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동시에… 이중 고통 겪는 피해자들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동시에… 이중 고통 겪는 피해자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2.16 21:20
  • 수정 2021.02.16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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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직장 내 성희롱 제보 전수 분석… “괴롭힘 동반한 성희롱 증가해”
직장 내 성희롱 신고, 2016년 426건에서 2020년 1,581건으로 3배 이상 증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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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의 대다수가 수직적 권력관계 때문에 발생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2층에서 ‘직장갑질119 제보 전수분석을 통해 본 직장인 성희롱+괴롭힘 실태와 대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3년 동안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이메일 제보는 486건으로, 직장갑질119는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364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와 피해자 간에 수직적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는 89%로 확인됐다.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직장 내 성희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행위자가 사업주, 대표이사인 경우에는 직장 내 성희롱의 범위가 성적 언동을 넘어 인사권한으로까지 확대되는 등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동시에 발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윤지영 직장갑질119·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행위자들은 (수직적 권력관계를 이용해) 피해자의 사생활에 개입하고, 피해자에게 업무와 무관한 명령을 하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인사권한을 남용한다”며 “행위자와의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직적 권력관계에 기인한 직장 내 성희롱은 이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성희롱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불구하고 행위자에 대한 징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확인됐다. 신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 방치하는 등 사업주가 조치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제보는 41.5%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은 나아가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후 징계, 따돌림 등의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는 제보는 58.5%로 나타났다.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피해자와 친하다는 이유로 함께 불리한 처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 쌓인 게 있냐고 해서 성희롱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어요. 그러나 돌아오는 건 가해자들의 사과는커녕 그냥 대표님은 구두로 경고 조치 내렸다고 대신 사과한다는 한마디로 끝났고요. 저희는 그 후에 더 혹독하게 갑질 당했습니다. 외근업무 교통비도 주지 않고, 상여금도 정규직과 다르게 주지 않더니 결국 해고 통보받았습니다.”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

윤지영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 해결은 일회적 사건의 처리를 넘어 조직규범과 문화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때문에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나 신고 후 불리한 처우에 대해 맥락과 배경을 따져 엄격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밖에도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질적으로 실시하고 피해자에게 대응 매뉴얼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성희롱 행위자와 피해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현행법은 고용관계가 있는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그 결과 법인의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저질러도 사업주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처벌받지 않고 있다. 사업주를 사용자로 개정해서 법인의 경영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경우 특수고용노동자 등 현행법상 근로자까지 피해자 범위를 확대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426건에 불과하던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2020년 1,581건으로 무려 3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회사나 가해자의 보복성 조치가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까지 추산하면 얼마나 많은 직장인이 아직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통받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며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보다 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장 내 갑질·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정책을 대폭 개선·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국회 차원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의 예방과 구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지난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시민단체로, 14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노총 법률원(금속법률원, 공공법률원, 서비스연맹법률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법 등 많은 법률가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전문가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오픈카톡 상담, 이메일 답변, 밴드 노동상담, 제보자 직접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