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대체복무요원, ‘폭언·폭력·공짜노동’ 갑질에 무방비 노출
군 대체복무요원, ‘폭언·폭력·공짜노동’ 갑질에 무방비 노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9.29 16:00
  • 수정 2020.09.29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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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규모 10만 명… 병역 대체한다는 인식 때문에 불이익 감수
직장갑질119, “군 대체복무요원도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산업기능요원이라고 욕설이 너무 심합니다. “넌 주둥이가 문제야 XX야”라는 욕을 저희들에게 합니다. 휴가를 가려고 하니까 짬도 되지 않는 놈이 휴가를 신청한다고 또 욕을 합니다. 업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눈치껏 어떻게든 해내면 이유 없이 다르게 지시를 합니다. 업무를 배제시키고 업무 기한에 압박을 줍니다. 휴식 시간을 지나치게 감시하고, 화장실에 있으면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산업기능요원이라 자진 퇴사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산업기능요원, 2020년 5월

군 대체복무요원이 폭언, 폭력, 장시간 노동 등 직장 갑질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직장갑질119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앞두고 군 대체복무요원에 대한 갑질 사례를 발표했다.

직장갑질119는 “군 대체복무요원들에 대한 갑질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군사독재 시절 군대에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무원, 공장의 관리자, 센터장이 되어 군 대체복무요원을 ‘사복 입은 이등병’ 취급하며 30년 전 경험한 원산폭격과 욕설을 일삼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병무청이 발표한 병무통계연보에 따르면 군 대체복무요원 중 사회복무요원은 6만698명, 산업기능요원은 2만6,351명, 전문연구요원은 8,364명, 승선근무예비역은 3,035명으로 총 1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그 수가 상당하지만, 사회 각 기관에서 병역을 대체하고 있다는 인식과 이유로 인해 신분상·노동환경 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설명이다.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복무지의 재지정을 신청할 수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자신을 괴롭히던 담당자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전직이 필요할 시 3개월 이내에 전직을 받아주는 사업체가 나오지 않으면 근무 기간의 1/4만이 인정(전직 대기기간 3개월 포함)돼 나머지 기간을 현역 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직장갑질119는 “군 대체복무요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근로를 강제당하는 것도 모자라 운신의 폭까지 위축돼 복무기간의 명줄을 쥐고 있는 담당자 또는 근무지 직원의 괴롭힘에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배치기관에서 복무 기간을 채워야만 병역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한계, 군 대체복무요원을 현역 군인처럼 굴려야 한다는 배치기관 직원들의 그릇된 인식, 배치기관 변경을 위해선 담당자에게 구걸을 해야 하는 현실은 하루하루 군 대체복무요원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군 대체복무요원 갑질 사례는 아래와 같다.

군 대체복무요원 갑질 제보 사례

“대가리 박아 XX야”(2020년 9월)
주무관이 회식을 하던 식당으로 사회복무요원들을 전화로 불러내 이유도 없이 “대가리 박아”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식당의 일반 손님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5분 동안 원산폭격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다른 식당에서 식당 주인과 종업원이 보는 가운데 원산폭격을 계속 시켰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습니다.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2차를 가게 해서 종업원들 보는 앞에서 목을 조르고 뺨을 때렸습니다. 주무관은 폭행을 하면서 “인생을 왜 그렇게 XX 같이 살아, 너 XX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평소에도 “죽여버린다. 개XX야”와 같은 욕설과 폭언을 자주 했습니다. 담당 지자체는 사회복무요원들의 괴롭힘 신고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XXXX가 정신을 못 차리네”(2020년 5월)
산업기능요원인데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듣고, 졸지 않았는데 졸았다고 생각한 상사는 “개XX야 내가 너 그러지 말라 했어 안 했어, 이 XXXX가 정신 못 차리네”라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작은 일들로 폭언과 욕설이 난무되는 가운데서 계속 일해야 했습니다. 근로계약서보다 30분 일찍 출근시켜 청소와 잡무를 시키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지각으로 치겠다고 협박합니다.

“다쳐서 병가 신청했다고 창고에서 일하게 해요”(2020년 6월)
사회복무요원입니다. 무거운 박스를 옮기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공무상 병가를 신청했더니 주무관은 사회복무요원이 공상 신청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화를 내었습니다.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꾀병인데 의사에게 돈을 준 게 아니냐며 비꼬았습니다. 큰소리로 망신을 주었고, 저를 책상이 아닌 창고 같은 곳에서 혼자 일하게 했고, 책상을 밖으로 빼 외부에 앉게 한 적도 있습니다. 더운 날 선풍기조차 주지 않습니다.

“패버리겠대요”(2020년 5월)
다른 사회복무요원과 저를 비교하며 “걔는 일을 잘하는데 너는 인지능력이 떨어져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제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사회생활을 못하니까 일을 그렇게 한다고 비꼽니다. 심지어 “네가 내 자식이었으면 두들겨 팼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주말에는 교회를 나오라고 강요받았고, 직원들의 개인 업무도 처리해야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재지정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절대 보내주지 않는다 합니다. 담당 복무 지도관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재지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지만, 담당자는 고충으로 인한 재지정은 불가하며, 재지정을 받으려면 진단서가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당 60시간 일을 시켜요”(2020년 9월)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부당한 일이 많습니다. 야근이 너무 심해서 주당 60시간 일한 적이 많습니다. 어려운 일을 지시하고, 빨리하지 않으면 느리다고 비난하고, 일을 더 많이 줍니다.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해도 정해진 야근수당만 줍니다. 직장 상사가 연구과제가 아닌 개인 논문 교정과 같은 사적인 업무를 시키고, 연구 업무가 아닌 회사의 다른 업무도 가리지 않고 시킵니다.

“군 대체복무요원도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병무청과 고용노동부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인권유린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군 대체복무요원도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무관리 위반이나 근로기준법 위반은 병역지정업체 취소 사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갑질과 인권유린을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이충언 법무법인 유한 변호사는 “병역을 대신한다는 인식 아래 복무기관에서 국민 이하의 대접을 받는 복무환경에 대한 변혁이 필요하다”며 “각 복무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인식개선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배치기관 변경 사유를 다변화하고 그 소명의 정도를 낮추며 산업기능요원 등과 같은 경우 업체의 부당한 대우로 인해 전직이 필요하게 되었다면 새로운 업체와의 근로관계 체결에 있어 편의를 보장해 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행과 폭언, 장시간 노동 강요, 휴게시간 단축 등 위법행위가 발생했을 시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녹취뿐만 아니라 꾸준히 작성한 업무일지, 주변에 호소한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역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법 위반에 대한 수시 단속, 상시 점검이 필요하며 직장 갑질이 신고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특별근로 감독과 특별감사를 벌여서 인권유린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군 대체복무요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 역시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지난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시민단체로, 14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노총 법률원(금속법률원, 공공법률원, 서비스연맹법률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법 등 많은 법률가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전문가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오픈카톡 상담, 이메일 답변, 밴드 노동상담, 제보자 직접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