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유쾌한 카리스마가 조직을 움직인다
부드럽고 유쾌한 카리스마가 조직을 움직인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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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문화, 과학, 무왕의 러브스토리 다룬 드라마 제작

책임질 줄 아는 준비된 전문가가 진정한 현장의 '리더'다

설경구, 강우석, 이병훈이 최고

 

영화 전문지 ‘스크린’이 선정한 배우, 영화감독, 드라마 연출가 부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단순한 인기 투표 방식이 아니라 흥행 성적, 수상 실적, 시청률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점수화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최고의 배우로는 <공공의 적> <실미도> <박하사탕> 등에서 활약한 설경구가 꼽혔다. 그 뒤를 이어 장동건, 송강호, 이병헌, 원빈의 순이었다. 이영애, 최민식, 배용준, 권상우, 전지현 등도 순위에 포함됐다.


감독은 <공공의 적> <실미도>의 강우석이 첫 손에 꼽혔다. 뒤를 이어 <올드보이> <공동경비구역JSA>의 박찬욱,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의 강제규, <박하사탕>   <오아시스>의 이창동, <빈집> <나쁜남자>의 김기덕이 올랐다.


드라마 연출가로는 이병훈이 최고로 꼽혔으며, <이브의 모든 것>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이진석, <폭풍의 계절> <황태자의 첫사랑>의 이관희, <별을 쏘다> <천국의 계단>의 이장수, <불꽃> <부모님전상서>의 정을영 등이 포함됐다.

 


 

이병훈(60) 감독은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드라마 연출가다.

지난 3월 한 영화 전문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 감독, 드라마 연출가를 선정했을 때도 역시 첫 손에 꼽혔다. 그는 이정길 주연의 <암행어사>부터 시작해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허준> <상도>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역사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정년 퇴임 후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으로 ‘재미’와 ‘메시지’를 함께 주는 드라마로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이병훈 감독은 여전히 ‘청년’이다.

 

#1 서동과 선화의 사랑 얘기에 ‘필’이 꽂히다
9월에 시작하는 54부작 SBS 월화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현재 캐스팅이 진행 중인데 <서동요>라는 작품이다. 1400년 전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러브 스토리’다. 권력중심보다는 선화공주를 사랑한 이야기, 둘의 러브스토리, 천민에서 임금이 되기까지의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무왕은 아주 특별한 임금이었다.


조선시대 중인 이하 계급의 과학자, 의학자를 계속 다루다 보니까 비슷해지더라. 임상옥이나 허준이나 장금 같은 비슷한 역경을 헤쳐 나오면서도 차별화된 인물을 찾다보니까 시대를 삼국시대로 옮겨봤다.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2 사라진 백제 역사의 ‘뒤’를 캐다
백제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다루고 싶다. 고구려 문화는 북한에서 많이 복원도 했지만 가볼 수가 없고, 우리는 신라 중심으로 되어 왔다. 신라가 통일을 했기 때문에 신라 중심의 역사로 편중되어 기록되어왔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도 신라 중심이다. 이제는 고구려와 백제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1400년 전에 제도가 가장 완벽했고 여러 관제, 문화, 과학이 가장 뛰어난 게 백제였다.


그간 TV에서는 고려 개국을 다룬 <태조 왕건>, 김유신, 연개소문, 계백, 의자왕 중심으로 삼국 말기 정치 상황을 다룬 <삼국기>가 있었다. 그러나 백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위덕왕 38년부터 무왕 10년까지 백제의 격동기, 백제가 가장 힘이 약했다가 삼국 중 가장 센 나라가 된 시기를 다룰 예정이다.


기록이 많지 않아서 삼국유사를 원전으로 해서 ‘살아있는 백제사’ ‘백제사연구’ ‘조선상고사’ 등 30여 권의 책을 참고로 자료를 수집 중이다. 여기다 픽션을 붙이는 식이 될 것이다. 대본은 <대장금>을 썼던 김영현씨가 맡는다.

 

#3 너희가 백제를 아느냐!
일본 기록에 고구려나 신라는 별로 비중 있게 나오지 않는다. 고구려 담징이 벽화 그린 얘기, 신라 연오랑 세오녀 얘기 빼면 전부 백제에 대한 기록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신라와 훨씬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당시 가장 뛰어난 제도와 문화를 가진 것이 백제였다는 얘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국토를 회복하지 못했던 고구려 쪽은 그나마 유적이나 기록이 남아 있는데 백제는 철저히 파괴당했다.


감춰진 백제의 문화와 과학에 대해서 드라마화하고 싶다. 드라마를 통해서 백제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드라마를 통해서 일부분이나마 복원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백제 이후 과학문화를 천시했다. 세종이라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세종 때 만들어진 물시계 자격루가 200년이 지난 정조 때 고장났는데 끝내 고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전해진다. 그런데 1400년 전 백제에는 오경박사, 기술박사라는 제도가 있었다. 기술박사가 일반‘박사’와 똑같은 권한과 지위를 누렸다.

