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노동권, 한국 노동권의 안전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한국 노동권의 안전판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3.10 11:01
  • 수정 2021.03.11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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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 ‘브로커’ 없앴지만 한계 뚜렷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하고픈 이주노동자들의 바람

이주노동자 기획 X 이주노동자, 대한민국에 그냥 그대로 존재하기

김 씨, 고팀장, 남윤성, 라킵 하산, 짠 쭝 끼엔, 섹 알 마문, 우다야 라이. 이름만 봐도 너무 달라 보이는 이 사람들을 한 데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이주노동자’이다. 그런데 정작 이주노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한 데 묶이지 못한다. 물론 묶일 필요는 없다. 그냥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 묶이지 못한다는 말은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싶어도 일터의 환경과 삶에서 차별의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더 큰 일자리가 있는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이주노동자 기획③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정책

E-9과 H-2.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름이다. E-9는 비전문취업 비자다. 일반고용허가제라고도 불린다. 한국과 고용협약을 맺은 아시아 16개국의 시민만 E-9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소위 ‘단순노무직’이다. H-2는 방문취업 비자다. 방문취업제 혹은 특례고용허가제라고 불린다. 발급대상은 재외동포다. E-9 비자와 마찬가지로 H-2 비자로는 단순노무직밖에 취업할 수 없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재외동포들이 많이 이용한다. 소위 ‘조선족’과 ‘고려인’들이다.

H-2 비자와 E-9 비자는 기본 3년, 연장 시 최대 4년 10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한다. E-9 비자의 경우 운 좋게 ‘성실근로자’로 인정되면 귀국 후 재입국해 4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총 9년 10개월이다. H-2 비자의 경우 60세 미만까지 재발급을 받을 수 있지만 3개월에서 1년간 귀국 기간이 필요하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 E-9과 H-2 비자는 명확히 ‘천장’으로 기능한다.

김달성 목사가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의 어느 농장 기숙사 앞에서 이주노동자의 처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브로커’는 없어졌지만

‘폐쇄국가’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말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 시기다. 중소기업에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은 재외동포, 주로 중국동포에게 민족의식을 높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이민을 갔던 재외동포가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 알음알음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가속됐고, 재외동포의 한국방문 목적도 ‘친지 상봉’에서 ‘취업’으로 바뀌어 갔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산업의 필요에 따라 좌우됐다. 1994년 5월 해외투자업체연수제도가 외국인산업연수제도로 개정됐다. 하지만 여권 압류, 감금, 폭행, 임금체불 등 산업연수생에 대한 인권침해가 극심했다. 도망가는 연수생이 급증했으며, 현장에서는 암암리에 브로커를 통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찾는 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재외동포,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입국 브로커에게 당한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섹 알 마문(Shekh al Mamun·46)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IMF 직후인 1998년 한화 700만 원을 주고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마문 수석부위원장는 “IMF 이후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노동자를 빨리 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면서, “김포공항 가면 3개월짜리 비자를 무조건 발급해줬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규정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주요 논거가 됐다. 이주노동자들은 1995년 1월 9일 네팔 산업연수생 13명이 명동성당에서 쇠사슬 농성을 진행한 이후 2003년까지 산업연수생제도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재외동포들도 1999~2003년까지 ‘재외동포법 개정 투쟁’을 진행했다.

결국 2004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던 산업연수생제는 사문화됐다. 2004년 3월 이후 해외동포의 취업 방문 요건도 점차 낮아져 2007년 방문취업제가 특례제도로 시행됐다. 무법천지 브로커로부터 이주노동자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대만 한껏 불어 넣는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E-9)와 방문취업제(H-2)로 브로커의 난립이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라킵 하산(Rakip Hasan·27) 씨는 2년 6개월 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위해서 준비한 시간은 4년여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한국정부가 직접 이주노동자의 고용알선을 주선하면서 산업 수요에 맞게 이주노동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단 쿼터제로 운영되면서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방글라데시는 지원자 수가 너무 많아 한국어 시험 응시도 추첨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라킵 씨는 “(한국과 고용협약을 맺은) 16개 국가 모두 한국어능력시험을 봐야 하는데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경우엔 무조건 한국어 시험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2020년만 해도 10만 명이 인터넷으로 등록했다. 그중 시험을 본 건 1만 명”이라고 밝혔다.

라킵 씨는 시험 응시 3번 만에 기회가 주어졌고 6개월 간 한국어를 공부해서 합격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다. 한 번 시험에 합격하면 2년간 구직자 명부에 등록된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사업주들이 이력서를 물색한다. 원격으로 면접이 이뤄지는 셈이다.

라킵 씨는 “(한국어 시험 합격하고) 2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비자발급 기다리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다”며 “조금 있으면 돈을 많이 벌 것이니 굳이 여기서 돈을 벌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해서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019년 12월 한국에 온 베트남 이주노동자 짠 쭝 끼엔(Than Thung Kien·33) 씨도 한국 입국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한국어 공부 6개월, 시험 결과 대기 2개월, 사업장 배치 8개월이다.

