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제고는 있는데, ‘노동가치 제고’는 왜 없나요?
주주가치 제고는 있는데, ‘노동가치 제고’는 왜 없나요?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1.07 00:00
  • 수정 2021.01.06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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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하는 변호사, 상호존중과 연대 그리고 행동을 말하다
[인터뷰] 임삼섭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예금보험공사지부장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는 각종 위기에 봉착한 금융회사들이 예금자의 예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고자 1996년 1월 설립됐다.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보장하는 예금자보호법을 집행하는 곳도 이곳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노사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호존중의 자세로 위기를 이겨낸 이력이 있다. 상생과 협력의 중심에 있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예금보험공사지부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있다. 법대를 나와 예금보험공사에 입사한 이후 사법고시에 재도전한 임삼섭 지부장이다.

임삼섭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예금보험공사지부장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임삼섭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예금보험공사지부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영하의 날씨에 외투를 단단히 여몄던 날이다.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예금보험공사 건물에서 임삼섭 지부장을 만난 건 지난달 9일이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것은 2020년 노사문화대상에서 고용노동부장관상을 수상한 예금보험공사 노사를 눈여겨보다가 발견한 임삼섭 지부장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리더일 뿐만 아니라, 201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이기도 하다.

3년 휴직 결심과 로스쿨 입학

중·고등학교 때부터 뜻이 있어 법대 진학을 결심했던 그는 2001년 예금보험공사에 입사했다. 예금보험공사에 들어가게 된 건 그가 대학 입학 후 가졌던 다짐 때문이었다. 그는 20대까지만 사법고시 준비에 매진하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사법시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1차 시험에 빨리 합격했던 그였지만 지난한 준비 과정에 지치기 일쑤였고, 어느덧 다가온 20대 끝자락에 배운 걸 살려 일하고자 예금보험공사에 지원해 부실채무기업 특별조사단에서 일하게 됐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 이외에도 은행에 돈을 갚지 못하거나 횡령이나 배임 등 문제가 있는 기업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 역할의 핵심부서가 바로, 현재는 금융부실채무본부로 이름이 바뀐 부실채무기업 특별조사단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 이후 특별조사단은 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다.

임삼섭 지부장이 로스쿨에 합격한 해는 2009년이었다. 특별조사단 3년 근무 이후, 법무실로 옮겨 소송심의 업무와 법 개정 업무로 3년 반을 보냈고, 조사지원부를 거치는 등 당시 골자 업무를 담당해왔던 그였지만, 학창 시절부터 목표했던 꿈이 자꾸 눈에 밟혔다. 2009년은 로스쿨 1기가 출범했던 해였다. 시험을 거쳐 합격통지를 받은 그는 3년의 휴직을 결심하게 된다.

로스쿨 시험을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법무실에서 일하면서 같은 말이라도 전문직 변호사들의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는 걸 알았다. 물론 봉사활동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외 현실적으로 곤란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만약 친구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경찰서에 동행해요. 경찰서에서 누구냐고 물을 때 친구라고 하면 나가라고 하겠죠. 근데 변호사로 왔다고 하면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요?”

임삼섭 지부장은 자신의 포부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간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배우자와 함께 맞벌이 중인 상황에서 경제활동 중단과 학비 두 가지 부담감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예금보험공사는 해마다 10명을 뽑아 로스쿨·MBA 등을 포함한 국내외 주요 대학원 석·박사 학위 과정을 전액 지원하는 인적자원개발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당시에는 이와 같은 제도가 없었다.

“결혼하고 2008년에 둘째가 태어났어요. 둘째가 돌을 갓 넘긴 상황에서 휴직하게 된 거죠. 가겠다고 마음먹고 로스쿨 시험을 봤는데, 막상 붙고 나니까 두렵더라고요.”

그가 고민하던 찰나 두려운 마음을 감싸주며 힘을 북돋아 준 건 배우자였다. 임삼섭 지부장은 은행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염두에 두고 ‘계속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해보라’는 말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배우자에게 늘 마음의 빚이 있다.

3년의 준비를 마치고 2012년 1월 초, 임삼섭 지부장은 시험을 치른 이후 그달 바로 회사에 복직했다. 그리고 그해 3월 사법고시에 최종합격해 3년의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보게 됐다.