 

#4 역사드라마도 ‘때깔’이 나야 한다
특별히 역사드라마를 선호한다기보다는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처음 조연출도 사극이었고, <역사인물>이라는 반은 토론, 반은 드라마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맡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암행어사>도 2년간 했다. 결정적인 건 83년부터 90년까지 한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였다. 총 11편의 시리즈 중 <설중매>, <임진왜란>, <장희빈> 등 9편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저절로 전문가처럼 되어버렸다.

 

연출 생활의 60~70%를 사극을 했다. 역사드라마를 하더라도 시청자가 현대인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극 속 인물들을 오늘날에 봤을 때도 매력있게 그려야 하고, 현대적 시각에서 재미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사극은 대개 40~50대 이상의 나이든 계층이 선호했는데 <허준>하면서 10~20대도 좋아하는 사극을 하자고 생각을 많이 했다. 스토리, 화면, 음악, 속도감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치를 많이 했다.


<대장금> 때는 옷 색깔을 바꿨다. 전통적인 궁중 나인의 옷은 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인데, 나는 이 색깔을 버리고 싶었다. 어릴 때는 기존의 색상을 쓰고, 성인 시절에는 이영애에게 가장 맞는 색깔을 맞추고 싶었다. 50가지를 테스트해서 녹색 저고리를 선택했다. 조선시대의 염색이라는 게 식물성 염료이고 녹색이 가장 흔한 식물 염료니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고증에 분홍색이 맞다 하더라도 현대적인 드라마의 시각에 따라 그 때 없는 색깔을 쓸 수도 있다.


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허준>은 전통의학과 신분 문제, <상도>는 조선 중기의 실물 경제, <대장금>은 궁중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의녀 제도를 다뤘다. <상도> 때는 스텝, 연기자 전원이 4시간씩 세 차례 18세기 조선 경제에 대한 특강을 실시했다.

 

#5 ‘웃으면서’ ‘손해보고’ 현장을 지휘한다
연출자는 예술가로서의 임무와 함께 리더로서의 역할이 있다. 예술가의 임무는 드라마가 창작 작품이기 때문에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부문, 훌륭한 감동을 주는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적게는 100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스텝, 연기자를 거느리기 때문에 리더여야 한다.


첫 번째 목표는 즐겁게 일하자는 것이다. 이 일 자체가 굉장히 악조건이다. 우리나라 같이 드라마 많이 만들고 좋아하는 민족이 없다. 아주 특별하다. 일주일에 70분물 두 편씩의 드라마가 나가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작품 하나 시작하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8개월씩 일한다. 이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모든 연기자 스텝들한테 즐겁게 일하자, 웃으면서 일하자고 한다. <허준> 할 때 남들에게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만들면 벌금을 내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제일 많이 걸리더라. (웃음)

 

리더는 화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잘 풀어야 한다. 그래서 유머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휘자는 늘 손해를 봐야 한다. 처음에는 손해인 거 같은데 더 큰 이익이 본인에게 돌아온다. 사람들 모이면 밥도 내가 사고, 소도구 책상도 같이 나른다. 촬영 끝나면 조명 하나라도 들고 가는데 스탭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먼저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게 된다.

 

#6 모든 분야를 공부하되 전문가 의견에 귀기울인다
리더는 각 부문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카메라, 미술, 디자인까지 다 공부해야 한다. 연출자가 스탭보다 더 많이 알 필요는 없지만 스탭과 얘기하고 지휘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리드할 수 있고, 자기 색깔과 자기 컨셉에 맞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파트의 전문가의 의견은 100% 다 들어야 한다. 결정은 연출자가 하지만 들어서 타당성이 있고 옳으면 바꾸면 된다. 연출자가 영상에 대해서는 100% 모른다. 카메라맨이 더 많이 안다. 더 나은 제안을 하면 따르는 것이다. 그건 모른다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

 

#7 인사 관리와 성과 관리에 답이 있다
MBC에서 TV국장을 할 때는 현장에서와는 또다른 관리가 필요하더라. 연출자는 또 하나의 조직의 리더다. 믿고 위임해야 한다. 결과로 말하면 된다. 지시하면 창의력이 죽는다. 원래 직업 자체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부분의 능력을 계발하고 있는데 이걸 틀 속에 가두려고 하면 안 된다.


