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내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에 동그라미
[이동희의 노크노크] 내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에 동그라미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7.18 00:33
  • 수정 2020.07.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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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16일 시행 1주년을 맞았다. 정부, 국회,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은 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지난 1년의 성과는 실망스럽다. 성과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에게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중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총 454명(45.4%)으로 조사됐다. 지난 15일에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역시 직장인 1,000명에게 ‘지난 1년 동안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변화가 있느냐’를 물었더니 ‘변화가 없다’는 응답이 72%로 나타났다. ‘줄었다’는 응답은 20%, ‘늘었다’는 응답은 8%였다.

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일터에서는 ‘무엇을’ ‘어디까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지 그 판단이 어렵다는 측면이 하나 있다. 쉽게 말하면 ‘여기서부터는 직장 내 괴롭힘이야’라고 칼같이 선을 긋기 어렵다는 것. 정당한 업무 지시와 직장 내 괴롭힘의 경계가 모호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직장 내 위계관계에 따른 업무상 필요를 빙자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량화하거나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명확한 판단이 어려워서일까. 직장 내 괴롭힘 법은 ‘사업장 내 자율적 문제 해결’을 해결 방안으로 설계돼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는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여러 설문조사는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직장 내 괴롭힘 법이 꼭 필요한 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족하면 보완하면 되고, 고쳐 나가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노동자 개인이 직장에서 발생한 폭언, 모욕, 비하, 협박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이러한 행동을 개인의 결함, 인성 문제로 치부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박성우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대표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단순히 당사자 간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며 “사용자 입장에서도 조직의 질서, 구성원들의 결속력과 조직에 대한 신뢰를 높여 결국은 사업체의 성장과 발전에서 핵심 토대가 되는 사안임을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이 “직장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시작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여기를 주목. 직장갑질119는 보다 정확한 직장 내 괴롭힘 분류를 위해 아래 32가지 괴롭힘 유형을 제시했다. 아래 박스를 찬찬히 읽어보고 자신이 경험한 유형이 있다면 동그라미를 그려보고 수치화하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아래 유형의 괴롭힘을 저지른 가해자가 아니었는지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

[폭행] 물건을 던지거나 책상을 치는 등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하는 행위
[폭언] 욕설이나 폭언 등 위협 또는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행위
[모욕] 다른 직원들 앞에서 또는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행위
[협박] 업무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는 행위
[비하] 외모, 연령, 학력, 지역, 성별, 비정규직 등을 이유로 인격을 비하하는 행위
[무시] 업무나 인간관계 등에 대해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행위
[따돌림] 상사나 다수의 직원이 특정한 직원을 따돌리는 행위
[소문] 개인 사생활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 허위사실 등을 퍼뜨리는 행위
[반성] 적정범위를 넘거나 차별적으로 경위서, 시말서, 반성문, 일일업무보고를 쓰게 하거나,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독후감을 쓰게 하는 행위
[강요] 회식, 음주, 흡연 또는 금연을 강요하는 행위
[전가] 본인 업무를 부하 직원에게 반복적으로 전가하는 행위
[차별]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하는 행위
[사적지시]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지시하는 행위
[배제]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행위
[차단] 컴퓨터, 전화 등 주요업무 비품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 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하는 행위
[사직종용] 업무상 차별, 배제를 동반한 사직 종용 행위
[실업급여] 권고사직 확인 등 구직급여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행위
[사비] 회사 용품을 개인 돈으로 사게 하는 행위
[비밀] 의사에 반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제보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행위
[업무제외]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업무를 주지 않는 행위
[후원] 특정종교나 단체의 활동 또는 후원을 요구하는 행위
[장기자랑] 회사 행사에서 원치 않는 장기자랑, 경연대회 등을 요구하는 행위
[행사] 체육행사, 단합대회 등 비업무적인 행사를 강요하는 행위
[태움] 업무를 가르치면서 학습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괴롭히는 행위
[정보] 사고위험이 있는 작업시 주의사항이나 안전장비를 전달하지 않는 행위
[건의] 정당한 건의사항이나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
[감시]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을 감시하는 행위
[모임] 동호회나 모임을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강제로 가입시키는 행위
[모성] 임신·출산·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하거나 비하하는 행우
[야근] 야근, 주말출근 등 불필요한 추가 근무를 강요하는 행위
[SNS] 업무시간 이외에 전화나 온라인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행위
[휴가] 휴가나 병가, 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주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