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리기냐, ‘기업사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기업 살리기냐, ‘기업사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12.10 00:15
  • 수정 2020.12.10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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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수익 목적으로 기업 인수·매각 일삼는 PEF
구조조정에 노동자 고용불안… 노사-노노갈등까지

[리포트]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이대로 괜찮은가

PEF, 그게 뭔데요?

A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벤처기업인 A기업은 동종업계와 구분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자금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때 ‘어? 내가 좀 손보면 덩치가 좀 커지겠는데?’라고 생각한 사모펀드가 A기업을 예의주시하다가 경영권을 인수한다. 이처럼 경영권을 인수한 후 일련의 조치를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림으로써 수익을 내거나 재매각을 통한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가 PEF다. PEF는 경영권 인수를 위해 고액 투자자들을 모아 구축된 펀드로 기업의 최대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을 발굴해 규모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PEF가 모험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PEF는 3억 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고액 투자자 LP(유한책임사원)와 투자자금 등을 전반적으로 운용하고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GP(업무집행사원)로 구성된다. GP의 대표적인 예로는 론스타, MBK파트너스, 칼라일 등이 있다. PEF가 기업 가치를 올려 수익이 나면 LP는 출자한 지분에 대한 배당을 받고, GP는 운용보수 및 성과보수를 얻는 식이다. 또한 PEF는 경영권 인수 후 평균 3~5년 동안 몸집을 불린 뒤 다시 기업을 매각하는 엑시트 전략으로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PEF의 문제는 푸아그라를 위해 강제로 거위에게 먹이를 주입하는 가바주(gavage) 방식과 유사하다. 건강한 기업에는 자산 규모 등 회계적 요인 외에도 상생하는 노사문화, 고용안정 등 요인이 포함되지만 대부분의 PEF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몸집 불리기에 나선다. 공시 및 보고 의무가 없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사회적 책임에서 멀어져 구조조정이 비교적 자유로우며, 수익의 우선순위를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금이 아닌 배당에 두면서 기업 내부의 전략적 투자활동 축소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무리한 몸집 불리기, 후폭풍은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사장님이 초심을 잃었다” “맘스터치 아니라 계모터치냐”

지난 6월이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충족해 10대와 20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외식 브랜드 맘스터치에 대해 누리꾼들은 곳곳에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건의 발단은 맘스터치를 운영하는 해마로푸드서비스가 사모펀드인 케이엘엔파트너스에 인수돼 경영진 교체가 진행되면서부터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햄버거업계에서 유일하게 적자를 면한 해마로푸드서비스는 갑작스러운 가격인상은 물론이고 메뉴 개편까지 진행했다.

한 유명 유튜버는 맘스터치에서 11월 중순 출시한 프리미엄 버거 세트에 대한 리뷰 영상을 통해, 기존 고객층을 늘리려는 회사의 의도가 충분히 어필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상에 댓글을 단 대다수 누리꾼들은 가격은 올랐지만 맛이 가격에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무리한 몸집 불리기의 후폭풍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11월 사모펀드로의 매각이 발표되면서 맘스터치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올해 1월 노동조합을 설립해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노사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2015년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도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안산점과 대전둔산점, 대전탄방점 매각을 연달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적인 사업 운영과 미래 사업을 위해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에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모두 매각해 주주 이윤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의 입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소형 매장을 중심으로 폐점하는 전략이 아닌 ‘알짜’ 매장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노조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LBO(차입매수·Leverage Buy Out)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차입매수로 불리는 LBO는 사모펀드가 인수하는 기업의 자산 및 수익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아 인수하는 방식이다. 홈플러스는 총 인수금 7조 2,000억 원 중 2조 2,000억 원을 부담하고 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5조 원을 조달받았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모펀드 LBO 전문가들은 거대한 수수료를 받아내면서도 거래위험의 대부분을 LP와 인수금융을 대출한 금융기관 등에 전가했다. 이는 납세자와 노동자의 희생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이어 “타인의 자본으로 자기자본의 이익률을 높이는 레버리지 차입으로 국가경제에 대한 잠재 위협, 적대적 인수 시도로 인한 기업의 사기 저하, 기업금융화의 불안정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MBK파트너스는 당시 홈플러스의 상위 기업인 홈플러스 스토어즈를 먼저 인수한 후, 여기에 증자를 하고 건전성을 확보했다. 그 후 인수된 홈플러스 스토어즈의 주식을 근거로 그 하위 기업인 홈플러스를 인수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일으켰다”며 “인수할 대상 회사의 실물 자산을 담보로 한 방법이 아니며, 국내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LBO와는 다르다”고 해명해 노조와는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최근 VI금융투자가 JT저축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JT저축은행노조도 비상이다. VI금융투자의 대주주가 홍콩계 사모펀드인 뱅커스트릿PE라는 점을 감안하면 JT저축은행은 사실상 사모펀드에 우회인수를 당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진한 사무금융노조 JT저축은행지회장은 “전략적 투자 기업 같은 경우 장기적 운영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지만, 사모펀드 같은 경우 3~5년 동안 최대한 이윤을 남겨서 매각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불안에 처할 수밖에 없고, 매각 이후에 또 고용안정을 촉구해야 하는 점에서 사모펀드 인수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무금융노조와 JT저축은행지회는 11월 4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사모펀드 인수에 대한 적격성 불허가를 촉구하고자 사모펀드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사무금융노조와 JT저축은행지회는 11월 4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사모펀드 인수에 대한 적격성 불허가를 촉구하고자 사모펀드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노노갈등 번지는 사업장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임 사태의 핵심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김모 전 수원여객 전무이사가 수원여객의 공금 240억 원대를 빼돌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540여 대의 버스를 보유한 수원여객은 수원지역 시장점유율 1위로 그야말로 알짜 회사다. 큰 분쟁 없이 차곡차곡 회사를 키워나가던 수원여객은 2018년 4월 처음 사모펀드가 들어오면서 환난을 겪게 됐다.

