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의 위기, 코로나19 탓 아닌 ‘경륜선수=상품’ 인식 탓
경륜의 위기, 코로나19 탓 아닌 ‘경륜선수=상품’ 인식 탓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09 18:37
  • 수정 2021.01.09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김유승 공공연맹 경륜선수노조 위원장
코로나19 종식만 기다리지 말고 경륜선수와 함께 새로운 방법 모색해야

코로나19는 우리 산업계 전반에 상처를 냈다. 항공·여행업계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항상 어렵다고 말하는 자영업자 역시 매일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모두가 어렵지만, 레저산업, 특히 경마·경륜·경정을 아우르는 이른바 ‘사행성 산업’의 적자는 심각한 상황이다.

경마를 주관하는 한국마사회는 코로나19에 따른 경마 중단으로 2020년 매출액이 6조 원 이상 감소했다. 경륜과 경정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경륜사업부문에서 1조 3,600억 원이, 경정사업부문에서 5,310억 원가량의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경륜경기 중단으로 수입이 없어진 경륜선수는 배달, 택배, 대리운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쳐 선수생명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1년 동안 세 차례의 모의경주를 했지만, 미봉책이 아닌 코로나19 위기 타개와 경륜선수의 생계 보장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게 경륜선수노조의 주장이다.

김유승 경륜선수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유승 경륜선수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코로나19 대유행이 1년째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다들 어렵지만, 레저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경륜선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원래 경륜선수는 자전거와 가정밖에 모른다. 특히 12월에 열리는 그랑프리 경주가 끝난 후인 지금 같은 시기에는 해외나 따뜻한 지방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거나 시즌 동안 생긴 부상을 치료한다.

지난해 1월, 갑자기 발병한 코로나19로 모두가 당황하고 혼란한 시기를 보냈음을 안다. 경륜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곧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운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이지 않자 생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륜선수는 거의 평생을 자전거만 탔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자전거 타기뿐이다. 그런 사람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고용시장에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배달이나 택배, 대리운전 같이 비정기적이고 열악한 일자리뿐이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운동과 생계를 위한 노동을 모두 챙기느라 과로로 쓰러지거나 중풍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경우도 있다. 운동과 생계를 모두 잡지 못한 경륜선수는 생계를 위해 운동을 버리기도 한다. 근데 몸 쓰는 일을 하다가 크게 다쳐 선수생명이 끝나 어쩔 수 없이 운동을 버리는 경우도 정말 많다. 격한 노동으로 십자인대가 끊어져 은퇴하거나 퀵서비스를 하다가 사고가 나 수술한 경륜선수도 있다. 그 선수는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정말 크게 다쳤는데 혈액이 부족해 경륜선수노조에서 지정헌혈을 한 적도 있다.

- 지난해 10월,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노조설립필증이 나왔다. 코로나19로 힘든 가운데 노조설립필증이 나왔는데, 노조설립필증 발급 전후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노조설립필증이 나오면 경륜선수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금은 변화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조설립을 했기에 1월 말이나 2월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단체교섭을 할 예정이다. 단체교섭을 하면 변화가 체감되지 않을까 한다.

- 실내스포츠인 경륜경기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지만, 세 차례의 모의경주는 있었던 것으로 안다. 운동선수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기량을 유지해야 하는 게 숙명인데, 경주가 없어 경기기량에 대한 걱정이 클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에는 코로나19가 금방 종식될 거로 생각해 많은 경륜선수가 운동에 집중했다. 두 달 정도 운동에 집중하며 코로나19 종식만을 기다렸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4월에 모의경주를 열었다. 7월에도 한 차례 모의경주가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였던 10월 말부터는 정식 경주가 있었지만, 12월 초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해 방역지침이 격상되면서 다시 정식 경주가 중단됐다. 12월 둘째 주에 있었던 모의경주가 마지막 경주였다.

사실 운동이라는 건 꾸준하게 해야 최고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 정말 밥 먹듯이 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운동만 해도 기량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생계 때문에 격하게 몸 쓰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경륜선수의 기량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근데 이렇게 떨어진 기량이 경기 며칠 전, 혹은 몇 주 전에 잠깐 운동 열심히 한다고 오르는 게 아니다. 정기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운동에만 매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떨어진 기량으로 경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 경륜선수의 수입구조는 어떻게 되나? 지난해 코로나19로 경륜경기를 못하면서 많은 경륜선수가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했는데, 경륜선수의 평균 소득은 어느 정도 됐나?

경륜선수는 선발급, 우수급, 특선급의 3개 등급으로 나뉜다. 등급 간 출전수당에는 격차가 있다. 한 회의 경륜경기에는 같은 등급의 경륜선수 7명이 출전한다. 출전수당은 7명의 출전선수 등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한 번 경륜경기가 열리는 3일 동안 가장 낮은 등급의 선발급 선수가 모두 7위를 하면, 170만 원을 받는다. 선발급 선수가 3일 내내 1위를 하면 받을 수 있는 수당은 350만 원 정도다. 우수급 선수가 한 번의 경륜경기에서 내내 7위를 했다면 280만 원을, 내내 1위를 하면 540만 원을 받는다. 특선급 선수는 가장 적게 받으면 560만 원을, 가장 많이 받으면 1,100만 원을 받는다.

