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건물 청소하는 장진주입니다”
“한국노총 건물 청소하는 장진주입니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8.14 00:00
  • 수정 2020.08.13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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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6층 청소노동자 동행취재기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 설립해 고용계약한 지 1년 반 ··· 정년연장 가능할까?

[리포트]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의 하루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 진주 씨가 1층 입구를 걸레질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7월 17일, 오전 5시 30분의 여의도는 한산했다. 항상 사원증을 목에 멘 사람들로 붐비는 여의도만 봐 왔던 내겐 퍽 낯선 풍경이었다. ‘국제금융로6길 26’ 한국노총도 잠겨 있었다. 그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 한국노총 청소노동자 최종숙 씨는 “일찌감치도 왔네, 아가씨가. 졸립지? 잘 시간에 왔으니까”라고 했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목에 메고 셔터가 올라가는 한국노총을 찍기 시작했다. 한여름이었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국노총 출입기자로 일한 지 석 달 남짓. 정갈한 기자실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기자실 청소는 언제 하는 걸까? 청소하는 걸 못 봤는데, 기자실은 매일 정돈된 상태였다. 한국노총 6층을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장진주 씨의 하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68세 진주 씨는 10여 년 정도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아침이 제일 바빠”

오전 6시, 진주 씨의 하루는 셔터가 막 올라간 한국노총 건물에 출근카드를 찍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하 3층 직원대기실로 내려간 진주 씨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6층으로 올라간다. 불이 꺼졌던 한국노총 6층의 쓰레기통들을 비우고 바닥을 닦는다. 한국노총 6층에는 대회의실, 조직강화본부, 대외협력본부, 기자실 등이 있다. 각 공간의 작은 쓰레기통들을 진주 씨가 끌고 다니는 큰 쓰레기통으로 옮긴다.

쓰레기통에 달린 자루들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자루마다 사용처가 있었다. 종이, 플라스틱 등의 재활용품을 자루에 넣는다. 일반 쓰레기는 큰 쓰레기통으로 분류한다. 한국노총 1층에 새 카페가 생겼다는 사실은 이날 알았다. 새로운 일회용 커피잔 쓰레기가 대량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커피잔은 분류하기 아주 어려웠다. 종이컵 안에 플라스틱 컵이 들어 있는 형태였다. 진주 씨는 가위로 플라스틱을 잘라낸 후 종이와 플라스틱을 따로따로 버렸다.

“긴 걸레 있어. 그걸로 여기 다 쓸어야 해요. 쓰레기 걷어 놓고 이 위에 책상 닦고. 여기 닦는 데가 엄청 많아. 어깨가 엄청 아프지. 우리가 전부 다 닦아야 하니까.”

기자실은 진주 씨가 오전 6층 내부 청소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번에 다짐했다. 앞으로 기자실을 쓰면서 남은 물은 따로 화장실에 버려야겠다고. 물이나 커피가 남아있는 채로 버리면 진주 씨가 일일이 화장실 가서 따라버려야 한다. 이쯤 되니 왜 이 건물에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았는데 아직 오전 7시다. 진주 씨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까지 일을 끝내고 아침을 먹으러 다시 지하 3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7월과 8월은 ‘휴가자’들이 있어 그 일까지 나눠서 해야 한다. 하필 오늘 밥 당번도 진주 씨였다. 내부 청소를 끝내면 큰 산이 하나 남았다. 6층에는 흡연공간이 있다. 버려진 담배들을 모아 버리는 것도 진주 씨의 몫이다. 진주 씨는 “남이 핀 담배 냄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라고 말했다.

진주 씨가 끌고 다니는 쓰레기통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진주 씨가 끌고 다니는 쓰레기통.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나한테 일하는 건 즐거운 거예요”

오전 8시 30분, 아침 청소를 끝낸 청소노동자들이 지하 3층에 모였다. 반찬은 집에서 가져오고, 밥은 해 먹는다. 짬을 내서 임순옥 씨와 대화를 나눴다. 순옥 씨는 광명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교급식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 2007년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가 됐다.

“고등학교가 도산되는 바람에 국민연금, 고용보험 타 묵고. 인자 청소일 댕기는 언니가 ‘여 빨리 오이라’ 해서 이렇게 됐어. 임금은 일찍 오나 늦게 오나 똑같아! 조금 더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긴 하는데. 여럿이 함께 하면서 또 돈도 받고 하니까 재미나요. 임금을 잘 안 주면 입이 나오지. 나한테 일하는 건 즐거운 거예요.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죽겠어. 3일이나 노는 사람은 지겹겠어. 시숙이 봉제업을 했는데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고 해서 88년도에 서울에 왔어. 청소는 여기가 처음이고. 봉제공장 댕기다가 그렇게 여태까지 살고 있어. 내가 사투리를 많이 해요. 못 알아듣나?”

(알아들어요! 오늘 일은 좀 어떠셨어요?)

“일은 몸에 배어서 괜찮아. 근데 근로계약서를 1년으로 쓰더라고. 나이가 있다고 1년으로 쓰고 퇴직금도 1년으로 쓰고. 안 그랬으면 좋겠어. 퇴직금이 1년에 한 번씩 나와요. 밀어내도 안 간다고 거기 써 놔.“

(밀어낸다고 하면 어떡하실 거예요?)

“써 달라고 사정을 해야지 마. 나이 먹어서 혼자 살믄서 하나도 벌어묵은 거 없고 여기서 버는 건데. 이건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라고 쓸까요?)