조백호 전 대표이사가 경영을 맡으면서 흑자 회사로 전환해 꾸준한 수익을 내던 수원여객은 사모펀드인 스트라이커캐피탈매니지먼트가 주주를 규합하면서 경영권을 내주게 된다. 이사회를 통해 조백호 전 대표이사와 그의 아들인 조한성 전 상무는 해임됐다.

회사의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주목할 점은 노노갈등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당시 노조위원장이 임기만료 전 갑작스럽게 위원장직을 내려오면서 노조는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임기만료 한 달 전 선거가 진행돼야 함에도 선거는 차일피일 연기됐고, 겨우 진행된 선거에서도 법률 분쟁을 거쳐 집행부가 교체됐으나 직무대행이 새로운 집행부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조합원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주승 수원여객노조 위원장은 “선거 당일 회사가 사내 투표소 설치를 막아 야외에서 투표해야만 했다. 임금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데, 회사는 현재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보류시켰다”며 “직무대행 체제였던 전 집행부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 노동조합의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수원여객 관계자는 “노조의 협조 없이는 회사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며 “사모펀드가 들어오면서 노노갈등이 심해진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 맞는 ‘금융’이 필요해

금융당국은 사모펀드에 대한 제도개선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험자본시장 활성화라는 순기능을 앞세웠다. 사모펀드가 인수해 기업 가치가 올라간 대표적인 사례는 오비맥주다. 처음 사모펀드가 인수한 2009년 당시 2조 원가량이던 오비맥주의 인수가격은 현재 9조 원을 호가하고 있다. 다수 언론은 이 사례를 들어 사모펀드가 ‘연금술’ 같은 기업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호평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기업 가치 상승에 대한 초점이 오직 기업의 인수가격 책정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앞서 가치 상승으로 주목받았던 오비맥주의 경우 이번 팬데믹 상황으로 경영악화가 겹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퇴직금 규모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배당금만 늘리는 기업의 조치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모험자본시장 활성화가 사모펀드의 순기능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이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 현실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외를 불문하고 그간 사모펀드들이 벌인 행태를 봤을 때 모험자본이 아닌 약탈적 투기꾼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와 금융권 일각에서는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위해서는 시장규율에 의존하기보다 금융당국의 직접적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모험자본시장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모펀드보다는 공모펀드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라임 사태도 시장규율이 작동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문제다. 금융시장의 관리와 감독의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음에도 책무를 시장에 넘기겠다는 건 잘못됐다”는 의견과 함께,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금융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토착화 과정이 필요한 법”이라고 말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했다가 하나은행에 재매각해 4조 원이 넘는 차익을 챙기며 한국사회를 뒤흔들어놨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거액의 소송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속되는 문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도 물론 필요하지만, 높게만 느껴지는 금융의 장벽을 시민사회의 참여로 허물 필요가 있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건강한 투자자를 육성하면 육성할수록 자본시장이 튼튼하고 건강해진다”고 밝혔다. 어릴 적부터 건강한 금융이란 무엇인지 교육하고 누구나 금융과 관련해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