꼭 시켜야겠다면 설득을 해야 한다. 강제로 맡기면 절대로 성공 못한다. 추리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한테 홈드라마를 맡기면 제대로 되겠나. 현대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적성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시켜야 한다. 하기 싫은 것도 해 보면 괜찮다는 것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조직에 있다면 시켜야 될 경우도 있다.
조직의 리더는 끊임없이 두 가지를 관리한다. 하나는 인사 관리, 또 하나는 작품 관리(성과 관리)다.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는데 내용의 방향을 잡는 것은 작품관리다. 주로 설득을 하지만 때로는 명령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 정부에서 간섭이 많았다. 부장 때 <전원일기>에서 양파 파동을 다룬 적이 있다. 농민들이 데모하고 버리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다루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다루면 외부기관과 ‘위’에서 난리다. 다 만들었는데 고쳐야 한다. 그 때 고치라고 했는데, 말하는 나도 설득력이 없는데, 듣는 사람은 어떻게 설득력이 있겠느냐. 하지만 조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설득해야 했다.


그 외 설득은 인사적인 관리다. 미니시리즈 파트에서 연출을 안 하는 사무직인 기획 파트로 보내면 싫어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기획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설득해야 한다. 이건 인사관리의 문제다. 편성, 심의 같은 부서에 드라마 전문가가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가야 한다.


그 관리가 개인의 취향과 재능과 자질 이런 거를 감안해서 업무 배정을 해야 하고, 그 업무를 잘 이끌어 나가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명령도 해야 하는 위치다.


하기 싫은 걸 맡기면 ‘개판’을 만들어 온다. 자기가 최선을 다해도 스스로 좋아해서 만드는 것에 못 미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마인드를 바꿔줘야 한다. 그게 어렵다.

 

#8 리더는 책임지는 자리다
리더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가 한 행동, 자기가 한 말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겠다고 한 것은 미루면 안 된다. 연출자들 사이에서도 작품이 실패하면 ‘작가가 이번에 개판으로 써 가지고’ ‘연기자가 엉망으로 연기하는 바람에 작품 망쳤어’ 하는데, 그건 책임회피다.

 

그 작품에 동원된 수많은 연기자, 스탭을 전부 지휘해서 베스트를 다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연출자의 책임이니까, 연기 잘 못해도, 화면이 예쁘지 않아도, 의상이 잘못돼도 다 연출자 책임이다. 연기자가 어설프게 연기하는 것은 제품의 하자를 그냥 둔 채 물건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책임한 데서 오는 요소를 줄여야 한다. 꼭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많이 가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지려면 꼭 지휘자가 책임져야 한다.

 

#9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다
청소년들한테 사랑받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사극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드라마도 그렇지만 사극은 교육적인 측면이 아주 강하다. 드라마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는데 사극은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된다. 교육적인 측면이라는 알파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드라마가 너무 많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거 못 줄인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니까, 시청률의 견인차니까 줄일 수가 없다. 치열한 경쟁 덕분에 한류라는 부산물을 낳아서 엄청난 국가적 이익을 얻었다.


재벌 2세,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시한부 인생, 기억상실증 같은 한류 트렌드를 쫓는 드라마를 너무 남발하고 있다. 그래 가지고는 드라마의 수명이 짧아진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는 너무 비슷비슷하다는 비판 나오고 있는데, 식상해질 수 있다. 한류가 갖고 있는 엄청난 영향력, 국가적 재산을 유행을 쫓는 구태의연한 행태 때문에 일찍 식상하게 하지 말자.  

         

이병훈 PD가 사랑하는 캐릭터, 그리고 최고의 프로는?
노력과 연구에서 나오는 해학, 임현식이 진짜 프로


사실은 주인공들이 다 정이 간다. 허준, 상도, 대장금은 모두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다. 홈드라마처럼 여러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70% 이상을 끌고 가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고생도 주인공이 가장 많이 하고, 캐릭터도 주인공을 가장 많이 연구했다.


허준 하면 허준(전광렬), 예진아씨(황수정)를 빼놓을 수 없지만, 임오근(임현식)은 재미있고 매력있는 인물이다. 상도하면 당연히 임상옥(이재룡)과 다녕(김현주)이 가장 애정이 많이 가지만, 끝 부분에 나왔던 홍경래(박찬환) 같은 인물, 임상옥의 맞수 정치수(정보석) 그런 인물이 매력적이다. 대장금 같으면 장금(이영애), 민정호(지진희)지만 한상궁(양미경), 최상궁(견미리)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최고의 프로라면 역시 임현식씨를 꼽고 싶다. 임현식씨가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개그와 해학은 즉흥적인 것도 있지만 80%는 계산된 거다. 임현식씨 대본을 보면 어떻게 연기할지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연출자 노트같다. 자기가 이렇게 설정하면 어떨까 하는 걸 모두 계산한다. NG가 나면 같은 형태의 연기를 하는 법이 없다. 굉장히 노력하고 엄청나게 연구하는 배우가 임현식씨다. 임현식씨가 사랑받는 이유는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