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투쟁 영화, ‘보라보라’를 일단 ‘봐야’하는 이유
톨게이트 투쟁 영화, ‘보라보라’를 일단 ‘봐야’하는 이유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8.14 08:13
  • 수정 2020.08.14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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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투쟁 기록 영화 ‘보라보라’
불쌍함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호소 아닌
늘 당당했던 현장 보여주는 ‘리얼리즘’ 택해

[인터뷰] 영화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지난해 7월 1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1,500명 집단해고 사태' 이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217일간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청와대 앞과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여름을,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안과 밖에서 가을을 보냈다. 그리고 광화문 세종로공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에서 겨울을 났다. 그 사이로는 기자회견, 오체투지를 반복했고 대표자 단식까지 이어갔다.

<보라보라>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촘촘한 투쟁을 담은 영화다. 대학생 김도준 감독과 조합원 김승화·김미영 감독이 함께 기록했다. 감독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촬영해주는 대리인이 아닌 노동자가 직접 창작자로 나선 셈이다. 두 감독 외에 김옥경 감독 등 다른 조합원들도 함께 촬영했다. 

그럼 영화 제목은 왜 ‘보라보라’일까? 보라보라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율동패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그냥 ‘보라’는 의미도 담겼다. 온몸을 던지며 “우리가 옳다”고 호소했지만 어느 순간에도 굽혀 애원하지 않았던, 늘 당당했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모습을 영화가 닮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톨게이트 혹은 비정규직 투쟁에 적대적인 관객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노동자의 불쌍함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투쟁 현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을 택했다. 김도준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보라보라>의 시작은 ‘부끄러움’
축제 같은 투쟁현장에 이끌려

- <보라보라>의 시작이 궁금하다.
‘부끄러움’이 출발이었다. 지난해 8월 31일, 조국 사태 관련 영상 취재를 하던 중 광화문 광장에서 행진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처음 만났다. 그땐 단순하게 그들에게 조국 사태에 관한 생각을 묻고 싶어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따라갔다. 마침 쉬던 조합원에게 다가가 한국 교육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어이없다는 눈이었다. 속 좋은 소리 한 거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후 이강래 당시 도로공사 사장이 대법원판결 취지를 훼손하는 고용방안*을 9월 9일 내놨다. 발표 직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는데, 이튿날 박순향 부지부장이 농성현장에 경찰의 강제진압이 임박했다며 연대를 호소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그 길로 카메라를 들고 옆에 있던 학교 후배와 무작정 김천으로 내려갔다.

(* 2019년 9월 9일, 이강래 당시 도로공사 사장은 대법원이 요금수납원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지만 소송에 참여한 인원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소송 시점만 다를 뿐 같은 일을 했으니 도로공사가 1,500명 전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외치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같은 날 이강래 당시 사장과 교섭을 요구하기 위해 도로공사 본사로 향했다. 이들의 145일간 도로공사 점거 농성의 시작이었다.)

- 본사 안으로는 못 들어갔을 텐데
맞다. 도로공사가 기자 출입도 막았으니까. 도로공사 측에서 경찰에 물어본다고 한 뒤 몇 시간을 기다려도 답을 주지 않았다. 포기하려다 본사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투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대화 나눠 보니 어땠나?
투쟁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녁 문화제 때 폴리스라인 너머로 농성장 안쪽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온종일 긴장에 떨며 경찰과 대치하던 이들이 해방구를 열고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내가 목격한 그 현장이 세상의 최전선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어쩌면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이 투쟁에서 찾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폴리스라인 안과 밖 노동자들이 매일 이산가족 상봉하듯 울며 얼싸안는 모습을 보며 궁금했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이토록 끈끈하게 만들었으며,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김도준 감독은  ⓒ 김도준 감독
김도준 감독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도로공사 본사 농성장에서 열린 문화제 현장이 "세상의 최전선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어쩌면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이 투쟁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김도준 감독

“촬영 대리인 아닌 창작자”
노동자 감독과 함께한 영화

- 촬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고공농성은 하루에 두 번씩 도르래로 밥을 올려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구니 안에 캠코더를 숨겨 전달해 촬영했다. 캐노피 위에선 98일 동안 고공농성을 사수한 6명 중 한 명인 김승화 감독이 주로 맡았다. 캠코더를 태어나서 처음 만져봤다던 김승화 감독은 마지막에 크레인을 타고 내려올 때까지 기록을 남겼다. 10월 5일 땅을 밟은 뒤 김승화 감독은 도로공사 실외 농성장을 이어서 찍었다. 실내 농성장은 김미영 감독이 담당했다. 김미영 감독이 예전에 촬영을 해봤다고 말하는 모습이 김승화 감독의 카메라에 우연히 담긴 모습을 보고 농성장 안 촬영을 부탁했다. 다행히 재밌겠다며 응해주셨다. 농성장 안으로는 캠코더를 건강음료 박스에 숨겨 보냈다. 이후 12월에는 김미영 감독이 서울 투쟁에 합류하면서 김옥경 감독이 2주간 실내 농성장 모습을 담았다. 12월 중순 이후엔 경찰 경계가 많이 풀려서 농성장 안에 들어가 먹고 자며 촬영할 수 있었다. 그때부턴 나와 정길우 촬영감독이 일주일씩 서울과 김천을 오가며 교대로 촬영했다.

