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역대 최고 품질충당금 ... 기아차노조 ‘변칙경영’ 비판
현대차그룹 역대 최고 품질충당금 ... 기아차노조 ‘변칙경영’ 비판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27 13:32
  • 수정 2020.10.27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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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3조 4천억 대 품질충당금에 기아차 실적 대폭 축소
​​​​​​​품질논란 잠재우기? 빅 배스 전략? 기아차지부, “파수꾼 역할 다 할 것”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진행된 ‘1조 2,600억 원 품질비용 충당 적자 전환! 정의선 회장은 사재 출연하라’ 기자회견 현장.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기아자동차의 3분기 영업실적이 1,935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속에 '선방'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현대차그룹이 기아자동차에 총 1조 2,592억 원의 품질충당금을 반영하기로 하면서 흑자 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기아차지부는 이러한 조치가 정의선 회장의 ‘변칙경영’이라며 비판했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지부장 최종태)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조 2,600억 원 품질비용 충당 적자 전환! 정의선 회장은 사재 출연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아차 3분기 영업실적 대폭 축소

기아차지부가 본사 앞을 찾은 건 19일 현대차그룹이 총 3조 4,000억 원 규모의 품질충당금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로 하면서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현대차 2조 1,352억 원, 기아차 1조 2,592억 원이다.

품질충당금(충당 부채)은 재무제표상 품질 관련 고객 클레임을 처리하는 비용을 말한다. 품질 관련 클레임은 무상 수리부터 제품교환까지 다양하다. 단 품질충당비용은 기업이 당장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아니다. 재무제표상 향후 예상되는 처리 비용을 미리 계산해 손실로 빼두는 것이다.

올해 현대차그룹의 3조 4,000억 원의 품질충당비용은 2017년 3,900억 원, 2018년 4,600억 원, 2019년 8,987억 원에서 갑자기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당초 큰 폭의 흑자를 예상했던 기아차의 올해 3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크게 하회하는 1,953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3분기 1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예상했지만 3,138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번 조치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14일 현대차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품질’을 강조한 것과 상응한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세타2 엔진 평생 보증 프로그램’에 2조 8,420억 원을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보증 대상 차량의 추정 평균 운행 기간을 12.6년에서 19.5년으로 확대했다. 평생 보증 프로그램 대상 차량은 쏘나타, 투싼, 싼타페(현대차)와 K5, 스포티지, 쏘렌토(기아차) 등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정의선 회장의 빅 배스 전략?

현대차그룹은 이번 조치를 ‘품질 논란 잠재우기’로 설명하지만, 노동조합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대규모 품질충당금 반영을 ‘빅 배스(Big Bath)’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다. 빅 배스 전략이란 새로 부임하는 경영진이 그동안의 누적손실이나 향후 잠재적 부실 요소 등을 회계에 반영해 그 책임을 전임자에게 넘기고, 다음 해 경영실적을 더욱 부각하는 전략을 말한다. 불법인 분식회계와는 다르다.

기아차지부는 “정의선 회장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빅 배스’임이 분명하다”면서, “특히 정의선 회장의 약점인 편법세습경영을 합법으로 포장하려는 강요된 출혈이다.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경영진의 행동에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기아차지부는 사측과 8월 27일부터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기아차지부는 10월 22일 9차 교섭에도 사측의 제시안이 없자 10월 2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쟁의조정신청을 하기로 결의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11월 3일 기아차지부 각 지회별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진영 기아차지부 선전교육실장은 “작년 기아자동차는 2조 원대의 흑자를 봤다. 올해도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현대차와의 교섭에서 임금이 동결되면서 조합원들은 영업이익을 낸 만큼 성과 배분이 안 된다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노동조합에서는 이 문제를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대규모 품질충당금에 대해서도 “세타2엔진의 결함을 알고서도 쉬쉬하고 있다가 품질충당금이라는 형태로 이익금을 빼돌리는 것은 정의선 회장의 승계 과정에 있었던 현대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의 후유증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세타2엔진은 무엇?

한편, 이번 대규모 품질충당비용의 원인은 세타2엔진의 결함 때문이다. 세타2엔진은 2007년 처음 출시됐다. 출시 당시 엔진 소음 및 시동 꺼짐 현상 등 논란으로 2009년 품질 개량을 거쳤다. 하지만 이후에도 엔진 결함 문제는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15년 미국에서 세타2엔진 탑재 차량의 시동 꺼짐, 화재 등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같은해 9월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유통되는 YF쏘나타 차량 47만 대를 리콜했다.

하지만 논란을 모두 잠재운 건 아니었다. 2016년 현대차그룹 내부 인사의 공익제보를 통해 세타2엔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미국과 한국 정부에 알려졌다. 그리고 2017년 현대차는 미국과 국내 유통 차량의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은 결함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혐의(자동차 관리법 위반)로 2019년 10월 31일 재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서도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과 도로교통안전국 등이 같은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0월 현대차그룹이 ‘세타2엔진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밝힌 배경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기아차지부, “파수꾼 역할 하겠다”

최종태 기아차지부 지부장은 “2020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기아자동차는 내수 시장의 활성화로 3분기 1조 3,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됐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의 변칙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경영진의 결정으로 영업이익이 1,953억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면서, “신임 경영자의 경영성과는 과거 경영의 책임 전가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진취적인 미래경영과 그룹사 구성원들의 신뢰를 기본으로 동반 성장하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아차지부는 “2020년 초 쏘렌토 품질 사건, 3년에 걸쳐 반복되는 품질충당금 사태로 실망하신 소비자, 시민, 주주와 더불어 더 좋은 자동차 생산과 투명한 경영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