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위탁, 생활폐기물 처리의 새 지평 열까?
공공위탁, 생활폐기물 처리의 새 지평 열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12.10 00:16
  • 수정 2020.12.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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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의 효율성’, 맹신하기 어렵다
공사 대행에서 공동설치로…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 1년 투쟁의 결실

리포트_생활폐기물 처리업무의 새로운 방향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대전광역시(시장 허태정)가 생활폐기물 처리 업무를 대전도시공사에만 위탁하는 것은 독점거래에 해당한다며 생활폐기물 처리를 위한 자격을 갖춘 모든 민간업체가 위탁자 선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대전시는 여러 민간업체에 생활폐기물 처리에 대한 인·허가권을 발급했다.

한국노총 연합노련 대전도시공사환경노동조합(위원장 강석화)은 대전시의 움직임을 ‘민영화를 위한 초석’이라고 규정했다. 1년여의 투쟁을 통해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는 대전시 생활폐기물 처리에 대한 민영화를 막았다. 대전광역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생활폐기물 처리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민간위탁은 어떻게
공공서비스를 잠식했나?

공공서비스의 전달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행정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과 행정기관의 권한을 다른 법인이나 단체 또는 개인에게 대신 행사하게 하는 ‘위탁’이 있다. 민간위탁은 행정기관의 사무를 민간의 법인·단체·개인에게 맡기면서 행정기관의 명의와 책임 아래 제공하도록 하는 것으로, 공공서비스 전달방식의 하나를 말한다.

경제학은 경쟁을 통한 비용 절감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경쟁이 불가능한 공공영역은 비효율적이고, 경쟁을 통해 비용을 깎을 수 있는 민간영역은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완전경쟁시장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시장구조라고 여긴다. 신자유주의의 확대는 공공서비스에 경제성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공공서비스를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했다. 우리나라 역시 신자유주의가 확산한 IMF 외환위기 이후 같은 이유로 민간위탁이 확산하게 됐다.

2018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무는 1만 개가 넘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적 및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이하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마련해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에서 “민간위탁은 공공서비스 제공의 효율성과 ‘작은 정부 추구’라는 행정조직 관리의 측면에서 추진됐다”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가 2018년 집계한 1만여 개의 민간위탁 사무 중 환경과 폐기물 사무는 1,000여 개 남짓이다. 전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로 보면, 85.5%가 민간위탁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이성기 조선대학교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열린 제61차 정책토론회에서 “생활폐기물의 수집·운반·처리 분야는 비교적 단순한 집행업무로,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민간에 의해 서비스를 공급할 경우 비용 절감의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운영 방식에 대해 연구한 국내 다수의 연구자는 민간위탁이 ▲예산 절감 ▲공공서비스 공급 및 행정업무 수행의 효율성 제고 ▲민간영역의 전문성 활용을 통한 공공서비스 질 향상 및 서비스 만족도 제고 ▲서비스 수요자의 선택 폭 넓히면서 정부 의존도 감소 등의 이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공공서비스의 운영 논리에 경제학의 관점이 침투한 것이다.

민간위탁의 효율성,
사실은 공중누각(空中樓閣)?

비용 절감이 꼭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강은숙 한국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교수는 “민간위탁이 오히려 효율성을 감소시킨다”며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민간위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강은숙 교수의 발언은 김성종 단국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의 연구에서 증명됐다. 김성종 교수가 서울시, 부산시, 대구시, 인천시, 광주시, 대전시, 울산시 등 7대 광역·특별시 69개 자치구의 생활폐기물 처리 업무의 효율성을 비교한 결과, 대전도시공사라는 지방공기업에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위탁한 대전시의 자치구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민간위탁한 다른 광역·특별시의 자치구보다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성영 성균관대학교 거버넌스연구센터 연구원은 “생활폐기물 처리비용 절감에 민간위탁 비율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정성영 연구원은 “민간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윤을 공공서비스 공급가격에 전가해 소비자의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며 “민간위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제 인원 감축은 단기간에 비용절감 효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의욕을 저하시키면서 전반적인 생산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율적인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히려 독점 계약으로 사회적 비용의 증가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실제로 강석화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 위원장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에 드는 예산은 대부분 노무비”라며 “대전시의 경우, 민간위탁 업체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예산 중 10%를 이윤으로 가져가지만, 대전도시공사는 이윤으로 6%를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한정된 예산에서 업체가 가져가는 이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해진다. 임금을 줄이거나 인력을 줄이기 때문이다. 적정하지 않은 임금과 인력으로 인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지연은 결국 다시 시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제동 걸린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공사 대행