- 피드백은 어떻게 주고받았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촬영본을 받아 바로 영상을 본 뒤 피드백했다. 특히 김천 농성장 안에서는 빨래나 담배상자에 SD카드(저장장치)를 숨겨서 주고받았다. 감독들에게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렸다. 첫째, 잘 찍지 않아도 되니 부담 없이 가지고 놀아달라. 농성장 안 조합원들의 사소한 생활 하나하나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그렇게 시작해야 촬영에 재미를 붙이실 것 같았다. 둘째, 이야기하면서 촬영해달라. 감독이 말하면서 다가가면, 상대가 찍힌다는 부담이 줄어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길 수 있어서다. 셋째, 끊지 말고 촬영해달라.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뻗어 나가는 촬영이 많이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다. 촬영상 이 세 가지 원칙과 꼭 찍어야 하는 내용이 생길 때마다 제안하는 것 이외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단순히 내가 갈 수 없는 장소에서 촬영을 대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창작하기를 원했고, 그 방향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믿었다.

- 톨게이트 투쟁을 좇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
영화에도 나오지만 올해 1월 중순에 김천 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이 모여 투쟁 방식을 바꿔 한다고 논의하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우리가 놓친 간담회를 다시 촬영하기 위해 기획한 성격의 자리였다. 그런데 도로공사와 교섭이 결렬된 후 실망한 조합원들이 모이면서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토론이 됐다. 조합원들이 투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자유롭게 의견을 냈다. 그리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도로공사에 내걸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자리에 조합원들이 바로 허수아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트인 물꼬는 상여행진 등 새로운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톨게이트 투쟁에 영화가 영향을 받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영화가 투쟁에 영향을 주기도 한 일화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휴머니즘 아닌 ‘리얼리즘’

- 1,000시간 정도 되는 촬영 분량을, 2시간 30분으로 압축하면서 세운 편집 기준은?
<보라보라>는 전국 곳곳에서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이 해고 위기에 봉착해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다. 따라서 조합원 한 명 한 명과 공동체가 어떤 길을 가는지가 서사의 중심이었다. 관건은 이야기를 몇 명이 중심인 영웅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조합원들로 엮는 것이었다. 영화 속 김미영 감독의 말처럼 “조합원들 얼굴 하나하나 다 담아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난주에 극장에서 조합원들과 처음 같이 영화를 봤는데 웃고 떠들면서 정말 즐겁게 봤다. 그 경험을 하면서 이 영화가 마당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래, 춤, 재담을 넣는 것도 편집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 제작 원칙 중 하나가 ‘휴머니즘’에 호소하지 않겠다는 거였다고,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건가?
그동안 독립영화계에서 노동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한계를 느꼈다. 노동자 없는 노동자영화가 많았다. 관객 대부분이 스스로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이 있고, 노동자를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안다 보니 가장 낮은 단계의 설득 전략인 휴머니즘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많은 독립영화들이 ‘노동자는 가난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불쌍하다’라는 기본 전제 위에서 움직인다. 톨게이트 투쟁 관련 보도 또한 그랬다.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누군가의 어머니로 자주 등장했다. 조합원들이 농성장에서 “밥 안 해서 좋다” “청소도 주변만 해서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들을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로 그리는 건 오히려 인간적이지 못한 방식이다. 어떤 조합원은 “가정으로 돌아가면 엄마고 며느리이지만, 투쟁 현장에서 내 특기를 살려서 내 이름을 걸고 내 자신을 온전히 찾을 수 있는 투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나와 공동 연출한 김승화, 김미영 감독도 투쟁에서 자기 재능을 발견한 거다.

- 관련해 떠오르는 보도가 있나?
방송국에서 톨게이트 노동자 몇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낸 적이 있다. 현장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여성 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족 안에 국한시켜 눈물을 짜내려는 서사였다. 여러 조합원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실제 톨게이트 투쟁의 모습이나 공동체의 정서와는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투쟁 과정은 충분히 어려웠지만 노동자들은 본인을 비롯해 동지들이 불쌍하다고 여기거나,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없었다. 투쟁이 절박한 상황에 몰렸을 때도 조합원들은 노동자로서 당당함을 내세우며 온전히 투쟁에 집중했다. 이처럼 톨게이트 투쟁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을 방송에서는 완전히 왜곡했다. 공동체의 감수성을 파악하지 못한 거다.

