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법망’··· 환경미화원 죽음 끊이지 않아
‘허술한 법망’··· 환경미화원 죽음 끊이지 않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1.27 23:34
  • 수정 2021.01.28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일반연맹 “대부분 지자체·청소업체, 법 안 지켜··· 예외 조례 허용 말고 정책 원칙 바로 잡아야”
ⓒ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연맹이 27일 폐기물관리법 위반 지자체와 청소업체의 실태를 밝히고 정부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민주일반연맹

‘쾅’,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 뒤쪽 발판에 서 있던 환경미화원을 음주운전 차량이 들이받았다. 지난해 11월 6일 새벽 3시 40분, 대구시 수성구 도로 위였다. 피할 겨를도 없이 다리가 절단된 환경미화원은 결국 숨을 거뒀다. 

주간작업, 3인1조 작업 등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정된 폐기물관리법이 같은 해 6월부터 발효됐지만 현장에선 작동하지 못한 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별도로 조례를 제·개정하면 해당 의무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환경미화원들은 허술한 법망의 틈으로 속수무책 빠져나가고 있다.

환경미화원들이 속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위원장 김유진, 이하 민주일반연맹)은 27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만히 앉아서 동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며 “정부는 지자체의 별도 조례 제정을 용인해 탈법을 부추기지 말고 법 개정 안전수칙 조항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정책의 원칙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환경미화원의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법을 짚었다. 생활폐기물법(제14조의5)은 주간작업, 3인1조 작업, 악천후 시 작업 중지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별도로 조례를 두면 예외를 허용한다. 이 때문에 민주일반연맹은 “대부분의 지자체와 위탁업체체가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 민주일반연맹
 지난해 12월 23일 새벽 서울시 금천구 청소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이 홀로 작업 중인 모습 ⓒ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연맹이 지난해 말 지자체 40곳에 속하거나 민간 위탁업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영은 강원 양양, 충남 청양 등 10곳이, 위탁업체는 34곳이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했다. 다만 이번 조사는 환경미화원들이 응답한 설문조사를 취합했기에 지자체 40곳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직접 운영 여부와 위탁업체 수가 전수조사된 결과는 아니다. 

민주일반연맹은 특히 노동환경이 더 열악한 민간위탁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이 산재에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민간위탁의 특성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촉박한 작업시간과 부족한 인력 배치로 직영보다 일하다 다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산재 사고로 사망한 환경미화원 13명 중 12명이 민간위탁 환경미화원이다. 같은 기간 산재 사고 재해자는 1,795명인데 민간위탁 환경미화원이 약 60%(1,076명)에 달한다. 

민주일반연맹은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민간위탁을) 재직영화 해야 한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를 논의하는 공무직위원회에도 민간위탁 의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일반연맹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환경미화원들의 요구를 담아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환경미화원 재직영화 ▲재직영화 전까지 환경미화원 안전 대책 마련 ▲폐기물관리법 위반 지자체와 민간업체 처벌 ▲대책 마련을 위한 노·정 협상 틀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