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 달린다
그래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 달린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8.11.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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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비전, ‘가능성’과 ‘사례’ 만들어야
‘인사노무’는 회사 경쟁력의 ‘핵심’
Special Report_ 흔들리는 노무, 휘청이는 노사관계 ③ 노무의 내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인사와 노무 문제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기업애로종합지원센터(helpbiz.korcham.net)’의 지난 2년간 상담접수 현황에서 인사, 노무 분야가 25.9%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법률(24.1%), 세무·회계(14.5%), 자금·금융(12.6%) 등의 순이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인사 및 노무 상담이 많았던 이유로 “올해 7월 1일부터 20인 이상 기업에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개정된 ‘정리해고’, ‘퇴직금 산정’, ‘비정규직 차별문제’ 등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당장의 업무 성과와 노사관계 현안에 급급하다 보면 실무자들이 정작 필요한 업무 지식을 쌓을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성’ 키우고 ‘미래’ 만들어야

노무 출신으로 임원자리까지 오른 A씨. 노무 업무를 할 때 노조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심지어 노조로부터 노사관계 파행의 주범으로 몰리며 임단협 시즌만 되면 노조 유인물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얼마 전 노동조합 임원들이 그랬던 A씨를 찾았다.

노조 임원들은 “그래도 우리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주던 사람이 당신”이라고 얘기했다. A씨는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왜 그 때는 서로를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실무에 있을 때는 당면한 과제와 ‘관리’ 업무에 매몰돼 노사관계의 중요성도, ‘파트너십’의 의미도 없이 서로의 입장만 고수하게 된다. 하지만 노사관계 당사자들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현장’을 중심으로 일하는 실무자들은 서로의 고충과 이해관계를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실질적인 노사관계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발현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적자원개발과 인재관리를 중시하면서도 정작 ‘노무관리’에서는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위해 장기적인 목표 하에서의 인적자원 개발과 교육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LG전자 노경팀의 비전은 조합원, 노동조합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 구축과 파트너십 구축이다. 또한 노경팀의 담당자는 인사제도와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LG전자 노경팀 관계자는 “일하는 과정에서 TF팀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상사의 업무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다양한 단계별 직무교육을 통해 노사관계 관련한 직무교육과 HR대학에서 인사, 노경과 관련된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 과정 중에는 공인노무사 과정이 포함돼 있어 2년에 한번씩 부서에서 5~6명을 추천해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대상이 아닌 사람도 개별적으로 필요성을 느껴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인사노무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B사 노무 부서의 ‘핵심 인력’으로 불리던 C차장은 최근 ‘한직’으로 옮겼다. 자신이 자청한 일이다. 윗선에서는 여러 차례 만류했지만 그는 어떤 불이익을 받더라도 옮기겠다고 고집했다. 노무 부서에 계속 있었더라면 곧 부장으로 승진했겠지만 옮긴 부서에서는 언제 부장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C차장은 자신의 선택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죽어라 고생해서 실컷 노조와 얘기를 잘 풀고, 또 현장의 여론을 움직여 놓으면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본사 사람들이 개입해서 일을 망쳐놓곤 했다”는 게 C차장의 전언이다. 그는 “노무를 장기판의 졸로 보는 상황에서 일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노무관리 실무자는 현장에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요구사항을 가장 최일선에서 듣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장의 불만이 고조되어 이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들이 ‘노무관리’를 위해 쓰이는 행사나 교육, 복지를 위한 비용 사용을 ‘효율적인 경영’에 저해된다고 여겨 ‘절감’을 강조하거나 이를 무시하게 되면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신뢰는 ‘노사관계’에서도 필요하지만 노무관리 부서와 경영진의 신뢰와 믿음은 기업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고충이나 불만이 해소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과도하다’,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던 부분들이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관리를 ‘비용’으로만 보게 될 경우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기업의 노사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 위임, 동결과 파업하지 않는 노동조합이 ‘신노사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는 현장, 그리고 공장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문화를 만들고 이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무관리 비용을 투자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함께 고민할 때 진정한 ‘노사문화’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기업은 평상시에 구성원들의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역할을 인사 노무 부서에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를 위해 노무 파트에서도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총 남용우 본부장은 “개별 노사관계를 바꾸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합리에 대한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켜야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갖되 그 안에서 노무관리 부서가 이 의지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현장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여러 가지 방향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에게는 ‘전문성’이 있다

D기업의 E 차장은 노무관리를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숨 고를 틈 없이 돌아가는 업무와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유독 노사관계가 힘들었던 지난 한 해 동안에는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지 못한 금액이 소형차 한 대 값에 육박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당장 그만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E차장은 그래도 그들의 파트너는 ‘나’라고 말한다. 자신이 고수해 온 원칙을 임원이 한번에 승낙해 곤란을 겪어도 결국 또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E차장은 “회사 업무를 하다 보면 한꺼번에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상황도 오고,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도 있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 결국 그 사람도 나를 알아준다고 믿는다”고 이야기 했다.

E 차장은 "매일 저녁 밤이슬을 맞으며 술잔을 부딪치고 때로는 몸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들을 직접적으로 노동조합에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조합 비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기도 한다"며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던, 누가 뭐래도 내가 생각할 때 옳은 것을 말하고 그것을 설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사관계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거액을 들여 컨설팅을 하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보다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실무자들에게 해답을 찾고 또 그에 대한 확실한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현장으로부터 올라오는 실행력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관리자들의 역량을 오히려 회사 안에서 더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개별적인 ‘관계’로 노사관계를 풀어내 왔던 오랜 관행은 ‘노무쟁이’들을 괴롭혀 왔다. 그리고 지치게 했고 때로는 눈 앞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술과 입막음, 편법으로 스스로에게 굴레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또 ‘관계’로 인해 현장을 보고, 현장 직원들의 삶과 고충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들이 ‘비전’을 포기하고 ‘쉬운 길’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가능성, 그리고 사례들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생산 현장의 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역량이 밤이슬을 맞으며 사라지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