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있어야 할 우리가 왜 거리에 나왔나”
“일터에 있어야 할 우리가 왜 거리에 나왔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3.05 16:26
  • 수정 2021.03.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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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하청업체 서해인사이트 노조 설립하니 폐업
서해인사이트노조가 3월 5일 하이트진로 강남 본사 앞에서 ‘하이트진로 생맥주 서비스노동자 생존권사수 투쟁대회’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하이트진로의 새 하청업체인 제일에스피가 이번 달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이전 업체인 서해인사이트는 2월 말일을 끝으로 폐업했다.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고, 140여 명의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식품노련 서해인사이트노동조합(위원장 함경식, 이하 서해인사이트노조)은 노동조합을 설립했기 때문에 회사가 폐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넉 달여 만에 서해인사이트는 폐업절차를 마쳤다.

 

‘하청업체가 노조 만들면 폐업처리’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

하이트 생맥주의 주 고객층은 호프집이나 치킨집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생맥주는 캔맥주와 달리 보관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생맥주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이다. 생맥주는 각 사업체별로 냉각 기능이 내재돼 있는 기기에 보관된다.

하이트진로는 이 기기를 설치·수리·점검하는 일을 하청업체에게 맡겼다. 서해인사이트가 지난 8년간 담당했던 업무다. 이전에도 하이트진로의 하청업체는 계속 바뀌어왔지만, 고용승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해인사이트에도 입사 1년차부터 32년차까지의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서해인사이트에 속한 노동자들은 전국 30개 지점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생맥주 기계를 관리했다. 노동자 한 명당 수백 곳의 거래처가 있었고, 업계 특성상 밤에 할 일이 많다보니 자다가도 급하게 뛰쳐나와 맥주 기기를 수리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임금은 언제나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하청업체가 바뀔 때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진 적도 많았다.

그렇게 “노동환경 좀 바꿔보자는 소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노동조합이었다. 하지만 단체교섭은 결렬됐고, 서해인사이트는 폐업했다. 새 업체인 제일에스피는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서해인사이트노조는 전 직원 고용승계와 노동조합 협상권 보장을 주장하며 공개채용에 응하지 않는 중이다.

서해인사이트노조는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신속하게 폐업했다. 우리는 흔히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한다. 살인을 저지른 서해인사이트는 무책임하게 폐업하고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것 같다”며 “30년 이상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끝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해인사이트노조가 3월 5일 하이트진로 강남 본사 앞에서 ‘하이트진로 생맥주 서비스노동자 생존권사수 투쟁대회’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서해인사이트노조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나서라”

서해인사이트노조는 3월 5일 하이트진로 강남 본사 앞에서 ‘하이트진로 생맥주 서비스노동자 생존권사수 투쟁대회’를 진행하고 “중단 없이 투쟁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서해인사이트노조는 2월 23일부터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각각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서해인사이트노조는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도 2,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 거액의 흑자에는 우리 하이트 생맥주 노동자의 땀과 노력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원청인 하이트진로는 우리를 가족이라고 했다. 진정으로 우리 노동자를 가족으로 생각했다면 이와 같은 야만적인 결정을 하청회사가 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고 호소했다.

함경식 서해인사이트노조 위원장도 “우리 조합원들은 하이트진로가 어려울 때 땀으로 지켰지만 원청은 우리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며 “하이트진로가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