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맞아 기억된 봉제인의 ‘실밥’
전태일 50주기 맞아 기억된 봉제인의 ‘실밥’
  • 강한님 기자, 강민석 기자
  • 승인 2020.12.22 18:18
  • 수정 2020.12.22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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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 연표·봉제노동자 작품 등 전시
강명자 미싱사의 ’봉제인의 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군대에 가면 ‘짬밥’이라는 것이 문뜩 떠오르잖아요. 근데 금형공장을 갔더니 기름밥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럼 우리는 실밥을 옷에 너덜너덜 붙이고, 어떤 날은 퇴근 후 버스 안에서도 내 바지에 실밥이 붙어있고. 봉제는 밥이 뭘까 했을 때, 실밥이더라고요. 우리가 노동하는 손 위에 실밥을 얹어서 표현해봤어요.”
강명자 미싱사의 ’봉제인의 밥’

강명자 미싱사가 전태일 50년의 불꽃을 기억하는 특별전시 ‘실밥’에 작품을 내놓으며 한 말이다. 강명자 미싱사는 봉제일을 하다 나온 실밥들을 모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열여섯 살 때 봉제 일을 시작하고 ‘실밥’을 먹으며 일한 지 43년이 흘렀다.

‘실밥’ 전시회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기획됐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단 등이 마음을 모았다. 전시회는 12월 22월에서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실밥’ 전시회가 시작되는 22일, 류가헌 갤러리를 찾았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류가헌갤러리 1관에서 열린 ‘전태일 50년의 불꽃을 기억하는 실밥’ 특별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비정규직 투쟁사 전시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1관에서는 ‘전태일이 여기 있다’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투쟁사를 기록한다. 비정규직 제도가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난 후 20년간의 투쟁사를 연표와 사진으로 담았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가 주요의제가 되기까지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라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는 ‘찔끔’ 이기고 셀 수 없이 진다.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되기도 했지만, 회사가 사라지기도 하고,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회사의 지속적 탄압으로 노동조합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연표를 작성하다 보니 이 무수한 패배가 승리로 가는 소중한 디딤돌이었다 생각하게 됐다”면서 “전태일 50년을 맞는 2020년, 코로나19 재난상황은 우리 시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가혹한 노동과 때로는 죽음과 마주하며 싸우는 우리시대의 전태일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시를 관람한 한 관람객도 “비정규직 투쟁연표를 보니 우리가 알만한 기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류가헌갤러리 1관에서 열린 ‘전태일 50년의 불꽃을 기억하는 실밥’ 특별전시에 ‘전태일이 여기 있다’ 비정규직 투쟁사 전시작품이 설치돼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2관에서는 ‘미싱으로 밥을 짓다’라는 주제로 미싱사 14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은 금천구 독산동 일대에 모여 있는 소규모 봉제공장에서 노동하는 미싱사들이다. 구로공단에 위치해 있던 봉제공장들이 독산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봉제노동자들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전시회에서는 독산동에서 30년 동안 봉제노동을 한 미싱사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옷으로 나타냈다. 그 중 몇 작품을 소개한다.

복윤옥 미싱사의 ’봉제의 외길 42년을 되돌아 보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금천구가 전보다 많이 발전을 했더라고요. 빌딩들도 많이 올라갔고요. 반면에 우리 같은 노동하는 사람들은 매일 그 자리 있는 거 같아요.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그 사회를 따라가기가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윤옥 미싱사의 ’봉제의 외길 42년을 되돌아 보다’

정의금 미싱사의 ’나의 노동의 값’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제가 부속 공장을 하다 보니까 부속으로 옷을 만들어 봤거든요. 옷을 보니까 라벨에 따라 가격이 너무 많이 차이가 나더라고요. 나의 노동의 값은 얼마일까 생각하며 표현해 봤어요. 제가 외주를 받다 보니까 단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서, 시간당 수당이 너무 낮아요. 인건비가 높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표현했어요.”
정의금 미싱사의 ’나의 노동의 값’

표영숙 미싱사의 ’젊은 시절 지나고 지금 나는’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저는 아파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오랜 시간 노동의 결과로 어깨를 수술했고, 아직 손목도 치료받고 있어요. 아픈 부위들, 허리, 어깨, 손목의 통증을 표현하고 이 부위에 약을 붙여봤어요.”
표영숙 미싱사의 ’젊은 시절 지나고 지금 나는’

이순희 미싱사의 ’다람쥐 쳇바퀴 인생’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제가 이걸 하면서 제 살아온 인생을 가만히 생각하니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살아온 것 같더라고요. 봉제 공장에서 남은 여러 부자재들을 활용해서 다람쥐를 표현했어요.”
이순희 미싱사의 ’다람쥐 쳇바퀴 인생’

오는 12월 26일 오후 2시에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