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운전기사 붙잡아야 버스 공공성도 잡는다
노련한 운전기사 붙잡아야 버스 공공성도 잡는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2.08 00:20
  • 수정 2021.02.07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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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많은 버스기사 필요성에 공감한 경남여객 노사
​​​​​​​“버스운전도 숙련 노동, 노련한 운전기사 이탈 막아야”

[리포트] 고용유지 위해 머리 맞댄 버스 노사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경남여객 본사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지원책은 한정적이고 한시적이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대두됐지만, 재난 상황에서조차 국가가 전면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업체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곳에선 일자리가 사라진다. 적자생존 방식이다. ‘시민의 발’이라는 공적 가치를 지닌 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선 인력감축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노동자를 위한 근본책은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지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사업장이 살아남고 노동자가 일하려면 노사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코로나19로 감소한 유동인구
버스업계에 직격탄 날렸다

유동인구 감소는 코로나19가 불러온 대표적인 변화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거리두기’로 동네에서나 시내에서, 지역 간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는 사람이 줄었다. 충격은 버스업계에서 먼저 감지됐다. 코로나19가 확산세를 보인 지난해 1월 28일부터 2월 11일까지 버스 이용 승객 감소율은 시내버스 15.6%, 시외버스 27.1%, 고속버스 36.2%로 나타났다.

버스 승객 감소는 꾸준히 이어졌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전국 노선버스 이용객은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8.9%(약 8억 명) 감소했다. 매출액은 24.46%(6,776억 원) 줄었다.

매출이 급감한 사업장의 노동조합에게 일자리 사수는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버스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히 버스준공영제를 전면 도입하지 않은 지역에선 인력감축이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가 대표적이다. 부분적으로 노선입찰제를 시행 중인 경기도에선 버스운전기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경기지역 버스운전기사 감소율은 11.6%다. 강원도(12.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감소 수로 보자면 1,535명으로, 전국(3,047명)에서 절반 넘게 차지한다. 업체에서 적자 노선을 팔거나 버스를 감차했기 때문이다. 용인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어느 버스운전기사의 말처럼 “일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은 한시적이라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여파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이 끝난 사업장에선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버스 노사는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한을 연장하고 노선버스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꾸준한 재정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더 열악한 업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용유지 최우선 한 경남여객 노사

경기 지역 버스사업장인 경남여객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곳이다. 경기지역자동차노동조합 경남여객지부(지부장 김수진)에 따르면, 경남여객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버스운전기사 감축이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인력을 유지하는 것에 노사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진 작년 3월, 회사 매출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노사는 서로가 무엇을 내놓을지 논의하고 합의했다. 사측은 버스운행 감축률을 10%로 유지하고, 임원 급여의 30%를 반납하기로 약속했다. 노조는 감차(減車)로 인해 만근에 미달하는 근무일수가 발생하면 연차휴가를 대체 사용하기로 했다. 신규채용은 중단하고, 노선배치는 조정했다. 감차로 인해 남는 인원을 재배치한 것이다. 시외버스 등 대형버스운전기사가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식이다. 다만 마을버스를 운전해도 대형버스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이런 합의는 노동조합 입장에서 보면 뼈아픈 지점이다. 특히 근무 일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버스업계 특성상, 연차휴가 대체 사용은 조합원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9월에는 2020년 임금동결에도 합의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다. 김수진 경남여객지부 지부장은 고용유지와 소득감소 최소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김수진 지부장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임금동결 등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비정상적인 시기인 만큼 비정상적인 합의문이 당연히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노사관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남여객에서 특기할 점은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용유지와 소득감소 최소화를 위해선 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연차휴가 대체 사용이나 노선배치 조정 등 노사가 합의한 내용을 유지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촉탁직을 고려할 경우에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않은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수진 지부장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더라도 촉탁직의 재계약은 불투명하다”며 “정규직뿐 아니라 촉탁직을 포함한 기존 인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틀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버스업계에선 정년 이후에도 일하던 사업장에서 촉탁직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계속 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비정규직인 만큼 촉탁직은 인력감축 대상 1순위로 내몰리고 있다.

김수진 경남여객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노련한 버스기사가 회사에 필요하다

경남여객 노사 간 합의는 결국 기존 인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노조가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서는 아니다. 사측도 기존 인력을 유지해 ‘숙련된 노동자’를 붙잡아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져 감축 노선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경우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규모의 인력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인력을 투입할 시 새로 온 버스운전기사들로 채워지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 뒤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것보다는 경남여객 노선에 익숙한 버스운전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붙잡아두는 편이 효율적이다.

김수진 지부장은 기존 인력을 유지하는 방식이 경남여객 버스가 운행하는 용인 지역 특색에도 부합한다고 이야기했다. 길이 좁고 험한 농촌 복합형 지형이기 때문에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금세 지형을 숙지해서 운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수진 지부장은 험한 지형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만두는 신규인력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에 공영제를 도입하기로 한 용인지역 마을버스는 연로하신 분들이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숙련된 종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을버스운전기사의 상당수는 경험 많은 촉탁직이다.

현장에선 버스운전도 숙련이 필요한 노동이란 의견이 많다. 버스 노선 숙지는 물론 대형차량 운전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양한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추돌 사고부터 버스정류장에 밀착하지 못해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흔히 보는 입석 시내버스의 경우 요령을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넘어짐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사고도 있지만, 경험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도 적지 않다. 버스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서 감점 요소이기 때문에, 빈번한 사고와 민원은 회사의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신규로 채용된 버스운전기사는 비교적 크기가 작은 마을버스를 2~3년간 운전하며 감을 익힌 뒤에 시내버스 · 시외버스 등 대형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공공성 향상 위해 숙련된 버스기사 이탈 막아야

경남여객 노사가 이룬 합의가 모든 버스사업장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경남여객은 시내버스, 고속버스, 시외직행버스, 마을버스 등 약 480대의 다양한 노선버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보다 영세한 사업장은 무급휴직에 이어 정리해고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노련한 버스운전기사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 공공성이 저하될 여지가 크다.

정부는 노선버스를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노사정이 노선버스 근무형태를 격일제에서 1일 2교대제로 개편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버스운전기사를 필수노동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버스운전기사의 업무환경이 공공성 강화와 직결된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노사만의 힘으로 노련한 버스운전기사를 붙잡을 수 없다면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김수진 지부장은 “한 노선에서 오래 근무하면 불편사항과 시민의 안전을 담보할 대처 능력이 커진다”며 “코로나19를 빌미로 이직률이 높은 형태로 버스사업을 끌고 가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더불어 정부가 버스운전기사의 처우 개선을 이끌고 책임감을 부여해야 지속적인 서비스 질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