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다시 생각해보는 노동존중사회
[취재후기] 다시 생각해보는 노동존중사회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12.18 17:07
  • 수정 2020.12.18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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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 노동존중사회. 최근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현장에 취재를 가도 종종 듣는 구호다. 10여 년 전 노동계에서 던진 화두를 문재인 정부가 공약에 담으면서 최근 다시 부상했다. 그런데 노동존중사회란 무엇인지, 노동을 존중해야 하는 건 누구고 존중받는 건 누구인지 모호하다. 현재 사회적으로 불거진 노동존중은 대체로 권리 측면에 맞춰져 있으나, 권리를 보장한다고 노동자가 존중을 느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일터에서 당신이 바라는 존중을 알려달라고. 취재를 마친 4명의 기자가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며 느꼈던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전한다.
(이하 백승윤 기자=, 이동희 기자=, 임동우 기자=, 손광모 기자=)

이 이번 커버스토리는 노동존중이 단순히 노동계 구호나 요구사항을 지켜주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는 계기였다. 노동존중사회가 문재인 정부 정책 슬로건으로 쓰이면서 국민 귀에 익을 정도로 알려진 단어인데, 그걸 다시 짚어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노동존중사회가 정책 슬로건으로서는 매력적인데, 취재할수록 실체가 없는 말이라는 걸 느꼈다. 노동을 존중하는 게 뭔지, 그런 사회가 어떤 건지 아직도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정치계, 노동계의 목소리만 다루다 보니까 논의되지 않았던 지점이 많은 것 같다. 

 노동존중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얘기하는 노동존중이 말뿐인 존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실제 느끼는 문제점과 요구사항을 기사에 담았는데, 정치권과 행정기관, 노동계에 전달되길 기대한다.

현장에서 말하는 노동존중

 취재하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나? 우리도 노동자인데.

 취재원 중 방송스태프인 서혜림 씨가 한 말에 공감한다. 노동 때문에 일상이 무너질 때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 

 동의한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너무 일만 하느라 일상에 변화가 생기면 지치게 된다.

 현장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노동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말’에서 발생했다. 일상에서 진짜로 느끼는 고통은 그런 것들이다. 야근에 지치기도 하지만, 없는 힘을 내면서 일하고 있는데 ‘왜 이거 못해, 저거 못해’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쭉 빠진다. 

 스스로 내 쓸모를 못 느끼고, 이 직군에 종사한다는 것에 대한 보람을 찾지 못할 때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취재원들의 얘기에도 전반적으로 그런 인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처우, 위험, 다른 노동자의 괴롭힘, 사회적 인식 등 노동자가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문제가 얽혀있다. 애초에 취재원도 구조적 문제와 인식의 문제를 구분해서 섭외했지만, 대부분 취재원이 복합적으로 원인을 지적했고, 특히 인식의 문제를 공통으로 언급했다.

 인식의 문제도 있지만, 제도적인 문제에서부터 명확한 해결책을 보이지 못하는 국가도 문제다.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직군마다 고통을 겪는 노동자가 있다. 거기에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더해지니 노동자가 존중을 느끼기 힘들 수밖에.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인간의 생명보다는 제도적 편익과 효율성에 맞춰 공법을 도입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바꿀 수 있을 거로 보는데 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저는 노동인권교육에 대해서 취재했다. 꼭 필요한 교육임에도 잘 시행되고 있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인권교육을 국정과제로 정했고, 그에 따라서 각 조례도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학교 현장까지 이어졌는가는 굉장히 별개의 문제였다. 아직은 소수의 목적의식을 가진 선생님들이 주도하는 식이다. 사회적 요구도 크지 않고. 주목할 만한 노동인권교육 콘텐츠가 생긴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결국, 국가와 사용자뿐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 모두가 노동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동존중사회가 실현되려면 노동자 스스로도 자기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 근데 열악한 노동기준 속에 있는, 사회적으로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노동을 존중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외부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계속 무시하고 천시하는데, 어떻게 나부터 존중할 수 있겠나.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일단 당신의 노동부터 존중하라’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고 폭력적일 수 있다. ‘내 노동을 존중하자’는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가 던져야 할 메시지이지만, 그 간극을 좁히기는 어려웠다.

 적지 않은 취재원에게서 타인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영향받는다는 걸 확인했다. 

노동존중사회, 아직은 너무 높은 허들

 취재가 끝난 시점에서 노동존중사회가 뭐라고 생각하나?

 ‘파워업 스토어’를 기획한 성지훈 민주노총 선전홍보부장이 한 얘기와 비슷하다. ‘직업별 차이는 인정하되, 누구의 노동이든 그 가치는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노동존중사회라고 생각한다. 직업별 특성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인정하되, 모든 노동의 가치는 인정하자.

 좋은 말이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노동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 노동을 하고 싶은 사회라면 노동존중사회라고 생각한다.

 저도 동우 기자 말에 동감한다. 근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의문이 자꾸 든다. 어떻게 하면 서로 노동을 존중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나름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권익향상이 노동존중 전부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정의(定義)가 실현되려면, 그 전에 많은 게 바뀌어야 할 거다. 상대의 노동을 인정한다는 게 우리 사회에선 아직은 요원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갈등은 여전하다. 노동존중사회는 굉장히 높은 허들이다. 막상 이해관계와 이익관계 앞에서는 충돌이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이번 취재로 사회적 인식과 직업의 귀천에 대한 개선에는 노동계가 소홀했다는 생각이 커졌다. 제도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너무 한쪽에 쏠려있던 것 같다.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금처럼만 사용하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는 용어가 될 것이다.

 정치권과 행정 기관도 문제지만, 노동계와 현장의 괴리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안아야 한다. 그렇게 제도와 구조적 뒷받침, 그리고 남의 노동과 나의 노동을 존중하는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