님과 자리를 가져볼 생각이다. 서로 갈등·반목하기보다는 힘을 합쳐서 복수노조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Q. 총연맹으로서 한국노총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노총이 1노총의 지위를 최근에 안타깝게도 잃었다. 이를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다. 한국노총은 굉장히 합리적인 조직이다. 너무 정치세력화 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있지만, 한편으로 한국노총이 상생의 노사관계를 주도한 점도 사실이다. 한쪽이 힘의 우위를 점하면 노사관계가 온전히 잘 갈 수는 없다. 한국노총이 1노총의 지위를 되찾아서 협상의 주도권을 원래대로 가져왔으면 한다.

Q. 위원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상이 있다면?

근본적으로는 노사관계는 신뢰다. 노사 모두 상대에게 신뢰의 모습으로 다가가야 한다. 사측도 정보나 자원을 못 믿어서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 서로 이해를 구하고 발전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도 기업의 실적이나 현황을 알려고도 해야 한다. 힘으로 하는 것은 정말 마지막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사정이 안 좋은 곳은 힘의 우위가 있는 쪽에서 자꾸 누르려고 한다. 이 경우 노사관계는 깨지게 된다. 힘의 균형을 서로 존중해주고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노사 각각 존중해줘야 할 상대의 권리가 있다. 회사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존중해야 하는 한편, 노동계도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 경영을 하는 입장을 존중해줘야 한다.

Q. 조합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까지 노동조합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자기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해 조합 활동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조합원이 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의료노련도 단위노조 조합원에게 좀 더 많이 다가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