보통 경륜선수 한 명이 두 달 동안 세 번의 경기에 참가하니, 선발급에서 계속 7위를 한 선수는 두 달 동안 510만 원의 수입을 얻는 셈이다. 특선급에서 계속 1위를 하는 선수는 두 달 동안 3,300만 원을 받는다. 거의 6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렇게 보면 경륜선수의 소득은 높은 편이다. 근데 중요한 건 경륜선수는 기본급이 없다. 경륜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다. 사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경륜경기 출전이 보장됐기 때문에 기본급이 없는 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경륜경기의 출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김유승 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륜선수의 생계비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 경륜선수노조
김유승 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륜선수의 생계비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 경륜선수노조

- 최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경륜경기 준비를 위해서 경륜선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몸을 만든다. 근데 경기 2주 전에 출전 여부가 결정된다. 일을 그만둬 수입이 전혀 없는데 경기 일정에 맞춰 몸을 만들었지만, 2주 전에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면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나. 12일부터 광명스피돔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정기적인 모의경주와 급별 평균 출전수당에 달하는 기본급을 매달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18일에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다음엔 우리가 양보안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선발급의 평균 출전수당에 달하는 기본급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다. 4인 가족 최저생계비가 284만 원인데, 선발급 평균 출전수당이 270만 원 정도 된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이것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럼 모든 경륜선수에게 2021년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이라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모의경주를 정기적으로 열고 한 달에 180만 원이라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근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올해 예산은 확정됐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 마지막 제안마저 거부했다. 그래서 12월 30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예산의 대부분이 경륜·경정사업을 통해 만들어지고 2020년 경륜·경정경기가 중단됐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않나.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경륜선수는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다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 이미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스나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에도 또 다른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지금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경륜선수노조가 생각해 둔 방안이 있나?

사실 경륜선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경륜의 위기를 체감했다. 교차수신 제도의 도입 때문이다. 교차수신은 광명 경륜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방송을 통해 부산 경륜장이나 창원 경륜장에 송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광명 경륜장 경기를 수신하는 지방 경륜장에서는 경륜경기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2016년 1,300건에 달했던 경륜경기는 2019년 700건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경기수가 줄어드니 자연히 경륜선수의 경기 참여 기회나 수익이 줄어들었다.

교차수신 제도로 경륜선수의 경기 출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힘이 세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눈 밖에 나면 경륜경기에 참여할 수 없기에 경륜선수는 더 제 목소리를 못 내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경륜선수를 ‘경륜경기를 위한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경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륜선수가 ‘경륜경기를 위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수익을 위한 상품’이라는 인식을 깨야 한다.

자전거는 우리 삶과 정말 가깝다. 공유자전거만 해도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유자전거와 플랫폼 사업자가 운영하는 공유자전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동호회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자전거를 즐기는 시민도 정말 많다. 그런데 그 자전거를 활용하는 경기인 경륜은 ‘사행성 산업’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경륜선수를 상품이 아닌 파트너로 존중하면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비할 방법을 경륜선수와 함께 찾아 나갔으면 한다.

-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프로스포츠 5종과 직장운영경기부 2종 표준계약서 논의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바람직하다. 사실 운동선수는 정말 운동만 안다.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목적 지향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훈련과정에서 학대나 위계에 의한 혹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쨌든 성적만 잘 내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토론회가 아쉬운 점은 유명한 종목이나 누군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런 종목에 대해서만 표준계약서 논의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어린 선수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그러니까 모두 주목했다. 그런데 보도되지 않은 더 많은 사례가 체육계에는 만연하다. 이른 시일 내에 체육계 전반으로 표준계약서 논의가 확장돼야 한다. 누군가 죽어야만 논의를 시작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닌, 소도 외양간도 모두 지킬 수 있는 논의가 되길 바란다.

경륜선수노조는 프로스포츠 1호 노동조합이다. 1월 말이나 2월 중 단체협약 협상을 앞두고 있는데, 정부의 논의에 발맞춰 단체협약 협상안에 표준계약서 마련 관련 내용도 포함할 생각이다. 경륜은 하루 3차례의 경기가 있는데, 아침 10시 반에 경기가 시작되고 밤 8시 55분에 야간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 만약 전날 야간 경기와 다음 날 첫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면 제대로 쉴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일정하지 않은 노동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룰 생각이다. 노동자로 제대로 존중받으면서 자전거만 탈 수 있도록 하는 게 표준계약서의 목적이 될 거다.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경륜선수노조의 단체협약 협상 결과가 체육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륜선수노조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단체협약 협상을 주목하고 있다. 첫 단체협약 협상이고 체육계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긴 호흡으로 단체협약 협상에 임할 생각이다. 앞으로 경륜선수노조의 행보를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