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떨어진 핵폭탄, 한일 FTA
한국경제에 떨어진 핵폭탄, 한일 FTA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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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산업 ‘기반 붕괴’, 신산업도 ‘속 빈 강정’

한일 FTA를 해부한다

한국경제에 떨어질 핵폭탄, 한일 FTA
FTA란 무엇인가
기업노사 80% “FTA 진행경과 모른다”
전문가 집단도, 전략도 없단 말인가
한일 FTA 공동연구회 보고서 속 숨은 의도
업종별 파장
   자동차/철강/금융/전자/기계/석유화학
중소기업, 일본 ‘호구 노릇’ 할 판
일본업계 “한국 노동시장 빗장 풀어라”
일본의 전략 ‘준비 끝’ ‘이상 무’
긴급제안 - 노·사·공익 FTA실무단 꾸리자

 

 “어느 나라와도 FTA를 체결하는 것은 환영이지만 일본만은 비켜갔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자동차공업협회 A상무)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한-일 FTA의 실익을 물어야 한다”
  (산업연구원 B박사)
“이미 늦었다. 어떤 명분이든 FTA 재고를 제기할 경우 정치·외교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C사무관)
 


2005년 말 타결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그간 막연한 기대나 불안에 그쳤던 FTA 체결의 효과가 조금씩 집계되면서 기대와 불안도 구체화되고 있는 것.

정부가 오는 11월로 예정된 6차 협상에 제출키로 한 관세 양허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전자 등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부 업계에서는 유보론에서부터 전면 재검토론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투자 증가는 장밋빛 환상
양국의 협상안 마련에 기초 자료 역할을 한 ‘한일 FTA 공동연구회 보고서’는 자동차, 기계, 전자, 철강 등 대부분의 공산품에 대해 일본은 거의 관세가 없는데 반해 한국은 8% 수준이라서,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대일 의존도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대한(對韓) 직접투자 증가, 경쟁을 통한 구조조정 효과, 기술이전과 경쟁력 강화 등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이익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단기적인 무역적자 예상치와 경제 대일 종속도 심화 지표는 속속 집계되는 반면 장기적 효과는 불분명해지고 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장기적 이익이야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고 당장 손실은 눈에 보이는 것인데 뭘 믿고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리라는지 모르겠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실정이다.

 

2003년 한국과 일본은 FTA의 전초전 격인 한일투자협정(BIT)을 체결했다.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을 통해 일본의 대한투자, 특히 그린필드형(고용·생산유발형) 직접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BIT 체결 이후 일본의 직접투자가 늘었다는 증거는 없다. 산업연구원이 협정 체결을 앞두고 대한 투자 유망 일본기업 27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답변 기업의 21%가 ‘투자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51%가 ‘단기적으로는 검토하지 않음’에 답했다. 검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대답도 29%나 차지했다.

 

산업연구원 사공목 박사는 “투자의 활성화는 협정 문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 “여러 조사를 볼 때 일본은 한국을 투자 대상국으로서는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FTA 체결을 통해 비관세 장벽마저 사라지면 투자보다는 판매 메리트가 더 커진다. 한국은 일본의 판매처나 상품 생산의 중간 경유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일 종속도 강화 → 저부가가치품 생산기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세계와의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은 150억 달러. 그러나  대일 무역적자는 이의 1.27배나 되는 190억3천만 달러를 기록해 세계시장에서 번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일본에 넘겨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경제와 무역구조의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것이 수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일본에서 사들여야 하는 우리 경제 구조 탓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7월 발표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의 대일 적자 99억 달러 가운데 3분의 2에 달하는 65억 달러가 부품 소재분야에서 발생했다.

 

업계는 한일 FTA 체결을 통해 일본 수입부품의 가격이 하락되면 부품 수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수출증가율과 일본의 전자부품 수입증가율 추이를 살펴보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수출품목이 고도화될수록 일본으로부터 첨단부품 및 소재, 그리고 제조장비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원은 “한일 FTA 효과가 발동되면 단기적 대일 적자 확대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서 한국은 저부가가치 제품 생산국, 일본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국으로 수직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경제구조를 두고 낚시 기술은 최고이지만 목에 묶인 쇠줄 때문에 잡은 고기를 다 토해내야 하는 비운의 새 가마우지에 비유해 ‘가마우지형 경제 종속론’까지  펼치고 있다. 대일무역역조가 고착화된 한일간 무역구조를 감안할 때, 자유무역협정은 대일 적자를 더욱 확대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의 관세율이 낮아서 FTA 체결로 인해 무관세화가 실현됐을 경우 대일 수입이 우리의 대일 수출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조자명 부소장은 “한일 FTA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산업에 국내 시장을 내주고 생산측면에서는 고부가가치 핵심 부품산업을 일본에 의존하면서 대외적인 수출에 전력할 수밖에 없는 속빈 강정의 산업구조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이전? 어림없다! 적대적 M&A 활성화 예고
지난 2000년 한일 FTA의 실효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국책연구원과 정부는 각종 비관세 장벽의 철폐로 일본기업의 진출이 활발해 지면 기술이전으로 우리 부품산업의 취약한 경쟁력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장밋빛 전망을 펼쳤다.

 

그러나 부품산업진흥재단의 한 임원은 “몰라도, 몰라도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냐”며 탄식을 내뱉는다. 지난 4차 협상에서 일본은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협정문 초안을 만들어서 제시했다. 이 초안은 지적재산권의 범위 확대와 민·형사상 처벌 강화 등 이례적으로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미 지난 2002년부터 유례없이 강화되기 시작한 일본의 지적재산권 강화 전략은 한국 및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 협정에서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관련기사 16면>

 

지난 9월 15일 증권거래소가 밝힌 ‘상장법인 외국인 2대주주 현황’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이 2대 주주로 되어 있는 상장법인수는 지난해 말 116개에서 138개로 19%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우량기업 중 상당수가 기계 및 부품소재, 화학섬유 관련 업체들이어서 일본 투자자들에 의해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고종섭 국제통상 과장은 “중소기업 중 일본이 실제로 기술을 이전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업체는 별로 없다”며 “오히려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적대적 M&A로 국내 중소기업의 국적마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산업공동화 가속, 중소기업 기반 붕괴
산업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제조업 기반의 취약성은 대일무역역조와 수직적인 분업구조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무역역조가 구조화되어 있는 기계부품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며, 한국의 부품산업은 더 이상 존립기반을 갖지 못하고 일본의 부품공급체계에 강하게 의존하는 수직분업이 고착될 것이라는 것.   

 

한신대 국제학부 송주명 교수는 “한일 양국간에는 우리나라는 1차 산업, 전통적 중소기업,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로, 일본은 중화학공업과 기계정보산업 등을 중심으로 특화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그 결과 주력 제조산업의 공동화 영역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최영훈 이사는 “전자부품업체들의 경우 8% 관세라는 보호막이 없어지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면서, “산업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도 한·일 FTA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