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규제 완화에 “흔들리는 공공성”VS“방송 산업 정상화”
지상파 규제 완화에 “흔들리는 공공성”VS“방송 산업 정상화”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1.14 23:31
  • 수정 2021.01.1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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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광고‧편성 규제 대거 완화
“문제는 공공성보다 시장개입 정책을 우선한 것”
ⓒ 방송통신위원회
ⓒ 방송통신위원회

5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한상혁)가 내놓은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을 두고 지상파 방송사들이 환영의 뜻을 비친 가운데, 언론시민단체에선 “방송 공공성을 흔든다”고 비판했다. 이번 정책 방안이 미디어의 공공성 강화보다 시장개입에 치우쳐졌다는 이유에서다.

방통위가 13일 발표한  정책방안에는 ▲광고‧협찬 규제 완화 ▲미디어렙 등 광고 판매제도 개편 ▲편성 규제 개편 ▲이용자 권익 강화 ▲글로벌 경쟁력 강화 지원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 등이 담겼다.

이번 정책방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광고와 편성에 관한 규제 완화다. 그간 지상파 방송사는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한 유료방송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았다. 지상파 방송사의 공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종편에 대한 선호도 상승과 뉴미디어가 확산하며 지상파 방송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방통위가 내놓은 정책방안은 지상파 방송사의 요구에 부합한다. 개편된 광고 정책 기조는 ‘네거티브 규제’다. 금지하는 광고 유형만 제외하고 모든 광고를 편성할 수 있다. 다만, 방통위는 네거티브 방식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후규제체계를 마련한다고 했다.

중간광고는 전면 허용하고, 광고총량, 가상·간접광고 시간 등에 있어서 종편 등 다른 방송사와 차이를 해소한다. 이에 따라 중간광고에 대한 통합적용 기준을 마련하고, 중간광고 허용원칙 신설, 고지의무 강화를 추진하며 시청자 영향평가 등을 실시한다. 미디어렙 등 광고판매 구조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편성에 관한 규제도 전면 재정립한다. 오락프로그램 편성비율을 높였고(50%→60%), 편성비율 산정 기간을 ‘매월, 매분기’에서 ‘매반기, 매년’으로 통일해서 늘렸다. 편성 자율성이 크게 높아진 방송사는 시청률이 높은 오락프로그램 편성을 늘릴 수 있다.

방통위는 “방송의 경영 위기가 공적가치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건전한 재원구조 마련을 위해 시장경쟁과 자율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혁신이 요구”된다며 정책 추진 배경을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 단체인 한국방송협회(회장 박성제)는 14일 성명에서 “낡은 비대칭 규제의 해소를 통해 방송 산업의 정상화를 향한 첫 단추가 비로소 채워졌다”며 환영했다. 광고와 프로그램 편성 등에 관한 규제 완화가 지상파 방송사의 어려움을 해소할 거로 봤기 때문이다.

한국방송협회는 “방통위가 그간 제시해온 비대칭규제의 해소라는 정책 목표를 충실히 이뤄가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기대한다”면서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서만 비로소 국내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온전히 구축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공공성 포기하는 것”

같은 날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성명서와 긴급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서 “사업자를 우선한 광고‧편성 규제 전면완화가 방송 공공성을 흔들 것”이라고 평했다. 김서중 상임대표는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광고를 허용하는 건 찬성이지만, 네거티브 규제는 실상 필요한 것을 넘어서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우 이사도 네거티브 규제를 가장 우려스러운 점으로 지적했다. “실제 방송사업자에게 길을 다 열어주면 방송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시청권을 해소하는 광고 형태가 언제 어떻게 등장할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를 막기 위한 방통위의 사후규제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홈쇼핑 연계판매나 협찬만 해도 시청권 침해가 명백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작은 틈만 있으면 다양한 편법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홈쇼핑 연계판매’는 방송사가 프로그램에서 특정제품을 홍보하면 홈쇼핑 채널에서 즉각 판매하는 행위이다.

정수경 정책위원은 오락프로그램의 상한선을 50%에서 60%로 높인 편성규제 개편안을 비판했다. 오락물 편성이 60%로 늘어나면 시청률을 견인하는 보도물은 살아남아도 교양물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방송법은 방송 영역을 ‘보도, 교양, 오락’ 세 영역으로 나누고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명시하고 있다”며 “어떤 분은 현실론을 들어서 오락물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방통위가 우리 사회 여론과 담론을 형성할 공익 콘텐츠를 보호하는 빗장을 스스로 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상파가 살아야 공공성도 담보”
“방통위, 시민사회단체 의견 들어야”


최상훈 한국방송협회 정책협력부장은 앞선 지적에 “지상파 위기에 대한 태도는 지구온난화를 대하는 것처럼 미온적”이라고 반박했다. “가장 강력한 공공미디어가 사라지면 공공성도 악화”된다며 상업적 제안이 공공성과 반드시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최상훈 부장은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시민의 감시와 비판으로 규제 이상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민의 비판 아래서 공공성과 이익이 강화되면 시민사회의 역할도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정수영 민언련 정책위원은 지상파 방송사에도 많은 광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선정적 프로에 뒤처지는 게 현실”이라며 공영방송이나 지상파 방송이 있어야 공공성‧다양성‧지역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선정적 프로그램이 훨씬 많은 광고 수익을 가져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얘기하는 시청자 권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공공성을 지켜갈 권리 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주권자라 부르는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방통위 정책안이 공적 서비스 강화 측면에서 지난해보다 퇴행적이라고 평했다.

반면 방통위가 공공성보다 시장성을 내세운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무를 독려‧감독해야 할 유일한 국가기관인 방통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동원 언론노조 전문위원은 “가장 큰 문제점은 공‧민영 방송사업자의 오래된 규제 완화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했다는 사실보다 지상파 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을 먼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달라진 미디어 환경, 지역 불균형 발전에 걸맞은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을 구체화한 후 시장개입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했다. 

또 “지금처럼 재원 고갈과 적자를 호소하는 각 방송사가 먼저 공적 책무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며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방송 콘텐츠, 플랫폼 정책 등을 포함하여 공적 책무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