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노래방의 위기
[손광모의 노동일기] 노래방의 위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9.30 05:24
  • 수정 2020.09.30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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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집 근처 노래방이 결국 문을 닫았다. 폐업한 업체이기 때문에 과감히 상호를 밝힌다. 연희동 지코인(ZiCoin). 폐업을 결정하기까지의 그 지난한 사연을 알 길이 없으나 코로나19가 폐업에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지난해 즈음 연희동에 둥지를 튼 지코인 노래방은 탄탄한 고정 손님(주로 대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음향시설 확충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2월에 있었던 코로나19 전국 확산 때에는 재단장 기간으로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도 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고자 한 셈이었다.

하지만 잡히나 했던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다시 재확산되는 사태에 지코인 사장님도 별 수 없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작은 노래방의 폐업은 아마도 근방 연희동 주민에게 꽤나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갔을 것 같다. 1평 남짓 조그만 방은 뭇사람들이 일터와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토해내는 장소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노래방이 처음 대한민국에 도입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부산에서부터라고 한다. 처음에는 ‘방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본의 카라오케가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만들어진 게 기원으로 추정한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은 개방형 술집 한 가운데 노래를 부를 수 공간이 있는 형태였다. 술집 손님은 누구나 앞에 나가서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초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공간은 일종의 ‘무대’였기 때문에 웬만한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쉽사리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터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무대’ 아래 테이블에서 퇴짜를 놓기도 하고 수준급의 실력자에게는 술을 선물하는 문화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카라오케형 노래방은 한 차례 시련을 맞는다. 바로 퇴폐 유흥문화에 노래방 기기가 결합하게 되면서다. 이름도 낯 뜨거운 ‘룸쌀롱’이다. 룸쌀롱 노래방에서는 개방형 술집 한 가운데에 있었던 노래방기기가 5명에서 1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밀실로 들어갔다. ‘무대’를 통해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라기보다는 유흥의 부차적인 수준으로 노래가 격하된 것이다. 아직도 노래방에 남아 있는 세간의 부정적 인식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룸쌀롱형 노래방은 다시 한 번 변형을 거친다. 바로 오락실 내에 노래방기기가 도입되면서다. 오락실에 노래방기기가 도입되면서 '음주'와 '가무'가 분리됐다. 비록 비행청소년들의 아지트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었지만, 술을 마시는 곳이라는 퇴폐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다. 이후 오락실이 PC방에 자리를 내주고 몰락함에 따라 오락실노래방, 즉 ‘오래방’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오래방은 룸쌀롬형 노래방과는 달리 동전을 넣어야만 선곡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래방은 ‘동전노래방’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동전노래방은 이후 ‘슈퍼스타K’ 등 오디션 열풍에 발맞춰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오늘날에는 오락실을 연상시키는 ‘오래방’이라는 말보다는 ‘코노’(코인노래방), ‘동노’(동전노래방) 등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코로나19는 노래방에 위기를 가져왔다. 과연 노래방은 지난 시기 몇 차례 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대중들의 놀이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전망은 어둡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의 이중적 욕구는 작고 밀폐된 공간에 노래방기기를 들여놓게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작고 밀폐된 공간을 원천적으로 못 쓰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지 않은 욕구는 코로나19 시대에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기에 차세대 노래방의 모습은 노래실력이 꽤나 되는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었던 가라오케형 노래방과 닮았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노래를 부르는 일이 더 이상 ‘대중적인 놀이’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 자체가 굉장히 어색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코로나19 시대에 비단 노래방만 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영업 하는 당구장, PC방 사장님에게도 큰 위기다. 뿐만 아니라 노래방이나 당구장, PC방이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창구인 사람에게도 코로나19는 놀이문화를 파괴하는 위기다. 이 세 곳을 가지 못해서 지금까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했을 거라는 점에서 그저 웃어넘길만한 일은 아니다. 지코인 노래방의 폐업에서 ‘앞으로 뭐하고 놀지’라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저 집 안에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의 몸은 적합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