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2,600명 임금체불, “원청은 기성금 현실화하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2,600명 임금체불, “원청은 기성금 현실화하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8.11 16:16
  • 수정 2020.08.1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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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이후 두 번째 ‘월급 전액’ 체불 … 지난 2년 간 임금체불 ‘만성화’
하청업체 폐업도 빈번 …폐업 시 체불임금은? ‘국민 세금’ 체당금으로
11일 낮 12시 30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대규모 임금체불 규탄, 원청책임 근본 대책 촉구’ 기자회견 현장.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제발 상식적으로, 일을 시켰으면 월급은 주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안 하는 힘든 일 하는 만큼, 복지가 안 되는 만큼 수당 많이 받고 돈 더 많이 받는 거잖아요! 수당 그만 내려요.. 기성금 낮추니 계속 수당 깎고 일당 깎고 월급 밀리고... 기술 있는 사람들 나가고... 그냥 옆에서 보는 와이프인 제 눈에도 보입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자유게시판에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의 아내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올라왔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2,600여 명이 8월 10일 지급되는 7월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이하 지회)는 11일 낮 12시 30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대규모 임금체불 규탄, 원청책임 근본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청업체 대표들, 기성금 수령 거부

8월 월급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체는 건조 1, 2, 5부 10개 업체, 도장 1, 2부 11개 업체로 총 21개 업체다. 여기에는 각각 1,400여 명, 1,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번 월급 미지급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하청업체 대표들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7월 공사대금(기성금)을 수령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하청업체에서 기성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자연히 하청 노동자에게 지급될 7월 월급도 체납된 것이다.

건조 하청업체는 4,000만 원에서 1억 2,000만 원, 도장 하청업체는 4,000만~5,000만 원가량 기성금이 부족하다며 7월 31일 세금계산서 발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회는 “부족액은 통상적인 수준이지만, 2년 넘게 4대 보험료 체납, 상생지원금 상환 유예, 업체 대표 대출 등으로 기성금 부족에 따른 위기를 모면해왔다”면서, “임시방편 조치를 이제는 업체 대표들이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상식적으로 일 시켰으면 월급을 줘야죠”
지난 2년간 임금체불 만성화

하지만 임금체불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2019년 4월에도 전액체불 사태가 있었다. 더군다나 전액은 아니더라도 일부 체납, 4대 보험료 미납 등도 지난 2년간 부지기수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형진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총무부장은 “2018년 6월부터 건조부‧도장부에 집중적으로 임금이 체불됐다. 어떤 달은 2~3개월 연속 체불되기도 하고 4대 보험료도 체납됐다”면서, “이번 3~4월에도 임금의 10~20%가 체불됐다. 6월에도 임금이 체불될 것 같다는 소식이 컸으나 다행히 넘어갔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누리꾼의 글. 글을 작성한 누리꾼은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의 아내로 보인다. 자료 =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홈페이지 캡쳐.

지회는 ‘원청의 기성금 현실화’가 해결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애초에 원청이 “4대 보험료도 납부하지 못할 수준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청업체의 부정 가능성을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이형진 총무부장은 “하청업체에서 수익을 많이 남기지 않는다는 건 드러난 사실”이라면서, “지금 상황은 하청업체들이 빼돌리기에도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형진 총무부장은 그보다 현대중공업이 2016년 조선업계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졸라매기’ 했던 하청업체 기성금 지급 시스템을 업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현재에도 그대로 뒀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6년 4~5월 구조조정 이후 인원감축 및 폐업과 임금 삭감과 무급휴직 많았어요. 세계적으로 조선업 업황은 2017년 바닥을 찍고 2018년부터 회복세를 보였죠. 삭감된 임금과 일감을 회복한 게 2018년이에요. 그런데 그 사이 구조조정 기간에 기성금 지급 시스템을 바꿨어요. 한창 구조조정일 때보다는 업황이 나아지는 시점부터 임금체불 문제가 계속 발생했죠. 2018년도 2019년에는 원청에서 공공연하게 일반적인 수주보다 30% 저가 수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시기에도 원청은 흑자로 전환했어요. 하청업체에다가는 부족한 공사대금으로 배를 지으라고 한 격이죠.”

체당금이 조선소 하청업체 대출금?

“현대중공업 배는 정부 체당금하고 중기청에서 하청업체 지원해주는 돈으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절대적인 기성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청업체의 폐업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이 경우 하청노동자의 체불임금은 정부의 체당금으로 지급되는 현실이다.

체당금 제도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지급받지 못한 임금·퇴직금·휴업수당을 청구할 때, 고용노동부가 사용자를 대신하여 지급하고, 이후 구상권을 통해 사용자에게 해당 금액을 청구하는 제도다. 주로 노사 분쟁 상황이나 사용자 도산 등 경영상의 어려움에 있을 때 활용된다.

이형진 총무부장은 “하청업체 폐업 시 임금체불액은 체당금, 국민 세금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체불임금이 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인 3년 이내로 들어오면 다행이지만 3년 이상의 퇴직금이나 근속수당 등은 그대로 날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입장을 듣지 못했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2019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 계약서 지연 작성 ▲일방적인 하도급 계약금 삭감 ▲공사대금 약정 없이 계약 강행 ▲조사과정에서 컴퓨터·하드디스크 은닉 및 교체, 폐기 등으로 208억 원의 과징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