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속노조 언론담당자가 기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기고] 금속노조 언론담당자가 기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08.02 14:14
  • 수정 2020.08.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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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김 기자님, 이어지는 장마에 몸도 마음도 축축해지는 날들입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출범과 함께 민주노총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 마무리됐습니다. 기자가 아닌 기자를 돕는 위치지만 어찌 되었건 취재의 전장 한복판에 발을 담근 입장에서 지난 한 달간 지켜본 민주노총 관련 보도 모습들에 대해 몇 자 적어 보냅니다.

90년대 중반, 북한 연구 방법론을 두고 ‘내재적 관점’ 논쟁이 있었습니다. 송두율 선생이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체제의 목표와 조건 같은 내재적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한 후 강정인 선생과 강정구 선생의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고 이종석 교수는 ‘내재적-비판적 관점’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던 논쟁이었습니다. 논쟁 자체는 한국 사회, 특히 학술계가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과정의 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최근 언론이 민주노총을 다루는 방식을 놓고 “기자도 민주노총 조합원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는 항의를 자주 받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기사에 불만이 있으면 조합원들은 일단 저에게 항의를 합니다. 대신 어필을 해달라는 거겠지요.) 그럴 때마다 “아니 기자가 기자로서 기사를 써야지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기사를 쓰면 그게 노보지, 신문이냐”고 반박합니다. 아무리 사주가 있고 데스크가 있어도 기자는 독립된 주체라는 믿음이 없으면 솔직히 제가 하는 일은 기업체 홍보과장이랑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노동운동이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승리의 순간보다는 패배의 기억이 더 많고, 좌절하는 사업장을 끊임없이 지켜봐야 하는 고통도 술 몇 잔으로 털기엔 힘이 부칩니다. 때로는 격렬한 갈등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도 버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경험 몇 가지에 더해 그래도 최소한 내 삶이 이 세상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는 자긍심 때문입니다. 내가 비켜서지 않고 역사의 물줄기 안에 있다는 자긍심마저 없다면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내재적 관점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90년대 논쟁의 찬반 입장을 달리했던 지식인들이 그래도 동의한 것은 최소한 남한 연구자가 북한을 들여다볼 때는 자신이 타자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한 달간 민주노총을 둘러싼 기사의 홍수 속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모든 매체가 민주노총 집행부의 대변인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튼, 일단락이 나는가 싶었던 찰나에 본 한 일간지의 기사(“반찬 마음에 안들어 밥상 걷어 찼다”… 민주노총의 사면초가―한국일보, 7월 30일 자)는 모든 긴장을 다시 조여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사는 끄트머리에 “찬성파 측 관계자는 ‘(강경파)소수가 다수를 지도한다는 수령교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는 전언이 붙어있습니다.

저는 제가 수령교시를 내리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수령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용의 형태라고 해서 그 문구를 지면에 올린 매체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수의 강경파”라는 친절한 편집은 이미 해당 문구가 인용이 아니라 매체의 가치판단을 담은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솔직히 모욕적이고 해당 매체에 대해 가졌던 애정을 생각하면 서글퍼집니다.

지난 한 달을 뒤돌아보면 제 한국말 개념이 잘못된 건가 당혹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중집 다수의 반대를 확인했으니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겠습니다”, “합의안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찬성해야 합니다” 전제와 서술어가 따로 노는 논리가 민주노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우리 언론은 그걸 지적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야 한다는 가치판단과 사실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단어와 개념의 엄밀함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쓰는 노동조합 성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주 전쯤 사내의 논란에 대해 한국일보 기자들이 대자보를 붙인 일이 있습니다. 민주노총 이슈와는 다른 일이지만 그 글의 마지막 “이제 틀린 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말하겠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의 논란 안에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는 사실이 아니라 판단의 영역이니 제외하고, 최소한 보도하는 과정이 틀렸다고는 제가 감히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입 기자가 출입처에 애정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출입처를 이해할 의무는 있습니다. 그리고 출입처에 대한 정보가 그 이해를 갈음하지 않습니다. 언론계 종사자를 제외하고 언론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있는 사람으로서, 언론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근거, 실마리 하나 정도는 남겨놔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금속노조 언론부장 장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