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이후 50년, 자본주의는 변한다
전태일 이후 50년, 자본주의는 변한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12 18:25
  • 수정 2020.11.12 1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
국내외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노동의 미래

전태일 50주기를 하루 앞둔 11월 12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는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이 진행됐다. 전태일 50년 이후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노동의 미래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사스키아 사센(로버트 에스 린드 석좌교수) ▲김금수(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에드워드 웹스터(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명예교수) ▲즈엉 수안 히우(베트남 노총 국제국 선임부장) ▲샤리프 아리핀(인도네시아 노동자원센터 연구원) ▲라그후람(인디아화학제약연합노조 위원장) ▲브르노 페레이라(말레이시아 전자산업노조 서부지역 사무처장) ▲김이찬(지구인의 정류장 상임활동가) 등이 포럼에서 발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외 참가자들은 사전에 촬영한 영상으로 대체했다.

 

11월 12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이 진행됐다. 기조발언을 하는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기술진보·글로벌화·신자유주의 속에서 노동운동은?

이날 포럼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열렸다. 오전 세션에서는 ‘변화하는 자본주의와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사스키아 사센 교수와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 이사장이 강연을 진행했다.

사스키아 사센 교수는 ‘전지구적 세계가 지역으로 분화될 때’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을 했다. 지역의 가치가 재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스키아 사센 교수는 “자본주의는 채굴과 같은 기능을 한다. 광산에서 채굴을 완료하고 나면, 그 광산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게 된다. ‘현재의 착취적인 형태가 예전의 우리 삶의 방식과 비교해봤을 때 더 효율적인지’ 우리에게 자문해봐야 한다”며 “지역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코로나19 바이러스다.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이 존재는 우리의 익숙한 일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정부가 자원을 마련하고 소비하는 양식을 바꾸면 여러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기존의 노동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동단체들이 현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노동조합과 지원단체들은 현 경제의 광범위한 새로운 요소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이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이냐는 문제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마다, 그리고 국가 안에서도 매우 상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조발언에 나선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은 ‘노동운동관점사에서 본 한국노동운동의 미래’를 진단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직면한 중대 도전을 ▲자본의 지구촌화 ▲신자유주의 ▲기술 혁신 ▲팬데믹과 기후변화라고 설명했다.

김금수 명예이사장은 이 도전들을 안고 노동조합이 발전하기 위해서 “전태일의 인간선언과 그가 추구했던 인간조건의 실현을 목표로 한 ‘인간조건 실현 사회주의’를 제안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이것은 한 때 민주노총이 표방했던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과도 일맥상통한다. 미조직 노동자의 계획적인 조직화를 위해 산업별 노조체제를 강화하고, 업종별·산업별 단체교섭도 정착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를 위해 상급조직 지도부에서부터 현장 단위의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각급 단위에서 일정 기간에 걸쳐 노동운동 기조와 자기개혁에 대한 현장 토의를 폭넓게 전개하고, 그 결과를 수렴해 노동운동 발전 방향과 미래를 위한 자기개혁 프로그램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11월 12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진행된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 오후 세션 '글로벌 공급 사슬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 토론 영상.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노동운동가들이 참여했다. 

 

“글로벌 노동운동 연대해야”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은 오후 2시 30분부터 재개됐다. 오후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주제는 ‘글로벌 공급 사슬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에드워드 웹스터 교수와 아시아 지역의 노동운동가들이 발제를 맡았다.

기조발표에서 에드워드 웹스터 교수는 “오늘 전태일의 삶을 기억하는 포럼에서 발표하게 되어 큰 영광이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그의 투쟁과 최후의 희생은 전 세계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글로벌 공급 사슬은 상품과 용역을 구매하고 공급하는 여러 대륙과 여러 나라를 넘어 뻗어 있는 네트워크들”이라며 “다국적기업들이 통제하는 무역의 자유화와 글로벌 공급 사슬의 성장은 노동 기준을 침식하고 좋은 일자리의 논리적 타당성을 악화시킨다. 노동자 단체를 통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적이고 문명적인 글로벌 공급 사슬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글로벌 규모에서 노동착취가 심해졌지만, 이 사슬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취약성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엔진 부품 선적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호주의 조립 라인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호주와 한국의 사용자 모두를 교섭 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적극적이고 민주적인 참여는 노동자 권리와 안전 강화를 위한 메커니즘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로벌화에 발맞춰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조발표 이후 아시아 노동운동가들은 영상을 통해 한국 자본의 ‘악명’을 강조했다. 라그후람 인디아 화학제약연합노조 위원장은 “지난 5월 7일 이른 아침, 인도의 안드흐라 주에 위치한 LG 폴리머 화학 공장에서 엄청난 산업재해 사고가 일어났다.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12명이 죽고 585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샤리프 아리핀 인도네시아 노동자원센터 연구원도 “한국인 사장이 소유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동부 버카시 공단에 있는 SKB 공장에서는 노동자 4,000명이 일했다. 3,800명이 여성 봉제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을 일해야 회사가 정한 목표량을 맞출 수 있었다”며 “아침 7시 30분이 공식적인 작업 시작 시간이지만 노동자들은 아침 7시까지 기계 앞에 있어야 했다”고 밝혔다.

즈엉 수안 히우 베트남노총 국제국 선임부장은 “베트남 국민경제의 외국인 직접투자 비중에서 한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크며, 봉제업의 중소영세업체는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같은 대자본 생산공정의 이전 등에서 보이듯 주력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면서도 “한국기업들은 건전한 노사관계 구축에는 실패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동지들로부터 여러 가지 경험을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발제를 들은 에드워드 웹스터 교수는 “오늘 발표는 대단히 좋은 정보였고, 많은 감동을 줬다. 나라는 다르지만 경험은 비슷하다는 교훈이 있었다”며 “신자유주의시대에서 한국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에서 보이고 있는 행태가 참담하다. 그러나 나는 전태일 50주기에 노동자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총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