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어몽어스’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박완순의 얼글] ‘어몽어스’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10.02 00:00
  • 수정 2020.10.01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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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AMONG US’, 발음 그대로 ‘어몽어스’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요즘 인싸게임이다. INNERSLOTH에서 2018년 제작한 것인데 2020년 지금 유행하고 있다.

왜 이제야 유행할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유명 해외 및 국내 유튜버, 트위치 스트리머들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 저거 재밌겠는데”하고 급속도로 게임을 다운 받고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왜 사람들이 저걸 재밌으니까 한 번 해봐야지 했을까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요즘 어떤 사회문화 현상이든 기승전‘코로나’라서 식상하긴 하지만 코로나19는 AMONG US 유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대면 상황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재밌게 놀 수 있는, 그것도 어떤 출중한 실력(그러니까 마우스나 키보드 컨트롤 등, 흔히 말하는 게임 피지컬)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어떤 게임이어서 그럴 수 있을까? AMONG US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전 세계적 게임 ‘마피아’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1986년 모스크바 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디마 다비도프가 처음 만든 마피아는 당시 소련에서 동유럽으로, 동유럽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번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마피아를 즐기고 있었다. 몸만 있으면 심장이 쫄깃해지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심리전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마피아를 클래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AMONG US도 당연히 인기가 생겼다.

세 번째 매력은 역할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AMONG US에서 게임을 시작할 때 자기 이름(ID)을 짓는데, 가령 ○○상사 컨셉과 같이 컵셉을 정해서 자기 이름을 짓는다. 이렇게 되면 누구는 대표이사가, 누구는 상무가, 누구는 부장이, 누구는 과장이, 누구는 대리가, 누구는 사원이, 누구는 인턴이 된다. 마피아도 하고 역할극도 하면서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것이다. AMONG US에서 마피아로 불리는 Impostor(사기꾼)에게 부장이 살해당하면 밑에 직급의 사람들이 “아이구 그렇게 우릴 괴롭히더만”하고 수군거리고, “아이고 미래의 부장님”하면서 과장과 대리에게 아부를 한다.

이 3가지 매력은 AMONG US가 2년이 지난 지금 흥행하게 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꼭 내가 하지 않더라도 유튜버들이 AMONG US 게임을 하는 영상을 보면 재밌고 웃기다.

어느 날 영상을 보다가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을 봤다. 목격자의 진술에 관한 것이다. 직장 내 역할극을 하면서 Impostor를 찾는 중이었는데, Impostor의 살해현장을 목격(AMONG US는 기존 마피아와 달리 Impostor가 무고한 크루원을 죽이는 것을 다른 크루원이 목격할 수 있다.)한 크루원(crew, 마피아 게임에서 시민)의 진술이 그의 역할극 상 직급 때문에 무시당하는 상황이었다. 인턴이 Impostor인 과장의 살해 현장을 목격했지만 다른 크루원들은 “어디 인턴이”라며 잘 믿지 않았다. 물론 상황극이었겠지만 위계에 따른 목격자의 진술이 차별받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면이 게임 중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코로나 시대에 주목받는 AMONG US처럼 주목받고 있는 성명이 있다. 르몽드에 올해 5월 게재된 ‘Work : Democratize, Decommodify, Remediate’, ‘노동 : 민주화, 탈상품화, 환경 복원’이다. Isabelle Ferreras, Dominique Méda, Julie Mattilana 세 명의 학자가 작성한 논평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발견한 노동 이슈의 핵심적인 교훈인 ‘기업의 민주화, 노동의 탈상품화, 환경 복원’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논평의 목적이었다.

코로나19가 노동자의 출퇴근을 막아 각자를 격리하고 분리한 생태에서도 노동자들은 속한 조직을 위해 감시와 의무적 규율 없이도 일을 했다. 노동자가 일을 할 수 없으니 기업과 공장이 멈췄는데, 이것은 노동이 없으면 생산활동이 멈추고 사회가 퇴행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줬다. 따라서 ‘노동 : 민주화, 탈상품화, 환경 복원’ 논평에서는 “노동자는 기업의 핵심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의 지배구조에서 대부분 배제돼 있으며 이러한 참여권은 자본 투자자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노동의 경영 참여’, ‘기업의 민주화’, 나아가 ‘경제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기업의 민주화가 자본의 이익극대화로만의 질주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내가 봤던 AMONG US 게임 영상 속 민주주의 부재는 ‘노동 : 민주화, 탈상품화, 환경 복원’ 논평의 기업 민주화의 부재와 엄밀히는 다르다. 하지만 줄기는 같다. 기업 활동의 민주화와 기업 내부 조직의 민주화는 따로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민주주의에 둔감한 상황에서 기업 활동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엇박자가 날 것이다.

기승전‘코(로나)’에서 ‘코’승전결로 넘어가는 길목에 우리가 서있다. 게임에서건 현실에서건 그 길목에서 중요한 지점을 알려줬다. ‘승’이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