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던 노동자가 또 쿠팡에서 죽었다
건강하던 노동자가 또 쿠팡에서 죽었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19 19:38
  • 수정 2021.01.19 1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간 집품작업하던 50대 노동자 화장실서 숨진 채 발견
쿠팡, “고인 사망 원인, 살인적 노동강도 탓 아냐”
ⓒ 공공운수노조
ⓒ 공공운수노조

1월 11일 새벽,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집품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숨졌다. 퇴근 직전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노동자는 평소 지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는 5명에 달한다.

19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현정희)과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공동대표 권영국·박승렬, 이하 대책위)는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물류센터 앞에서 11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야간 집품작업 노동자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쿠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공운수노조와 대책위는 “쿠팡 물류센터에는 난방이 안 되는데,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내려간 11일 새벽의 추운 환경에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핫팩 하나로 견뎌야 했다”며 “이렇게 몸에 무리가 가는 환경에서 개인의 시간당 생산량(UPH, Units Per Hour)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일일이 감시하는 쿠팡의 구조로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사회복지사가 본업이다. 코로나19로 사회복지 업무를 하기 어려워지자, 당분간 스쳐지나가는 일자리로 쿠팡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공공운수노조와 대책위는 추정하고 있다. 쿠팡에서 사망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데에는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도 스쳐지나가는 일자리’라는 인식을 만든 쿠팡의 고용구조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대책위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쿠팡 동탄물류센터 사망사고와 관련한 보고서를 입수,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은 함께 일하러 온 유가족과 퇴근 직전에 동탄물류센터 내 야외화장실을 이용하다가 변을 당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대책위는 11일 사망사고 발생 후 동탄물류센터의 집품작업 노동자를 인터뷰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집품작업 노동자는 “물류센터 내에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난방기구가 전혀 없다”며 “규정상 핫팩은 하나만 지급하지만, 엄격하게 준수하지는 않아서 2~3개까지도 쓸 수 있는데 추운 날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UPH에 관해서는 “회사는 참고용이라지만 UPH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단기직은 다음 지원에 UPH를 참고할까봐 불안해 한다”고 증언했다.

권영국 대책위 공동대표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이어지고 있는 다섯 분의 사망사고를 우연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없다”며 “사망사고는 고인의 작업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쿠팡에는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정부에는 물류센터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한편, 쿠팡은 “고인은 일용직 근무자로 지난해 12월 30일 첫 근무 이후 총 6일 동안 일했고 주 최대 29시간 일했다”며 “쉬는 시간 없는 살인적 노동강도 때문에 고인이 사망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어 “전국 모든 물류센터는 화물차량의 출입과 상품의 입출고가 개방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냉난방 설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신 쿠팡은 동절기 모든 직원에게 핫팩을 지급하고 외부와 연결된 곳에서 일하는 작업자에게 방한복을 추가로 지급한다”고 말했다.

쿠팡은 “고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면서도 “악의적으로 고인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