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님의 동선] 기자인생 첫 언론중재위원회 출석 후기
[강한님의 동선] 기자인생 첫 언론중재위원회 출석 후기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8.22 15:33
  • 수정 2020.08.22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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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움직이는 방향을 나타낸 선] 자주 만나고 싶어요.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 hnkang@laborplus.co.kr

 

데스크 : 한님, 12일 오전 일정이 어떻게 돼?

한님 : 저 일정 많은데요. 전태일다리도 가야하고, ‘요즘 뭐 읽니’ 취재도 있어요.

데스크 :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너 오래.

한님 : 네? 언중위요?? 왜요???

 

두 귀를 의심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 7월 11일자로 노출된 ‘[언박싱] 이 주의 인물: 박원순’이었다.

언박싱은 <참여와혁신>이 매 주 키워드와 인물을 각각 선정해 다루는 꼭지다. 당시 언박싱 인물을 맡아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입장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아름다운가게, 참여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입장문 또는 논평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사회계에 오래 있었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 중 민언련은 속보경쟁에 몰두한 언론을 비판하며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런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언론의 취재 및 보도경쟁이 뜨거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 시장의 죽음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경찰 수색이 한창 진행 중인 9일 저녁에 일부 언론은 ‘박원순 시장 사망보도’를 쏟아냈고, 근거 없는 섣부른 추측보도가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사망 추측보도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사들을 나열했고 그 부분을 인용했다. 그 중 한 언론사에게 정정보도·반론보도 요청이 왔다. 해당 언론사는 자신들의 기사가 오보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보통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위원은 현직 판사 1명, 변호사 2명, 전 언론인 2명으로 구성된다.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해당 언론사 등에 직접 정정보도, 반론보도 또는 추후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제1항 등).

언론중재위원회에 가보니 우리를 제외하고도 꽤 여러 언론사들이 신청인에 의해 출석해 있었다. 중재부는 신청인에게 취재 과정과 오보가 아닌 근거 등을 물었다. 정정보도·반론보도 요청을 한 언론사의 주요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복수의 제보자에게 제보를 받아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에 오보가 아니다. 그러나 제보자의 신변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난 7월 9일 17시 17분 이후, 22시 25분에 ‘아직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지 못했다’는 경찰의 상황 브리핑이 있었다. 22시 30분엔 경찰 80명이 추가 투입돼 2차 수색이 시작됐다. 해당 언론사가 기사를 노출한 시간은 7월 9일 오후 22시경이었다.

신청인이 속보를 내보낸 시각은 수사당국이 수색을 진행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언론의 추측보도를 지적한 민언련의 논평은 충분히 합리적 근거를 갖춘 셈이다. 합법적인 국가기관이 브리핑을 한 것 이전에 보도가 나왔다면, 그 근거성의 입증 책임은 해당 언론사에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청인의 근거를 들은 후 나는 정정보도·반론보도 요청을 모두 거부했고 조정은 불성립됐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출석했던 일을 칼럼으로까지 가져와 다루는 이유는 이번 경험이 생각할 지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이상 추측보도와 오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청인의 보도가 진실이다/아니다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다만 기사를 쓴다는 것은 늘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무고한 피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