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 찾기
[기고]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 찾기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09.15 15:56
  • 수정 2020.09.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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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
▲김재범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
▲김재범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

대한민국 최대 정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은 요즘 매우 바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밀려드는 기업들의 보증 수요로 직원들은 눈 코 뜰 새가 없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야근으로 직원들의 심신은 날로 지쳐가고 있다. 이러한 신보의 현실 속에서 조직에 예기치 않은 근심거리가 생겨 직원들은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오는 10월 14일 임기가 만료되는 상임감사의 연임 가능성이 대두되고 나서부터다.

항상 직원들을 대변할 책임이 있고, 지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 할 책임이 있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지금의 신보를 보면 엄중한 상황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기관장도 아닌 감사의 임기 1년을 추가하는 것으로 사소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과도한 감사로 인해 상처 받은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와 함께 꾸준히 문제가 돼 온 공공기관 임원 인사 제도의 문제 등을 들여다보면 하찮게 치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최근 신보 노동조합은 감사 연임 관련 민주적 의사 결정을 위해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근무 중인 직원의 약 70% 가량 되는 1,500여 명의 직원이 참가한 설문에서 약 97%의 인원이 연임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현역으로 재직 중인 감사임에도 불구하고 1,495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용감하게 연임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정신없이 바쁜 업무 상황 등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안타깝지만 당사자에게는 잔인하리만큼 냉혹한 결과다.

공공기관 임원의 인사를 규정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기관장이나 감사를 선임할 때 내부 직원들을 대표하는 사람을 임원추천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 내에서 경영진을 꾸리는데 내부 직원들의 눈높이나 관심 등을 반영한다는 취지가 담겨있다. 취지가 맞다면, 2년 동안이나 같은 조직 안에서 근무하며 겪은 한 인물의 업무 행태나 능력, 태도 등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의 평가가 얼마나 중대하게 여겨져야 하는지 인사당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가진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인사권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기관 내 구성원들의 합치된 의사도 그 이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며, 소위 ‘직장 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확신이 있다.

얼마 전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담은 법 조항이 신설됐다. 세상은 개인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는 큰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있다. 물론 아직은 동법이 적용하는 범위가 주로 직무수행범위를 판단 기준으로 하는 협소한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취지에는 같은 일을 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직장 내에서 구성원 간 서로 존중하며 배려해야 한다는 기본적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위법성 여부를 떠나서라도 상하 수직적 관계에 의해, 특히 업무 지시를 받는 하급자가 불합리한 상사의 압박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면 상급자는 도의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혹시 자신이 상대에게 ‘괴롭힘’을 주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 도의다. 만약 우리 주변에 이러한 종류의 ‘괴롭힘’에 무감각한 사람이 있다면 과연 같은 조직 내 구성원으로 환영 받을 수 있을까?

신보는 주주가 따로 없는 특수법인이자 공공기관이다. 굳이 주주를 말하자면 국민들이고, 그 국민들로부터 책임을 위임 받은 전체 직원들이 신보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조직 내 직원을 대변하는 역할은 노동조합에게 주어져 있다. 신보 노동조합은 국민들과 직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작년부터 ‘임원KPI’제도를 시행 중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진을 평가하는데 있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각 임원에게는 맡은 바 일에 충실하도록 견제하고, 직원들에게는 평가 관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조직 전체적으로는 비전 제시 및 성과와 보상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신보의 감사는 이런 평가에서도 세 번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감사에게 임기를 연장해 계속 앉아 있으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신보는 기업들의 신용을 믿고 보증을 하는 기관이다. 일을 하는 대상이 기업일 뿐 신보 직원들은 사람을 보는 눈마저 남다르다고 자평한다. 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신용조사를 하는 것이 일이다보니, 속된 말로 ‘돗자리 깔아도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신보라는 조직의 특성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조직의 다수 구성원들이, 더 이상 조직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면 이는 필시 귀담아 들어야 할 목소리라고 봐야할 것이다.

어려운 곳에서 민주주의를 찾고, 인권을 찾을게 아니라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부터 정부가 인정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