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테이크아웃’ 대신 ‘포장’을
[이동희의 노크노크] ‘테이크아웃’ 대신 ‘포장’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9.14 00:00
  • 수정 2020.09.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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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뒤, 엄마에게 매일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바로 코로나19 진단 설문지다. 회사에 자신이 코로나19 증상이 없다는 걸 보고하는 설문으로,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보건당국이 지정한 집합 제한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했는지 등의 10개 미만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고 간단한 내용이라 1분 안에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대신해달라며 나에게 휴대폰을 맡긴다. 이유는 아래에 있는 코로나19 진단 설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발열(37.5℃) 또는 호흡기 증상(기침, 가래, 인후통 등)이 있으신가요?”
○ YES ○ NO

“보건당국이 지정한 집합 제한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하셨나요?”
○ YES ○ NO

이유를 눈치챘나 모르겠다. ‘이게 뭐가 문젠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유는 답변에 있는 ‘YES’와 ‘NO’ 영어 때문이다.

엄마는 ‘예스’가 ‘예’인 건 알고, ‘노’가 ‘아니오’라는 건 알지만, ‘YES’가 ‘예’인 건 모르는 사람이다. ‘NO’가 ‘아니오’라는 것도 모른다. 사실 한번 익히고 외우면 그다음부터는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이지만, 영어(한글을 제외한 모든 문자)만 보이면 지레 겁먹고 아빠나 나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냥 네가 해주면 되잖아” 이런 식이다.

내가 경험한 엄마의 사례가 ‘극히 예외’인 경우일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굳이 설문 답변에 ‘예/아니오’ 대신 ‘YES/NO’를 사용해야 했나 싶다. 엄마의 직장은 모 제조업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사내 식당이다. 일하는 사람은 50대 중후반의 엄마 또래 여성이 많다. 그곳에서 영어가 익숙하지 않거나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 엄마만은 아닐 터. 아마 이걸 제출하는 구성원 누군가에게는 영어가 답변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만든 거겠지만, 이걸 단순히 배려가 부족했다고 봐야할까?

70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일화가 생각난다.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할머니가 무인주문기로 햄버거를 주문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할머니는 주문 전부터 “우리는 기계 있으면 바로 나와 부러. 안 들어가. 그거 안 하는 디로 가자. 사람이 갖다주는 디로”,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자존심 상하자녀”라고 말한다. 무인주문기에 ‘포장’ 대신 쓰인 ‘테이크아웃’ 버튼은 그런 할머니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박막례 할머니 영상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당연히’ 자리 잡은 영어가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장벽이 되고 있다.(참고로 박막례 할머니 영상에서는 무분별한 영어 사용 외에도 노인이 한눈에 보기 어려운 가독성 나쁜 글씨 크기, 높은 곳에 위치한 버튼 등도 문제가 됐다.) ‘눌러주세요’ 대신 ‘터치해주세요’가 쓰이며, 음료 사이즈는 레귤러(Regular)와 엑스트라(Extra) 중에 골라야 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포장 대신 테이크아웃이라는 단어를 당연하다는 듯 사용할 때 소외되는 이가 없는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걸 전제로 만든 것들에 굳이 이런 혼란을 남겨놔야 하는가를 묻고 싶다.

‘그런 것도 몰라?’ 혹은 ‘나는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니까 상관없지’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