대전시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는 대전도시공사가 담당한다. 대전도시공사는 지방공기업법과 대전도시공사 설치조례에 따라 설립된 대전시 지방공기업으로, 1993년부터 환경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대전도시공사는 대전시 전역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대전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2017년 6월, 한 민간업체가 대전시 유성구에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을 하겠다며 대전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두 차례의 보완 끝에 같은 해 8월, 대전시는 해당 업체의 사업계획을 반려했다. 해당 업체가 기존 대전도시공사 인력의 고용승계를 기본으로 한 인력확보 계획을 제출했는데 고용승계가 잘 안 될 경우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고, 민간위탁 업체에서 대전도시공사 인력을 고용승계할 경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국정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게 대전시의 입장이었다. 그 외에도 장비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대전도시공사로 일원화하면서 가능해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책임행정의 이행을 민간위탁으로 전환하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민간업체는 대전광역시의 폐기물처리사업계획 부적합 반려처분 취소를 법원에 청구했다. 2018년 5월, 대전지방법원은 “폐기물처리사업계획 부적합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미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 허가요건을 갖췄음에도 인력확보 계획을 흠잡는 것은 위법하며, 대전시의 폐기물처리사업계획 부적합 반려처분은 허가업체 수를 유지하거나 독점적 대행권을 유지하는 것이 돼 법령 목적에 위배되고 객관적인 합리성과 타당성을 잃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전시가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2019년 9월 대법원은 끝내 상고를 기각,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대전시는 청소행정을 대전도시공사가 아닌 5개 자치구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다. 또 6개 민간업체의 폐기물처리사업계획을 인·허가하기도 했다. 대전시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민간위탁의 형태로 운영할 움직임을 보이자,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는 2019년 11월 21일 대전시청 앞에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민간위탁을 반대하는 집회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민간위탁 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7월, 한국노총 연합노련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민간위탁을 저지하기 위한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노총 연합노련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
7월, 한국노총 연합노련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민간위탁을 저지하기 위한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노총 연합노련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

122일 천막농성 끝,
공동설치 통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키로

강석화 위원장은 11월 21일 대전시청 앞 집회를 시작으로 대전시청 항의방문 등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민간위탁 저지 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전국을 돌면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현황을 파악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가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대전시처럼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공사를 설립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대행하는 곳은 없었다.

강석화 위원장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자치구로 이관하면 시설공단 설립을 통해 공공위탁이 가능한데, 시설공단 설립을 위한 재정기준이 있다”며 “그러나 대전시의 5개 자치구 중 대덕구와 중구의 재정자립도가 낮아 시설공단을 만들 수 없어 민간위탁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방공기업법 제53조에 따르면 자본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현금 혹은 현물로 출자해야 하며 공사 운영에 필요한 경우에는 자본금의 50% 이내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어도 출자나 증자할 수 있다.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위탁해 효율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각 자치구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가 쪼개지면 공단을 통해 위탁한다고 해도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는 올해 7월 1일 대전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강석화 위원장은 “대전시가 손을 떼려 해 대전시 청소행정의 공공성과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천막농성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22일간의 천막농성 끝에 10월 29일, 대전시 5개 자치구청장은 “청소행정의 공공성 확보와 대전도시공사 환경미화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의 위탁회사를 설치·운영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대전시에 보냈다. 결국 10월 30일, 대전시는 “청소행정의 공공성 확보와 대전도시공사 환경미화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재정적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와 대전시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 위탁회사 설치를 준비 중이다.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와 대전시의 새로운 도전은 공공위탁의 범주에 포함된다. 권오철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2015년 논문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위탁 운영실태 및 발전방안>에 따르면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와 대전시가 준비 중인 공동 위탁회사는 ‘공동설치’에 해당한다. 이는 일본에서 행정효율화를 위한 노력으로 주로 사용된다.

권오철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내 지방자치법에 공공위탁은 사무위탁이라는 하나의 유형만 제시돼 있는데, ‘공동설치’의 법적 근거 역시 지방자치법에 마련해야 한다”며 “공공위탁은 민간위탁이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활용 가능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생활폐기물 처리 방식을 준비 중인 강석화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데 왜 1년이나 걸렸는지 속상하기도 하지만, 150만 명의 대전시민이 깨끗한 대전시를 누릴 수 있도록 공공성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을 위한 공동 위탁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대전도시공사환경노조와 대전시의 새로운 도전이 대한민국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