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없는 게 메리트라네
[임동우의 부감쇼트] 없는 게 메리트라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8.03 17:39
  • 수정 2020.08.03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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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장마가 길어지면서 번잡한 마음이 하루하루 가라앉고 있다. 특히 더위에 취약한 내게 장마는 반가운 일이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1시간 정도 걸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던 달을 보기 어렵다는 거다.

호우경보가 내린 주말, 집에 나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그리운 마음을 대신하고자 가수 옥상달빛의 노래를 듣기로 했다. 옥상달빛의 첫 번째 정규앨범 <28>에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수고했어, 오늘도’ 등의 노래가 수록돼 있다. 총 12개의 곡 중 나는 타이틀곡인 ‘없는 게 메리트’라는 노래를 자주 찾는다. ‘없는 게 메리트’고 ‘있는 게 젊음’임을 반복하는 이 노래의 가사 중 가장 공감하는 구절은 ‘나는 가진 게 없어 손해 볼게 없다네-’ 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난 주중에 친구 셋을 만나 논쟁 벌인 일을 다시 떠올렸다. 오랜만에 만나 포테이토가 잔뜩 올라간 피자에 레드락 맥주도 한 잔 걸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공인중개사인 친구 A가 부동산 얘기를 하는 순간 나는 우리의 대화가 격랑에 휩쓸릴 거라 직감했다.

친구와 내가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이유는 집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친구는 집을 투자의 수단으로, 나는 주거의 수단으로 바라봤다. 나는 가진 게 없으니, 현 정부의 이번 부동산 정책이 그동안 ‘세금 부담 없는 가장 확실한 재테크’로 인지된 부동산의 거품빼기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데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논쟁 이후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홀로 생각해보니, 참 재밌던 건 친구 A와 나, 둘 다 무주택자라는 점이었다. 셋 중 우릴 중재하던 1주택자 친구 B가 오히려 담담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정부들이 관행적으로 펼친, 경기부양을 위한 선심성 정책 완화 및 강화로 인해 결국엔 다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불패 신화’에 대한 신뢰가 만연해 있다. 부동산으로 인한 투기소득 불감증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 자산이라고만 생각해봐도 리스크를 포함한 책임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한정된 토지 내 주택수요가 인구수보다 많다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게 당연함에도 집값은 요지부동이며, 이러한 현상이 집의 본질을 주객전도하는 기형적인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학창시절 누군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던졌을 때 관련 없는 이야기라며 실없이 웃고 말았지만, 지금 그 말을 떠올려보면 왠지 으스스하다. 2030세대의 ‘빚 내서 집 사기’ 현상이 과열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자면, 무한한 욕망을 긍정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매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문제는 욕망이다.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은 시장 가치 추구만을 위해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이며 ‘본질’이다. 복잡한 욕망보다 단순한 본질로 시선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과거부터 정치권과 유착해 로비를 벌였던 건설업에 대한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선분양제 등 말도 안 되는 제도들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

‘없는 게 메리트’라며 하루하루를 노래하는 젊은 세대의 거주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번 정부가 본질을 위해 빼어낸 칼이 무뎌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