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번호판처럼 노동자도 ‘허하호’ 웃을 수 있길”
“렌터카 번호판처럼 노동자도 ‘허하호’ 웃을 수 있길”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1.06 08:34
  • 수정 2021.01.06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사 이동 겪으며 느꼈던 고용불안이 노동조합 설립으로

[인터뷰] 박세준 SK렌터카노동조합 위원장

박세준 SK렌터카노동조합 위원장 

‘허’, ‘하’, ‘호’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단 렌터카가 도로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장면이 됐다. 렌터카 사업은 197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와 꾸준히 성장세다. SK렌터카는 렌터카 회사 중 몇 안 되는 대기업으로 꼽힌다. 2020년 SK렌터카는 AJ렌터카와 SK네트웍스 렌터카사업부, SK렌터카서비스의 일부가 합쳐지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 박세준 한국노총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 SK렌터카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SK렌터카는 2020년 초 설립된 통합 법인이다. 먼저 모회사인 SK네트웍스가 2017년 AJ렌터카의 주식을 대량으로 인수해 그 초석을 다졌다. 이후 AJ렌터카와 SK네트웍스의 렌터카사업부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SK렌터카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또 다른 자회사인 SK렌터카서비스의 영업직 노동자가 합류했다. 박세준 위원장은 20년 동안 SK네트웍스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인수합병과 회사 매각, 양도를 봐 왔다. SK네트웍스 렌터카사업부 노동자였던 박세준 위원장은 회사 매매 과정에서의 고용불안을 직접 체감하고 노동조합 설립을 결심했다.

“SK네트웍스에서 일하면서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양도하는 일을 많이 봤어요. 예를 들어 SK네트웍스에는 패션 사업이 있었는데 현대백화점 계열사로 넘어갔죠. 그렇게 사업부를 매각할 때 해당 사업부의 구성원은 이에 반대하거나 전적 조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렌터카사업부에 있다가 당사자가 되니까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전적 회사에서의 근로조건, 고용안정에 대한 불안감을 몸소 체험했죠.”

노동자들은 두려웠다. 박세준 위원장도 2019년 전적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난 후 의견을 개진하고 싶었지만 전달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무서웠다”고 그때의 심정을 털어놨다. 결국 전적에 관한 여러 문제점은 전체 질의 시간에 잠깐 손들어 질문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120명의 SK네트웍스 렌터카사업부 노동자들이 SK렌터카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건이 꽤나 저하했다.

“SK네트웍스 렌터카사업부에서 SK렌터카로 넘어오면서 ‘노동조합이 없으니까 이렇게 사업부가 매각돼도 구성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더라도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경영상의 문제는 노동자 개인이 막기 어렵습니다. 다만 만약에 또 이런 상황이 왔을 때는 한 목소리로 우리의 고용안정, 전적에 따른 보상을 확실하게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박세준 SK렌터카노동조합 위원장 

통합 법인이 출범한 지 두 달여 만인 2020년 3월 21일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10월에는 한국노총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에 공식 가입했다. 조합원 145명의 SK렌터카노동조합은 현재 회사와 고용안정을 목표로 교섭 중이다. SK렌터카의 구성원들이 다른 회사로 가지 않고, 가더라도 안전장치를 만드는 게 SK렌터카노동조합의 첫 번째 목표다. 회사매매에 따른 고용불안 과 노동조건 악화를 직접 겪은 만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위원장의 신념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제가 바라는 노사관계입니다. 회사를 상대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나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강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SK렌터카노동조합은 현재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SK렌터카에는 3개 회사 출신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직군이 다양한 만큼 임금도 천차만별이었다. 여러 회사의 노동자들이 한 회사로 합쳐진 만큼 서로 상호 배타적인 상황을 피해야 했다. SK렌터카노동조합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긴 호흡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제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를 조합원들에게 많이 물어봅니다. 얼마 전에는 총회를 열어 ‘가장 바꾸고 싶은 게 무엇인지’ 조합원들에게 물어봤어요. 설문조사도 했는데 임금인상을 제일 우선으로 해 달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더라고요. 그 배경에는 임금 격차가 있었고요. 진정한 하나의 회사로 가려면 임금 격차는 해소해야죠. 한 번에 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계획을 수립해 점진적으로 줄여가야 합니다.”

SK렌터카는 우리나라 전체 렌터카 100만 대 중 15만 대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 회사다. 지점과 현장 센터 등 지역 곳곳에 SK렌터카 소속 팀이 꾸려져 있다. 고용안정을 기반으로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은 SK렌터카노동조합에게 남겨진 숙제다. 박세준 위원장은 “렌터카라고 해봐야 다른 자동차랑 다를 게 없다. 번호판만 ‘허하호’인 것”이라며 “노동조합 경험이 쌓이면 다른 렌터카회사 노동조합의 활동도 벤치마킹해보고 싶다. 나중에는 SK렌터카 지역팀별로 지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