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대한민국, 우리 사회!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발행인 칼럼] 대한민국, 우리 사회!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 박송호 발행인
  • 승인 2021.01.05 00:00
  • 수정 2021.01.04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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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

난리다. 혼란스럽다. 어떤 모습은 답답함 그대로이고, 또 어떤 것은 따라쟁이이고, 또 다른 어떤 모습은 명쾌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참신함, 신선함, 미래는 이럴까 하는 기대감이 들게 하기도 한다.

2020년

우리 사회는 법과 사회, 의사와 사회, 정치와 사회가 자신만의 원칙의 세계에 맞춰 분리되면서, 상호 소통하고 의존하고 견제하는 유기적 사회가 아니라 한 분야가 우위에 서는 선민의식과 그것을 부정하는 충돌의 시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지속해서 발전하고 살만한 성과를 나누었다면 덜했을 것이다. 사회의 격차와 상실감, 좌절은 커지는데 나와 다른 누군가의 성취물은 나날이 커지고 권력화되는 것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미래의 불확실성 증대가 있다. 미래가 불확실해도 참여와 현장에 기반한 창의성과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면 불안감, 두려움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발전방식은 선진모델을 어떻게 따라잡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 방식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나 명확하게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모델이 있었고, 문제는 어떻게 하면 더 빨리할 수 있는가 하는 속도뿐이었으며, 절박함의 공유가 가능했기 때문에 추격형 발전방식이 가능했을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결과를 낳아도 우리 사회는 비슷한 것을 같다고 여기며 무시해오기도 했다.

저성장, 저출산, 빈부격차, 세계화 등 공유해야 할 비전이 달라졌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감해야 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시민 간, 이해당사자 간 소통방식은 여전히 따라오라는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국가와 국민, 법과 원칙, 소통, 위기라는 말은 이끄는 사람들의 전용어가 되어 있다. 뭔가 다른데 차이를 모르겠다. 그래서 누가 말했는가가 중요해진다. 우리 편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

2021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똑똑한 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말이다. 좋은 스펙의 엔지니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경험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익힌 것을 무시하고 엔지니어가 일을 잘하게 되는 법은 없다. 현장의 언어와 방식을 이해하고 이론이 결합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전문가와 현장이 소통하지 않으면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고 이것을 먹고 자라는 포퓰리즘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누군가의 무기가 된다. 사실을 외면한 채, 정파적 이해관계로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고, 현실과 무관한 상상 속의 대안을 제시하며 도달하면 될 거라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사적 현장에 나도 있었다는 위로와 추억만을 남긴 채 다시 대중은 자신만의 몫으로 상실감을 감당해야 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할 때 가장 창의적이고 책임감이 있다고 한다. 수많은 경연대회와 아류가 난무하는 상황에도 심판이 아닌 ‘무대’를 만들어주며 함께 소통하는 ‘싱어게인’은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아직 낯설어 탈락후보가 됐지만 새로운 시도에 열광하게 만든 30호 가수가 있다. 결국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또 우리사회는 그것을 알아볼 만큼 성숙해 있다.

내가 나의 일을, 나답게 할 때, 자신과 세상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사회는 시민이 온전히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 일하는 당사자가 주인이고 나머지는 그 덕으로 먹고사는 조력자일 뿐이다. 사회의 리더가 대중과 사회를 외면하고 자신의 잇속에 민감할 때 권위는 사라지고 불신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민주화된 사회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