노동에 대한 관심을 조직적 연대로

2019년 노조 임원선거에 출마한 임삼섭 지부장이 당시 내건 슬로건은 ‘함께하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였다. 그가 노조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존중·연대·행동’ 세 단어다. 이는 2005년 중앙집행위원을 시작으로 법무부장 등 노조 활동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다. 당시 노조 활동을 하면 회사에 찍힌다는 생각이 있었음에도, ‘찍힐 건 찍히고 할 건 하자’는 주의였다.

“모든 일을 할 때 어느 정도의 감내는 필요해요. 서로 방향이 다른데 모든 걸 맞출 순 없습니다.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이냐가 문제인 거죠.”

그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접하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대학에서도 노동법 관련 수업을 자주 찾아들었다. 심지어 사법시험에서 시험 과목을 선택할 때도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어 고득점을 위해 선택하는 경제법보다 노동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의 기반을 토대로 노조의 리더가 되어 집행부를 이끌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동안 노조 활동이 회사 내부로 한정돼 외부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도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인 간의 연대뿐만 아니라 유사업종끼리의 조직적인 연대 또한 필요하다고 봤다.

조직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호사 자격을 얻고 난 이후에 더욱 도드라졌다. 변호사 자격을 얻었을 당시 ‘왜 퇴사를 하지 않느냐’는 주위 질문들이 많았다. 로펌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 급여도 처우도 좋아진다. 예금보험공사 법무실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로펌의 제안이 여러 건 들어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에 대한 애정으로, 남아있는 걸 택했다.

“당시 회사에도 마음의 빚이 있었어요. 다른 곳 같은 경우 로스쿨 준비한다고 하면 퇴사하고 가라고 하는데, 본사에서 3년의 휴직을 보장해줬잖아요. 게다가 제가 특히 조직 생활을 좋아합니다. 어울리고 부대끼는 게 참 좋았어요.”

주위 사람들은 임삼섭 지부장에게 ‘변호사가 노동자냐?’, ‘무슨 속셈이 있느냐?’는 질문을 장난 섞어 던진다. 보통 변호사라고 하면 회사의 리더를 보좌하는 역할로 사회적 인식이 고정돼 있는 탓이다. 그는 노동조합이 점점 더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도 구성돼 탈바꿈하는 모습을 좋은 현상으로 본다.

임삼섭 지부장은 현재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공공업종본부장을 맡으며, 산별 단위 노동조합 활동 관련 자문으로 자신의 역량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는 법조인이 되고 난 이후 노동조합 활동이 관행적 투쟁에서 벗어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입법 투쟁에 방점을 두고 있다.

주주가치를 제고하듯 ‘노동가치’도 제고하자

뉴스를 접하다 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주주가치 제고’라는 말은 주주 이익을 위한 다양한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연말이면 경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배당도 주주가치 제고의 일환이다.

임삼섭 지부장은 한국 사회에 기업의 이익을 위한 주주가치 제고뿐만 아니라 ‘노동가치 제고’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을 비용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주주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를 평행선상에 두는 것을 말한다. 주주가 주식을 사들여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듯, 노동자도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대우가 박하다는 것이다.

“노동으로 들어간 비용은 인건비라고 하면서, 주주한테 들어가는 비용을 주주비 혹은 주주관리비라고 하지 않잖아요. 사회적 인식이 배어있는 이 용어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에 따라 소멸하는 노동에 대한 제고, 주주가치가 있듯 노동가치도 함께 가야 한다는 거죠.”

임삼섭 지부장이 말하는 노동가치 제고란 넓게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경영진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감하면서, 나아가 노동조합 간부들도 경영에 동참하며 서로 책임지고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놓는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공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두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비교하며 노동자끼리 서로를 힐난하는 사회보다 노동자 개개인이 서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연대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혼은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기 위해 인내와 양보, 배려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어렵죠. 그러나 이혼은 그에 비해 쉽습니다. 노사관계도 그렇고, 노노 갈등도 그렇습니다. 연대는 어렵지만, 갈등과 분열은 그만큼 쉽다는 얘깁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이를 경계하며, 꾸준한 연대를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