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전태일’을 기억하라
‘다채로운 전태일’을 기억하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2.10 00:13
  • 수정 2020.12.10 0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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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주체는 노동자’라는 물꼬를 터트린 도화선
“노동자를 무한히 사랑한 전태일은 노동문학의 출발”

[책에서 만난 노동] <아,−전태일!>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읽을거리가 여럿 나왔다. 이 기사도 그 중 하나다. 11월에 전태일 50주기 기사를 다 마감해놓고 질문 하나를 감히 던졌다. “왜 전태일만?” 그러던 중 도서출판 목선재에서 책 한권을 보내왔다. 제목도 <아,-전태일!>이다. 다섯 명의 저자가 ▲전태일 약전(안재성) ▲전태일과 한국사회(이병훈) ▲전태일과 한국문학(맹문재) ▲전태일과 한국영화(박광수·윤중목)를 다뤘다. 11월 13일, 전태일의 기일에 맞춰 펴낸 이 책의 저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전태일과 한국사회’를 쓴 이병훈 교수, ‘전태일과 한국문학’을 다룬 맹문재 시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전태일!' 저자 이병훈 교수·맹문재 시인
<아,-전태일!> 저자 이병훈 교수·맹문재 시인


‘찐한 영혼’ 전태일은
스스로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경종

- 이병훈 교수님, <아,-전태일!>은 어떤 책인가요?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올해 많은 책이 나온 것으로 압니다. 나름대로 중요한 시기에 전태일 열사에 대한 글을 쓴다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전태일 열사를 다채로운 시점에서 되돌아보기 위해서 준비됐습니다. 제가 노동사회과학자로서 노동문제를 다루거나 분석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 책은 색다르다 싶은 게 문학과 영화처럼 대중적인 시선에서 메시지를 표현하는 분들과 짝이 돼 함께 썼다는 겁니다. 제 꼭지는 1970년대 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시대적 상황부터 시작합니다. 분신이라는 극한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 사회에 당장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두고두고 안긴 울림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했습니다.

- 전태일이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남은 역사는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서, 그리고 기억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실이자 메시지입니다.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승리자의 역사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권력이 기억을 좌우하면서 현재 우리의 인식과 지식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나 잘못된 권력에 맞서는 주체가 있고, 그들이 강조하고 부각시키려고 하는 역사나 사실도 존재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어두운 장벽 속에 희생으로 하나의 촛불을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소선 어머니서부터 삼동회 친구들, 그리고 많은 동료 노동자들, 우리가 사회 민주화 세력이라고 했던 지식인·학생들이 동참하면서 전태일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 바꾸어 왔던 것입니다. 전태일만이 아닌 전태일과 더불어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펼쳐졌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병훈 교수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이병훈 교수 

- 교수님은 전태일을 어떻게 보세요?

찐한 영혼 같습니다. 평범한 노동자가 현실에 대한 엄청난 장벽을 부숴보겠다고 하면서 바보회서부터 시키지도 않은 설문조사를 하고 노동청에 호소도 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는 그런 점을 불굴의 실천의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자신도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 세상을 바꾸려 하는 시도, 희생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기록을 살펴볼 때마다 먹먹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전태일은 노동자의 참혹함을 세상에 고발하고, 노동자가 세상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물꼬를 열었습니다.

- ‘한국사회의 진보를 추동하는’ 물꼬를 연 건가요?

제가 책에 그 표현을 썼죠. 당시 남아있던 대한노총은 정부 정책에 충실하게 순응하고 기업주에게 협조하는 어용적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산업화의 시동은 걸렸고,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하는데 노동조합은 맞서지 못하는 상태에서 첫 절규를 내던진 사람이 전태일 열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이라는 큰 흐름이 그 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청계피복노조도 만들어졌습니다. 87년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을 만들어내기까지의 흐름이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라는 한 물꼬서부터 이어져왔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 오늘날 한국사회에 ‘전태일’이 있을까요?

노동자가 수단이 아닌 인격체로 당당하게 서는 것이 전태일 열사가 바라는 사회입니다. 50년이 지난 현재 노동현실이 노동존중에 걸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참 갑갑하고 문제다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노동문제가 그득한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면 국가에게 따가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시점의 노동운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득권이나 정파에 붙잡혀 노동운동이 하나의 권력이 돼버렸습니다. 조직 바깥에 있는 다수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치밀함이나 불굴의 투쟁 정신이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약자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식이 기반 돼야 합니다. 전태일 열사가 개혁의 도화선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정신 차리게 하는 경종으로 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전태일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는 선물처럼 오는 게 아닙니다.

- 이 책이 누구에게 읽혔으면 하나요?

사회과학자가 글을 써봐야 사회과학자들만 봅니다. 전태일 열사의 삶, 죽음이 담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만큼 우리 사회가 노동존중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이 대중적인 언어로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는 책이니만큼 독자들이 기억 속의 전태일을 좀 더 풍성하게 되새기길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 ‘전태일과 한국문학’ 꼭지를 쓴 맹문재 시인이 사회과학자인 저보다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전태일 이후 나타난 노동문학도
인간 소외 극복 위해 나아가야”

- 맹문재 시인님, 첫머리에 전태일이 문학 공부를 했다 면 분명 시인이나 소설가가 됐을 거라고 쓰셨어요.

네. 저는 이 책에서 전태일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정리해 봤습니다. 전태일 분신 이후의 노동소설과 노동시의 흐름,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전태일문학상과 노동자문학회 등의 활동을 살펴본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전태일이 일기장에 쓴 소설의 초안들을 원본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전태일이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는 건가요?

한국문학에서 노동문학이 나타난 것은 전태일 분신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학계와 문단에서 노동문학은 공식적인 개념으로 사용될 정도로 꽃을 피웠습니다. 산업화가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진행되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었고 임금은 매우 낮았습니다. 임금도 직업의 종류, 학력, 성별 등에 따라 차이가 컸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나섰지요.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 이야기를 써서 노동조합의 소식지에 싣거나 노동자문학회를 결성해 활동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 전태일이 쓴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은 어떤 건가요?

저는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는 구절을 가슴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1970년 8월 9일에 쓴 다음의 글에 들어 있습니다. 이 글은 조영래가 쓴 《전태일평전》에만 수록되어 있고, 전태일의 일기장에는 없습니다. 전태일 분신 이후 모 신문기자가 전태일의 일기장을 빌려가 사용하고는 이 부분을 떼어내고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요. 해당 기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만약 이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면 되돌려주길 간청합니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 들어 있는 글을 소개해봅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평전》(조영래 저, 198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p. 238

맹문재 시인 ⓒ 김이하 시인
맹문재 시인 ⓒ 김이하 시인

- 시인님이 쓰고자 하시는 글은 무엇인가요?

저는 공고를 졸업한 뒤 제철소에 입사했습니다. 그때의 근무조건은 3조 3교대 근무로 한 달에 하루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작업장의 천장에서는 크레인이 제품을 야적장에 옮겨다 쌓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위험했습니다. 만약 크레인이 몇 톤이나 되는 철판을 옮기다가 떨어뜨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곳에서 안전사고로 죽어간 동료들을 보았고, 그 죽음을 둘러싸고 통곡하는 유족들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노동자들의 힘듦과 억울함과 분노 등을 문학작품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015년 전태삼과 함께 대구에 있는 전태일의 집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고, 부산에 내려가서도 전태일의 집을 찾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전태일의 서울 생활도 답사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전태일의 일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평전을 쓰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사실 저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는 시대와 사회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눈을 가지고 실천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을 무한하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전태일의 그 사랑을 품고 따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