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노동자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고용불안 노동자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12.15 17:59
  • 수정 2020.12.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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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방향 정책토론회
종속성이 가치불변의 진리 될 수 없어… 포지티브 방식의 기간제 사용제한 사유 입법해야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은 2006년 제정돼 2007년 7월 시행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고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비정규직법이 제정됐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최근에는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른 새로운 범주의 노동자 역시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범주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의 개정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대회의실에서는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부 방역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지침을 지키기 위해 이날 토론회 현장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모였다. 대신 토론회는 한국노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토론회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뤘다. 먼저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기준에 대해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발제했고, 박은정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비정규직법 개정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비전형 노동자의 노동자성 결정하는 종속성, 하늘이 내려준 천리 아니다

권오성 교수는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비전형 노동의 확산은 노동계급을 전통적인 노동자와 양면적 근로계약 당사자로 파편화했다”며 “노동자성을 결정하는 종속성은 다시 경제적 종속성과 인적 종속성으로 구분되고 인적 종속성은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를 노동법으로부터 배제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성을 결정하는 종속성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초기에는 경제적 종속성을 의미했는데 점차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인적 종속성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권오성 교수는 “현재 판례에 따르면 노동자성의 판단기준은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이 핵심”이라며 “이러한 판단기준은 ‘사용자에게 노무지시권이 있는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노동자성은 법원의 규범적 판단 혹은 평가의 결과지, 당사자가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권오성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의 다이나멕스(Dynamex) 판결을 소개하며 “노동자성의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나멕스 판결이란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ABC 테스트를 통해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배달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을 말한다. 미국의 물류배송업체인 다이나멕스는 2004년 이후 배달기사를 독립계약자로 계약했는데, 2004년 이전부터 다이나멕스의 노동자로 일하는 배달기사와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배달기사 간의 상이한 처우 때문에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배달기사의 노동자성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다이나멕스 판결에서 노동자성 입증을 위해 활용한 ABC 테스트는 모든 노무제공자를 노동자로 추정한 다음, ‘A 노동자는 업무 수행과 관련해 계약상이나 실제로 기업의 통제와 지시를 받지 않는다’, ‘B 노동자는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외의 업무를 수행한다’, ‘C 노동자는 관례적으로 기업과 독립적으로 설립된 직종,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때만 진정한 독립계약자로 보는 방식이다.

다이나멕스 판결의 의미에 대해 권오성 교수는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노동자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ABC 테스트는 이러한 가정을 전복하는 것”이라며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의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게 지금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권오성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용자는 노동자의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의 결과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정하는 방식으로 노동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었다”며 “전통적인 인적 종속성의 기준에서 볼 때 노동자로 보기 어려운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고 인적 종속성을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한다면, ‘표준적 고용관계’를 획득한 일부 신분을 보호하는 신분법으로 노동법이 격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법이 비정규직과 ‘신분상으로 구별되는’ 정규직만을 보호하는 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비정규직법,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함께 차별시정제도 개선으로 접근해야

박은정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비정규직법 중 기간제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시정과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정 교수는 “사용사유 제한을 위한 입법은 네가티브 방식이 아닌, 포지티브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입법에서 네가티브 방식은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적인 금지대상 업무를 규정하는 방식’을 의미하고 포지티브 방식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인 허용대상 업무를 규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박은정 교수는 기간제 근로계약에 대해 “일자리나 업무가 상시·계속적이지 않은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다양한 사유로 한 사람에 대한 기간제 근로계약을 반복하면서 기간제 노동자로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제한 역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은정 교수는 “기간제법에서 명시하는 차별적 처우는 임금 등 보수를 결정하는 여러 조건 외에 근로계약상의 모든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여러 근로조건 중 특히 임금에 대한 차별 문제를 엄격하게 판단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두 의미는 사뭇 다르고 기간제법의 차별적 처우 금지 규정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실현되고 있다고 보기도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은정 교수의 지적에 대해 지정토론자로 참여한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있지만, 비정규직이 직접 차별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활발하게 활용되지 않는다”며 “고용노동부의 적극 행정을 통해 고용차별에 대한 감독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정부, 플랫폼노동자 보호 대책 곧 발표한다는데… 노사정의 여전한 의견차

이날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강검윤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 과장은 “고용노동부는 플랫폼노동자 등 미래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별도의 부서를 만들 계획”이라며 “조만간 플랫폼노동자 보호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검윤 과장은 “곧 발표할 보호 대책은 단편적인 고민이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고민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다만,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근로자 보호의 측면에서 약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오히려 대기업 중심의 조항으로 영세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어려워 노동격차가 벌어진다고 생각한다”며 “공장시대에 맞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다양한 고용형태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약서 작성이나 부당한 요구 등을 근절할 수 있는 조항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검윤 과장의 발언에 대해 권오성 교수는 “일단 모든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규정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조정하는 방식이 아니면, 비전형 노동자는 평생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를 제시했는데, 고용노동부는 시도도 해보기 전에 실효성 없는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갈음하려고 한다”며 “다양한 고용형태에 따른 노조할 권리 보장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를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홍중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 팀장은 “특수형태종사자나 플랫폼종사자는 개인사업자로 노무제공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사용자의 인사권과 취업규칙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규율 방안이나 보호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 해결을 위해 규제 강화에만 집중한다면, 양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감소하고 중소·영세사업장의 부담 가중으로 인한 기존 일자리 유지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에서 정규직 직접고용만이 최선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맞섰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한국노총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의원(비),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