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윤의 취식로드] 방관 금지법을 제정하라
[백승윤의 취식로드] 방관 금지법을 제정하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9.17 15:43
  • 수정 2020.09.17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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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윤의 취식로드] 길 위에서 취재하고, 밥도 먹고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위험에 익숙해지기'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할 때의 기억을 더듬다가 떠오른 말이다. 고온, 고소, 먼지, 유독성 물질, 절단기. 현장에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위험요소가 많다. 

처음 위험을 마주한 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다.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진 30층 외벽 난간을 청소했다. 헐거운 고정 핀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난간이 흔들렸다. 다리가 후들거려 거의 네 발로 기었다. 작업을 지시받았을 때 거절하지 않았던 걸 후회했으나, 곧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후로도 같은 현장에서 같은 작업을 했고,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서, 해운대 엘시티 건설현장 노동자 4명이 사망한 기사가 보도됐다. 고정 핀이 외벽에 제대로 달려있지 않아 난간이 통째로 추락했단다. 내 상황과 거의 같았다. 현장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건 단지 위험한 상황에 익숙해진 탓이다. 현장에서 위험 요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온, 고소, 유독성 물질 등은 항상 존재한다. 사상자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다. 방지책을 마련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이다.

위험 요소가 사라지지 않는 현장은 역설적으로 위험을 잊게 만든다. 위험에 가장 가깝게 위치한 노동자일수록 쉽게 망각하게 된다. 끊임없이 안전을 상기시키고 관리‧감독하는 외부 개입이 위험 작업에는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2인 1조 작업을 규정하고, 현장에 관리자를 배치하고, 사용자에게 안전 수칙 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공무원에 총체적 감독을 맡기는 이유다. 규칙만 세우고 개입이 없다면 위험 현장에 사고는 필연이다.

하지만 개입은 좀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선 10일 다른 노동자가 생을 마감했다. 조선우드 공장에서는 고 김재순 노동자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기 6년 전 질식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에선 올해만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같은 법인에서 예측 가능한 사망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책임자의 방관을 금지한다. 형사처벌로 사용자와 관리 당국의 개입을 강제한다. 위험한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관리‧감독 시스템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노동자는 위험해도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21대 국회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법안은 발의됐다. 정기 국회에서 통과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