한국정부가 고용을 알선해주고, 지원자가 넘쳐나는 시험을 통과한 만큼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가지는 기대는 사뭇 크다. 그렇기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받는 충격의 크기도 상당하다.

마문 수석부위원장은 “경쟁률이 센 네팔 같은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살률이 높다”면서, “그만큼 노력해서 한국에 왔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운이 안 좋아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귀국하지도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 내 네팔 이주노동자 정신건강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2010~2017년 간 네팔 이주노동자 자살자 수는 40명에 달한다.

사업장 이동 자유 있으면
임금체불·기숙사·안전 풀린다

이러한 문제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더욱 커진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는 건 오직 E-9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다.

현재 고용허가제상 사업장 변경은 최초 3년의 취업기간 중 3회, 재고용 1년 10개월 중 2회 가능하다. 그러나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기를 원할 때 ▲다쳐서 업무 수행에 지장이 될 때다.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경우는 없다. 사용자의 노동조건 위반 인 경우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지만 위반 사항을 이주노동자가 증명하도록 한다.

보통의 한국인 노동자들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달린 상황에서 부당한 사용주의 횡포에 대항하기 쉽지 않다. 한국인 노동자에게 가장 스트레스 적게 받고 손쉬운 해법은 ‘때려치는 것’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처음 지정된 사업장에서 그냥 일해야 한다. 좋은 사장님을 만날 것인지 악덕한 사장님을 만날 것인지 순전히 운에 맡겨져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선택권’은 없다.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마문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투표권과 같다”면서 “만약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주면 임금체불, 기숙사, 안전문제 세 가지는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이 있으면 문제 사업장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 말고 다 불법 쓰지”

가리봉동 인력시장의 새벽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H-2 비자 이주노동자는 E-9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와 유사한 일을 한다. 이들에게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있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인력시장에서 ‘고팀장’(63·중국 선양)으로 불리는 중국동포는 한국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20년을 일했다. 그는 사용자가 자신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가리봉동 인력시장에서는 H-2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주로 ‘조선족’이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족’이다.

“순전히 불법자(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일 더 많아요. 왜냐면요. 하루 일하면 다음부턴 오지 말라고 해요. 그러고 불법 데리고 가요. 얘들도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안 갈 순 없는 거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되냐면 일 안 했는데도 당신은 일했다면서 세금이고 뭐고 막 떨어지는 거죠. 등록해놓고 하루 쓰고 보내고 내 이름을 대체해버린다고요. 내가 뭐했다고 작년에 2,900만 원 벌었단 말이요? 2,900만 원 벌었다고 세무서에서 날아 온 기라.”

고팀장은 재작년 산재로 병원에 입원해 요양급여를 타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산재 요양기간 중 일한 내역이 있다며 급여 신청이 반려됐다. 당시 그는 경찰서를 찾아가 사정한 결과 원만하게 산재급여를 받았지만, ‘조선족’인 그가 이러한 문제를 대처하기는 아무래도 벅차다.

“한심해요. 세금은 내끼고, 벌어묵는 건 하나도 없고. 용역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알면서도 시키는 기야. 엉뚱놈 시키고. 나 하나 하루 일 안 시켜도 괜찮아. 그런데 어떤 놈 대체해가 돈 벌어가면 세금은 어째 하노. 그 놈을 이 날씨에 어떻게 찾아? 그런 회사 많아요.”

한국에 산지 20년이 넘은 고팀장은 자식에 손녀까지 한국에 있다. 고팀장에게 한국은 누가 뭐래도 삶의 터전이다. 그는 손녀만은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후에 여기(가리봉동) 있을 사람은 있고. 국적 올리라고 하면 국적 올리는 긴데. 우리 애는. 손녀도 여기 국적을 좀 올려줬으면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애는 여기(한국)에서 집도 하나 샀고. 뭐 애들이야 좀 국적 올려주면 안 좋겠나 싶어도. 안 되니까.”

이주노동권은 한국 노동권의 안전판

E-9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절실하게 원한다. 반면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있는 H-2 비자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꿈꾼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생겨서 질 나쁜 사업장에는 가지 않아도 되고, 같은 민족으로서 한국에서 일가를 안정적으로 꾸리고 싶다. 마문 수석부위원장은 한국사회 맨 아래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이 한국의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차별이 나한테 돌아와요. 이주노동자에게 차별할 수 있으니까 LG타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줘야 정부, 자본이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가끔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 없다는 말에 화가 나요. 사실 이주노동자를 데려오는 건 한국 정부잖아요. 올해도 5만 2,000명을 데려와요. 한국 정부가 쿼터를 주니까 올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이 필요 없으면 데려오지를 말아야죠.”