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말하는 건 쉽고 사는 건 어렵고
[박완순의 얼글] 말하는 건 쉽고 사는 건 어렵고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8.07 13:44
  • 수정 2020.08.07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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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건 좀 속세에 찌든 이야기 같지만 아버지 어디 다니시냐고 물어봤을 때…”

코로나19로 실업의 위기 앞에 놓인 한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그의 이야기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한 이직과 전직을 고려해본 적은 있냐고 물었던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여러 답 중 하나이다.

그날 퇴근길, 예전에 어머니와 내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나의 어머니는 결혼을 강요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 때 왜 그러셨는지 유독 그런 말들이 연속적인 나날들이었다.)

“아빠가 직장 다닐 때 결혼해.”

“나라에서 정년 연장해서 다행이네. 그 때까지는 아빠 직장 있으니까 그 때 안에는 결혼해.”(박근혜가 다른 건 몰라도 정년 연장은 잘했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짜증나서 툴툴도 아니고 어머니에게 결혼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니, 아빠 직장 다니는 게 그렇게 중요해? 엄마도 다른 사람들도 아빠가 직장 없어도 그걸 그렇게 보면 안 되는 거지.”

사실 나의 어머니와 내가 만나 인터뷰한 한 노동자는 전혀 속세에 찌든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었다. 현실 그 자체를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때까지 오래 걸렸다.

말하는 건 쉽고 사는 건 어렵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만하라고 화내며 뱉은 말들, 내가 한 노동자에게 이직과 전직을 고려해본 적은 없냐는 말들. 하는 건 쉽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가, 내가 만난 노동자가, 혹은 나도 사는 건 현실이어서 복잡하고 어렵다.

그리고 사는 건 노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노동은 결국 현실이고 복잡하고 어렵다. 나의 아버지의 노동과 내가 만난 노동자의 노동은 경제 활동의 의미에서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네트워크 매개체이기도 하고, 자아실현의 발로이기도 하고. 집어내면 집어낼수록 많고 다양하다. 심지어 다양한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그 노동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퇴근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많은 역처럼 지나갔다. 물론 인터뷰를 하든가, 세상에 대해 알려 하든가 하면 잘 모르니까 쉽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럼 거기에 무엇을 더해야 하나. 우선은 얽혀있는 것들을 잘 읽어보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내가 그날 그 노동자의 사연에서 읽었던 것은 노동시장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는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원래 일자리보다 별로인 일자리로 이동한다는 점이었다. 또 사회적 지위로 노동이 현실에서 쉽게 타도되지 않는 사회 현실도 함께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이직과 전직은 그의 선택지에서 이미 누락된 답변 문항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에게 고용유지가 중요하고, 중장기적으로 그가 속한 산업이 사양 산업이라면 이직과 전직 제도의 하향 이동 결과를 반전시킬 메커니즘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에 도착할 때쯤 일련의 생각을 마쳤고, 살짝 부끄러웠고, 말하는 건 쉽고 사는 건 어렵다고 느꼈고,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에 토를 다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