“깔깔깔. 아이고, 이제 밥 먹자. 이거 마늘쫑 맛있다.”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는 총 9명으로 여성 6명, 남성 3명이다. 여성과 남성의 일은 구분된다. 여성 청소노동자는 건물 내부 청소를 하고 남성 청소노동자는 외부 폐기물 정리와 물청소 등을 맡는다. 순옥 씨가 언급한 1년 근로계약서는 연령과 관계가 있다. 한국노총 청소노동자는 한국노총의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과 근로계약을 맺는다. 65세를 정년으로 두고, 그 이상의 연령인 청소노동자는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고 재계약을 한다. 청소노동자들에 따르면, 아직까지 70세 이상인 청소노동자는 없다.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먹은 청소노동자들은 남은 시간 동안 직원대기실에서 잠을 청했다. 다른 분과도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나도 같이 잠들어 버렸다. 마침 휴가를 간 청소노동자의 이불이 있어 덮었다.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 고용은 좋은 조건”

오전 9시 30분이면 다시 일할 시간이다. 한국노총 건물도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때 진주 씨는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청소한다. 거울과 세면대, 변기를 닦는다. 변기를 닦을 때는 장갑을 끼고 코를 막는다.

“쉬운 건 없지. 내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지. 우리는 나이가 있으니까 일하면 좋지.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만둬야지.”

한국노총 건물에는 한국노총 사무국과 산별 연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점과 피트니스 센터 등 한국노총 건물에 들어와 있는 상가의 복도도 진주 씨가 청소해야 할 곳 중 하나다. 한국노총 6층 청소를 끝낸 오전에 진주 씨는 ‘공유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을 걸레질한다. 공유구역은 상가,계단 등으로 한 곳당 한국노총 청소노동자 두 명 정도가 붙는다. 한국노총 6층은 진주 씨가 온전히 맡는다. 층수는 6개월에 한 번씩 변경된다. 보통 한 층씩 올라간다. 상반기는 5층, 하반기는 6층을 맡은 셈이다.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들은 본래 용역을 통해 고용됐다. 지난 2019년 한국노총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에서 시설관리사업단이 출범한 이후 이들이 청소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됐다. 진주 씨와 종숙 씨, 순옥 씨를 비롯한 청소노동자 외에도 경비노동자, 기계·전기실노동자 등이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과 고용계약을 맺는다.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 관계자는 한국노총 건물 청소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왜 한국노총이 직고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직고용을 해서 노총 정년 기준에 맞추면 그 분들은 연령 때문에 퇴직을 해야 해서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정년을 5년 연장시켜준 것이고, 다른 데보다도 (조건을) 좋게 해 준다. 나이가 많더라도 직장을 다니며 수익이 생길 수 있는 게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지하 5층에 있는 분리수거 장소다. 청소노동자들은 각자 맡은 층의 작업이 끝나면 이곳에서 분리수거를 한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그들이 보내는 보통의 하루

산별 연맹이 주로 모여 있는 8층, 9층 등을 맡은 청소노동자는 연맹에 비치된 화분에 물을 주는 작업을 한다. 이 비용은 각 연맹에서 지급한다. 그래서 층마다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조금씩 상이하다. 담당하는 층이 6개월씩마다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일어나 연합노련 화분에 물을 주러 간다는 종숙 씨를 쫓아갔다. 한국노총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이곳에서 일한 종숙 씨는 말했다.

“인사라도 나 봐. 화분 엄청 들어와. 특히 본부장 아니었던 사람이 본부장 되면 더 그래. 나는 오래됐지. 한국노총 바닥 반질반질 하잖아. 바닥 왁스 작업하는 게 힘들어. 1년에 한 번씩. 6층하고 7층은 봄에, 가을에는 8층하고 9층. 밖에 나가서 한국노총에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 좋은 데 있네’ 하더라고. 우리는 완전 직고용은 아니라 말하자면 자회사지. 재단에서 어느 날 와서 상담도 몇 번 했어.”

오후 시간, 진주 씨는 아침에 청소했던 곳들을 다시금 점검하고 6층으로 다시 올라가 쓰레기통을 비운다. 흡연실 담배도 또 걷어내야 한다. 따라만 다녔는데도 지친 나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집 청소 하세요?”라고 물었다. 진주 씨는 “하지, 그럼. 엄마들은 밥에 김치랑 먹고 반찬 해서 가끔 애들 가져다주고 해”라고 대답했다.

복도 청소를 끝낸 진주 씨는 계단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주로 타고 다녀서 몰랐는데, 한국노총 계단은 정말 더웠다. 그리고 진주 씨가 걸레질한 부분을 자꾸 밟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이때 “한국노총에서 일하는 건 다른 곳이랑 좀 달라요?”라고 물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들었다. 진주 씨는 “전에 일하던 곳은 바닥이 카펫으로 되어 있어 괜찮았는데, 여기는 대리석이라 자주 닦아야 해서 힘들어”라고 했다. 한국노총이 문제가 아니라 바닥이 대리석인 게 문제였다. 계속 대리석 바닥을 닦는 진주 씨를 보니 수긍이 됐다.

오후 4시면 청소노동자들은 한국노총 건물 밖으로 향한다. 딸이 선물로 사 준 스카프가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색상으로 교환하러 간다는 분도, 처음 가본 반찬 가게가 생각보다 괜찮아 한 번 더 가보겠다는 분도 있었다. 다음날 해가 뜨면 진주 씨는 또다시 진주 씨의 하루를, 나는 나의 하루를 시작할 테다. 그 사실이 왜인지 이상하게 느껴져 한국노총 1층 벤치에서 조금 서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