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여성도 할 수 있어요” 여성수리기사가 찾아가는 ‘라이커스’
“집수리, 여성도 할 수 있어요” 여성수리기사가 찾아가는 ‘라이커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1.26 21:30
  • 수정 2021.01.28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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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역할 고정관념 깊은 산업 속에서 여성의 일을 찾고파”
[인터뷰] 안형선 라이커스(LIKE-US) 대표
안형선 라이커스 대표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안형선 라이커스 대표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여기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주택수리서비스가 있다. 그 이름은 라이커스(LIKE-US).

집수리가 필요할 때 낯선 수리기사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게 불편했던 여성, ‘혼자 사세요?’ ‘집이 참 예쁘네요’ 등 수리기사의 사담(私談)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여성, ‘가서 봐야 견적을 내줄 수 있다’는 모호한 답변에 집수리 비용을 미리 책정할 수 없었던 여성,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수리 비용을 토로할 길이 없었던 여성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느꼈던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여성수리기사가 명확한 요금표를 들고 찾아간다. 막연히 남성이 하는 일로 여겨졌던 집수리에 여성이 진출함으로써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집수리서비스가 탄생한 것이다.

안형선 라이커스 대표는 “여성 기술자들은 기술을 배워도 그 기술을 제공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토로한다. 안형선 대표는 물류업, 건설업 등 이른바 ‘힘을 써야 하는’ 업종에 여성의 진출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은 산업 속에서 여성의 일을 찾아보자! 젠더 프리 브랜드 메이커 ‘주식회사 왕왕(WANG WANG)’은 이렇게 탄생했다. 왕왕에서 만든 브랜드가 바로 라이커스다. 안형선 대표는 “우리와 같은(LIKE-US) 여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집수리, 배우면 여성도 할 수 있는 일”

“이게 잘 될까? 이 서비스를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까?”

2019년 11월 이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머릿속에 작은 불안감이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라이커스는 별도의 유료 홍보 없이도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여성수리기사가 방문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수리기사를 부른 후에도 집에서 편안히 할 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수리 후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등 서비스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두 눈으로 확인하자 불안감 대신 확신이 생겼다. 안형선 대표는 “고객에게 ‘꼭 살아남아 지방에도 지점을 내 달라’는 후기를 듣기도 했다”며 “서비스 기획 과정에서 했던 고민이 풀리면서 이 서비스가 도움이 되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택수리서비스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시간 동안 ‘고객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라이커스 서비스의 핵심이다.

“집수리 기술은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거고, 고객과 마주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아시다시피 사생활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집에 방문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집을 훑어본다거나 할 수 있거든요. 그러지 않도록 조심하죠. 그리고 고객과도 기술, 서비스 외 개인적인 사담은 절대 나누지 않습니다. 물론, 고객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시면 응대를 하고요. 저희가 먼저 꺼내진 않아요.”

안형선 대표는 ‘그래도 집을 수리하는 일인데 여자가 하기 힘들지 않냐’는 악의 없는 궁금증, 혹은 삐뚠 시선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집수리는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물론, 요령이나 적성, 이런 개인차는 있을 수 있죠. 같은 여성 중에서도 소질에 따라 누구는 더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어요. 근데 그건 남성도 마찬가지예요. 수리 현장에서 ‘여자라서 잘 못할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상처가 되기보다는 더 잘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안형선 라이커스 대표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안형선 라이커스 대표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노하우 쌓은 1년,
일의 즐거움은 덤

안형선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지도 1년이 조금 넘었다. 일은 다행히 적성에 맞았고 즐거웠다. 일을 한 시간만큼 노하우도 쌓였다. 안형선 대표는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남몰래 한숨짓기도 했었는데 현장에서 1년을 지냈더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경험적인 노하우가 생겼다”며 “이 일을 통해 충분히 내 삶을 영위할 수 있겠구나, 직업적인 메리트가 충분하다고 느낀 1년이었다”고 말한다.

삶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받는 ‘예상치 못한 기류’를 만난 것. 자신이 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낸다. 그 자체로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됐다. 입소문은 언론에도 나 인터뷰도 많이 했다. 안형선 대표는 “엄청 유명한 회사도 아닌데 이렇게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오면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며 웃었다.

무엇보다 힘이 되는 건 고객들이 남기는 후기다.

“이 사업을 접을까 말까를 고민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고객들,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보지는 않았어도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 덕분이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가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해준 거잖아요.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올해는 신입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라이커스 업무 특성상 기술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

“이전 채용 과정에서 경험했던 일인데, ‘서비스’가 아닌 ‘기술’에만 초점을 맞춰 지원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물론 기술도 중요하지만 라이커스는 고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서비스가 차별점이니까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요.”

최종 꿈,
여성 기술자들로만 건물 올리기

안형선 대표는 지금의 주택수리서비스에서 확장할 수 있는 여러 사업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아직은 막연한 청사진이지만, 조직이 안정되고 커지면 집수리 영역에서 나아가 도배, 타일 시공 등 인테리어 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

“가끔 라이커스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항상 여성들만 모여서 집 짓고, 건물 짓는 거라고 답해요. 그리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거죠. 누가 봐도 ‘이 사진이 진짜야?’ 하는 획기적인 일이 되지 않을까요?”

애초 안형선 대표가 왕왕을 설립한 목적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은 산업 속에서 여성의 일을 찾아보자는 것. 때문에 집과 관련된 영역이 아니어도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여전히 여성이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의 벽을 하나하나 허무는 것 역시 안형선 대표의 꿈이다.

“너무 많죠. 자동차 경정비도 그 중 하나예요. 우리가 하거나 아니면 누가 우리처럼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에서 여성을 더 많이 접하고 싶어요. 여성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직업적 상상력이 확장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