- 사실 휴머니즘은 노동자 본인이 자주 택할 만큼 강력한 호소 방법이기도 한데.
노동자를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휴머니즘이 취하는 설득 방식은 나와 다른,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으로 수렴한다.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요구하는 내용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질수록 약자성에 집중한다. 맞서야 하는 편견이 강할수록 불쌍함은 선정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 예로 많은 조합원들이 탈의 시위 사진이 언론에 나갔던 일로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는데, 방송 다큐는 이 장면을 영상으로 포함시켰다. 휴머니즘이 상업주의와 결합하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휴머니즘은 상품이고, 상품은 만인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무해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때문에 휴머니즘은 역사 속의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 관계를 소거한 채 감정만을 전시한다. 화면의 배경을 뿌옇게 날려버린 채,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만을 강조하는 촬영이 표준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 <보라보라>에서 휴머니즘을 배제하고 리얼리즘을 추구하자는 방향은 다른 감독들과 의논한 지점인가? 
투쟁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그들과 닮아야 한다. 미디어가 빼앗아 간 투쟁 현장 속 노동자들의 진짜 얼굴과 희노애락을 우리 영화로 찾아주자는 것이 김승화, 김미영 감독과 공유한 인식이었다. 김승화 감독은 “불쌍하게, 슬프게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기고 즐거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김미영 감독의 촬영 결과물에 나타나지만 카메라 너머의 관객에게 메시지를 호소하지 않는다. 동료들과 공동체를 보여주려는 열망이 보인다. 항상 인물을 배경과 함께 보여주고, 카메라를 든 상태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촬영 대상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뻗어 나간다. 

- 원래 노동현장 기록에 관심이 있었나?
당사자들과 같이 엮어나가는 작업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2008년에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과 동자동 사랑방의 도움을 받아 서울역의 노숙인들이 배우로 참여한 단편영화 <떨꺼둥이>를 연출했다. 2016년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스카이 아파트가 철거되기 전, 기록팀에 자원하여 구술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만난 주민 할머니 세 사람의 역사와 마을 민속지, 그리고 유창숙 배우의 삶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2017년에 단편영화 <율리안나>를 연출했다. 노동자가 등장하는 영화나 다큐도 관심이 있었지만 실제 투쟁현장에 직접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보라보라’ 김도준 감독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설득하지 않겠다. 그냥 보라!”

- 다시 <보라보라>로 돌아가면, 영화는 김천-서울 농성장으로 나뉘는 지점, 2015년 이후 입사자 문제 관련 갈등을 주요하게 다룬다.
나는 조합원들과 만나면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자에 주목해왔기 때문에 이들이 공동체 내에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희망을 볼 수도 실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과 공동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 역시 주요 관심사였다.

-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지는 지점들인 만큼 톨게이트 투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15년 이후 입사자 등 구체적인 쟁점을 몰라 영화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런 우려도 고민해봤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설명자막, 내레이션, 인터뷰 등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굳이 그런 형식을 쓰지 않았다. 관객이 영화 보듯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스며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편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톨게이트 노동자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영화 속 노동자들이 울고 웃고 떠들고 생활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면 좋겠다. 영화 제목인 보라보라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끝까지 당당했듯이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겠다, 화면에 나오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투쟁하는지, 무슨 역사를 가졌는지 일단 보라는 거다.

“내 인생에도 큰 사건···
20대 청년들이 더 많이 봐줬으면”

- 감독 개인에게 톨게이트 투쟁은 어떻게 남았나?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들은 어쩌자고 카메라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오픈해주셨을까 싶다. 정말 고맙다. 노동자들도 알았던 것 같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역사에 기록되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던 거다. 특히 민중이 예술의 생산자가 되는 기회를 작품 안에서 만들었다는 점도 의미 있었다. 영화 운동 교과서에나 실릴법한 방법론인데 그걸 해냈고, 결과물로 완성해 기쁜 마음이다. 예술은 노동자가 스스로를 교육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기도 했다. 톨게이트 투쟁은 내 인생에서도 큰 사건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줄 몰랐다. 알게 모르게 내 삶도 세계관도 확장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투쟁은 살면서 내게 계속 영향을 미칠 것 같다.

- 꼽아보자면, 어떤 관객이 <보라보라>를 더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해봤나?
관객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특히 20대 청년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청년 세대엔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직장에 들어가 노조 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 대다수도 노조를 처음 경험했고, 그들을 촬영한 학생들도 노조를 처음 관찰했다. 그래서 노조를 경험해보지 못한 청년들과 눈높이가 비슷할 수 있다고 본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보면서 내가 속한 조직이 가야 할 방향 등 의사결정을 할 때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모습에 주목해줬으면 한다. 더 나아가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왜 나뉘어야 하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도달해보면 좋겠다.

 

* 영화 <보라보라>는 8월 15일 오후 6시, 21일 오후 4시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아트(ART) 1관에서 상영된다. 15일에는 감독들과 조합원들이 함께하는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